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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이 Nov 22. 2021

썸머타임의 저주

고요한 호텔, 그 밤들의 기록 (1)

고요한 호텔, 그 밤들의 기록 (1) 

: 썸머타임의 저주


오늘도 어김없이 출근을 했다. 출근 후 첫 시작 루틴은 언제나 반복된다. 벌써 2년이 넘게 하고 있다보니 눈을 감고도 완벽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기계적이다. 출근을 하자마자 나잇오딧 박스에 있는 체크리스트를 꺼내고, 곳곳에 놓아둘 센서들도 함께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그 다음 Sign-out sheet 바인더를 꺼내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 그리고 총 근무시간, 8시간을 적어내려간다.


오늘도 아무 생각 없이 총 근무시간란에 8h 를 적다가 아차 했다. 그리고 화이트로 8h를 지운 후 그 곳에 9h를 적었다. 저녁 10시 반 출근에 아침 7시 퇴근, 그리고 30분 브레이크, 총 근무시간은 평소처럼 8시간이 맞았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큼은 이상한 계산법이 적용된다. 바로 Daylight savings 끝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는 바꾸자면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캐나다인 이곳에선 적용되는 '썸머타임' 이 끝났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여름이  다 끝나고 본격적 가을-겨울 시즌을 맞이한 것이다.


이 날은 시계가 1시 59분에서 벽 2시가 아닌 새벽 1시로 다시 돌아가버리는 마법을 볼 수 있다. 타임 체인지는 항상 새벽에 있기에 보통의 사람들은 한시간을 더 자거나, 그 시간에 깨어있다면 한시간을 더 놀 수 있다. 그들에겐 한시간이 더 늘어나는 셈인 것이니 이득이다. 하지만 그 시간에 일을 하는 나는 말그대로 한시간을 더 일해야한다. 젠장. 물론 회사에서 1시간을 오버타임으로 쳐 오버타임 페이가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9시간을 일하는 것을 생각하면 이미 시작도 전에 힘이 빠진다.

 

내가 기록한 Sign-out sheet을 본 오후타임 프론트 매니저 D가 웃으며 농담을 던진다.


"진이, 10시반부터 7시까지면 8시간이지. 너 계산 못하는 거 아니야?"


농담기가 다분히 묻어나는 짓궂은 말투에 나도 함께 장난식으로 미드에서나 나올법한 제법 bitchy한 표정으로 눈을 굴리며 whatever를 내뱉었다. 한국에선 상사에게 이런식으로 받아치는 건 상상도 못하지만, 여긴 캐나다니까 가능했다. 물론 매니저와 친하고, 진담이 아닌 농담이 확실하다는 전제하에. 그런 내 표정을 보고 이제 곧 퇴근을 하는 D 매니저와 그 옆에 서있던 나이트 매니저, M은 깔깔 웃어댄다. 나의 불행이 그들에겐 행복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9시간의 근무가 시작이 되었고, 한시간이 더 늘어난 것이니 솔직히 바쁘지 않을 것 같았다. 우리에겐 extra one hour가 있는데 천천히 하자 - 라고 하며, 첫 두시간을 느긋하게 보냈다. 곧 다가올 재앙을 꿈에도 모른 채. 





새벽 1시 반 사실 썸머타임이 계속 되었다면 2시 반이었을 그 시간, 조용했던 백오피스에 따르릉- 하는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불길한 느낌이 싸악- 우리를 감싸돌았다. 내가 수화기를 들어 기계적인 인사말을 내뱉었을 때, 상대방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옆방에서 파티를 하는 것 같은데,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자겠어요."


자연스레 내 고개는 매니저 쪽을 향하고, 내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M 매니저는 노이즈 컴플레인임을 알았는지 무전기를 챙겨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나는 사과를 한 뒤 서둘러 알아보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고, 이미 나갈 준비가 되어있는 매니저에게 말했다. 룸 310호에서 노이즈 컴플레인이 들어왔어. 


그 이후에도 끊임없이 노이즈 컴플레인이 들어오고, 여러 명의 젊은이들이 계속 택시를 타고 어디론가 나갔다가 다시 호텔로 들어왔다가, 호텔 입구 앞에서 담배를 피며 신나게 떠들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를 반복했다. 덕분에 우리는 각자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을 조용히 시키는 데에 온 신경을 쏟았다. 


한시간 더 잠이나 잘 것이지... 나이가 비교적 어린 젊은이들은 한시간 더 놀 수 있다는 기쁨에 오밤중에 시끄럽게 호텔 룸 여기저기서 파티를 하고 있었다. 이번 주에 많은 컨벤션 이벤트들이 호텔에서 열리는 지라 하필 비즈니스 손님들이 꽉꽉 차있었는데, 그들의 옆 방 혹은 옆옆방에서는 늦은 새벽까지 웃고 떠드는 소리가 계속 되니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모든 신경을 그들에게 쏟고 있다보니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스트뤠-스!!! 




