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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부터 프라하까지
by 심희정 Apr 20. 2017

공감을 기억한다는 것

나로부터 프라하까지, 일하고 여행하고 사랑한 이야기

 추운 날씨 탓인지 기분 탓인지 아니면 둘 다 인지도 모른다. 원하는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다가도 문득 헛헛할 때가 있다. 투어가 도움이 되었다며 고생 많았다는 인사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날도 그랬다. 딱히 이유 없이 의욕을 내지 못하고 있을 무렵 나는 그를 만났다. 


  오전 내내 비가 오는 둥 마는 둥 했다. 날씨가 산만할 땐 사람들을 더 집중시켜야 한다는 적극적인 부담이 일어나곤 한다. 투어에 온 사람들 스스로 몰입해서 들어야 힘든지 모르기 때문이다. 목소리는 높아지고 손동작도 덩달아 커진다. 설명 도중에 비가 다시 내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그 지점이 공들여 준비한 부분이고 꼭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담겨 있다면 더 간절해지곤 한다. 그렇게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서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에게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 속에서 계속 맨 앞에 서있었다. 장소를 옮길 때면 우산을 펴 들어 살짝 씌어주기도 했다. 목에 맨 카메라가 비에 젖고 있는데도 나에게 더 신경을 써줬다. 고마웠다. 그날의 손님들은 날씨와는 상관없이 투어 내용에 꽤 경청해주었는데 그는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었다.


 고마운 마음으로 투어를 마칠 시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질문에도 답해드리며 마무리를 할 때쯤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목소리였다. 너무 좋은 시간이어서 괜찮으시면 차 한 잔으로 이 투어의 감사를 전하고 싶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투어 중에 뵙는 손님들과 차 한 잔 나누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나를 궁금해하듯이 나도 손님들의 여행 이야기가 듣고 싶어 질 때가 있다. 하지만 가이드인 내가 먼저 자리를 권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그래서 누구든 차 한 잔 하자고 하면 반갑게 응할 준비가 되어있는 나였다. 그렇게 우리는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럽 여행을 하는 중 우연한 기회에 팁투어를 알게 됐다고 했다. 마침 서로 일했던 분야가 같았다. 내가 하는 일이 기획이었다면 그는 제작 파트였던 것이다. 한국에서 같은 분야에서 일했다는 것은 친밀감을 느끼는데 도움이 됐다. 그 친밀감 덕분에 수다가 매끄러워졌다. 나는 프라하에 오게 된 계기에 대해 얘기했다면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한 이야기와 앞으로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말했다. 이날의 대화가 그냥 외국에서 만난 사람들의 한국어 수다 이상이 된 것은 그가 나에게 해준 투어에 대한 진솔한 소감 덕분이다. 내 투어에서 소개된 몇 권의 책은 꼭 읽고 싶은 책들이었다는 말로 투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투어가 좋았다고 인사치레로 하는 것이 아니라고 느낀 것은 내 투어를 꽤 세밀하게 기억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요 며칠 의기소침했던 터라 나는 너무 감사해서 연실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무척 힘이 되고 있다는 눈인사를 하고 있는 중에 그가 말했다.


바츨라프 광장에서 하는 이야기 중 1989년 벨벳혁명이 완성되었을 때
광장을 가득 채운 군중들 손에 열쇠가 들려져 있었다는 이야기가 감동적이었어요.
그 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 중 가이드님 다운 내용을 선별하셨기 때문에
말할 때 힘이 실렸고 그래서 제게 더 와 닿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가이드님의 투어 내용을 기억하고 싶어서 하벨 시장에서
열쇠 장식의 고리를 하나 샀어요.

 나는 깜짝 놀랐다. 투어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무슨 내용을 살리고 버렸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그가 알아봐 준 것이다. 투어 내용은 가이드 세 명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다르게 준비했고 나는 많은 내용 중에 실제로 벨벳혁명이 이뤄졌을 때 열쇠를 흔들었다는 것에 감명을 받았었다. 다른 가이드들은 할 때도 있고 안 할 때도 있다는 그 이야기를 나는 힘주어 얘기해왔는데 그걸 알아봐 주고 공감해준 것이다. 그것을 기억하려고 열쇠 장식의 고리를 샀다니 이보다 더 큰 공감이 어디 있을까. 


 그의 공감에 대해 감사하고 싶었다. 

 며칠 후에 투어가 끝나고 하벨 시장으로 갔다. 그가 여기서 그 열쇠고리를 샀다면 나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벨 시장을 온 여행자처럼 샅샅이 뒤지며 열쇠고리를 찾아 나섰다. 하벨 시장에 그렇게 많은 열쇠 장식이 있는지는 그때 처음 알았다. 비슷해 보이는 것들 사이로 그와 똑같은 것을 찾았을 때는 보물 찾기를 했던 것 같았다. 소리만 내지르지 않았지 마음속으로는 야호라고 할 만큼 기뻤다. 그와 나는 서울과 프라하에서 각각 똑같은 열쇠고리를 갖게 된 것이다. 


 열쇠고리를 볼 때마다 힘이 났다. 그것은 괜한 날씨나 기분 탓을 하며 의기소침해하던 나를 일으켜 세워줬다. 기억하기 위해 똑같은 열쇠고리를 각각 찾아 나선 일은 소중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열쇠고리는 프라하를 떠나올 때까지 친구들이 우리 집을 찾을 때마다 그들의 소중한 열쇠였다. 지금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하벨시장에서 찾았던 열쇠고리.
그가 보여줬던 열쇠고리, 바츨라프 광장의 동상 앞에서 흔들어보며 나는 이 모든 순간을 기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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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이 꿈처럼 느껴질 때마다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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