새벽 4시 무렵, —원래대로라면 5시— 드디어 파티를 하던 사람들이 잠에 들거나 게스트의 방문객들은 집으로 향했다. 다시 호텔이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이제야 끝났구나, 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푹 쉬며 시계를 쳐다봤다. 밥을 먹어야 할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원래는 한 명씩 돌아가며 밑층에 있는 휴게실을 가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아닌 한 끼를 먹어야 하지만 우리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오피스로 밥을 가져와 일을 하면서 먹기로 합의했다. 전자렌지로 데운 밥을 오피스로 가져와 이제 막 한 입을 먹으려는데, 


따르릉- 


젠장. 우는 표정을 하고 숟가락 대신 수화기를 들었다. 


"네, 프론트 데스크 진이입니다." 

- 여기 235호 인데요, 이상한 알람이 울려서요. 

"알람이요? 모닝콜 알람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 아니요. 무슨 이상한 경고음 같은 알람이 울리는데 제 방은 아니고 다른 방에서 울리는 것 같아요. 

"바로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대화내용을 전해들은 매니저는 바로 2층으로 알람을 확인하러 올라가고, 나는 프론트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또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엔 339호였다. 


이거 무슨 알람이 울리는데 화재경보음인가요? 라고 묻는 손님의 말소리 너머로 점점 또렷하게 띠-띠-띠- 하는 알람이 들려왔다. 점점 경보음이 커지는 게 불길했다. 하지만 화재경보음은 아니었다. 프론트 데스크 바로 옆에 있는 화재경보 판넬이 아무런 작동도 하지 않았으니 확실히 이건 다른 경보음이었다. 화재경보음이 아니니 대피하실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있는데 옆 수화기가 또 울리기 시작하고, 내 무전기로는 매니저가 3층에 비어있는 룸이 어딘지를 확인해달라는 요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정신이 없었다.


시스템을 열어 3층 비어있는 방을 찾으려했지만 모든 방이 다 차있었고, 매니저에게 그 사실을 전하니 그는 곧바로 341호에 누군가가 있는지를 물어왔다. 나는 235호에서 다시 걸려온 전화를 받으며 동시에 매니저에게 그 방에 묵고 있는 게스트의 정보를 무전기에 대고 읊었다. 235호는 알람이 점점 커진다며 나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고, 난 아직 원인을 찾고 있는 중이라며, 화재경보음은 아니니 걱정말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경보음은 정말 내 귀를 아프게 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이러다 모든 방 사람들이 다 잠에서 깨 화재가 난 줄 알고 대피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때, 갑자기 경보음이 뚝 멈췄다. 해결이 된 건가? 다시 고요해진 호텔 로비에서 나는 매니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고, 한참 뒤 나타난 매니저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찾았어. 경보음 울리는 방. 341호."


이야기를 들어보니 매니저는 2층 비어있는 방에 들어가 바깥 발코니를 통해 루프로 올라갔고 소리를 점점 따라가다 341호 앞에서 경보음이 가장 크게 울리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 모든 과정을 2, 3층 게스트들이 발코니를 열고 지켜보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후에 매니저가 341호 방문을 노크를 하니, 이제 막 잠에서 깬 것 같은 손님이 나왔고, 그가 처음 내뱉은 말이 "아, 제 방입니까?" 였다고 했다. 아니, 그걸 왜 몰라? 라는 내 말에 '내말이...' 라고 어이없는 쓴 웃음을 흘리던 M 매니저였다. 


오밤중 시끄럽게 울리던 알람은 과열 된 히터가 내뱉는 경고음이었고, 히터를 끔으로써 일단 사건이 일단락되었다. 날이 밝고 Maintenance 팀이 출근을 하면 그 때 더 자세히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알 수 있겠지. 


어느덧 시간은 5시를 향해가고 있었고, 우리의 밥은 이미 차게 식은 지 오래였다. 






오전 6시 50분, 좀비같은 얼굴로 우리는 오전 출근팀을 맞이했다. How was your night? 하고 묻는 오전 매니저, R에게 나는 죽어가는 목소리고 올해 가장 바빴던 9시간이었다고 답했다. 1시간을 더 오버타임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9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너무 바빴다고. 


가끔 오버나잇 쉬프트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그리고 그들은 항상 묻는다. 새벽엔 손님들이 다 잠에 들어서 조용할 텐데 도대체 무엇을 하냐고. 되게 한가할 것 같다고. 나는 그런 그들에게 항상 말했다. 짧고 굵은 한 마디를. 


나쁜 일은 항상 밤에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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