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 이 Jan 28. 2022

3. 나의 단점들이 너에게서 보일 때

있잖아, 엄마 시리즈

있잖아, 엄마


나는 아직 엄마의 마음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나봐. 아직 '엄마'가 되어보질 못해서 그런가. 오늘 두 아이의 엄마인 독서모임 한 회원분에게서 어느 이야기를 들었는데, 전혀 생각치 못한 마음이라 가슴이 쿵 하고 울리지 뭐야.


아이들을 등교시키며 바빴던 아침 일상을 공유해주시는데, 아이가 밴드부에 지각을 하게 된 거야.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지각을 했어도 조금이나마 참여를 하길 바라는 마음에 밴드부에 가라 했는데, 아이는 이미 지각이 확정인데 미리 온 아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중간에 들어가는 게 너무 싫다고 안 간다 그랬대. 이 이야기를 듣는데, 어릴 적 내가 생각이 나더라. 나도 그랬잖아. 지각하면 중간에 들어가기 무서워서 엄마가 전화해서 선생님한테 아프다고 거짓말도 쳐주고, 아니면 아예 1교시 수업이 다 끝나고 쉬는시간에 들어가고. 지금 생각해보면 별 거 아닌데 그땐 그게 왜 그렇게 두려웠는지.


그런 생각이 나서 아이 엄마에게 답장을 보냈어. 나도 어릴 때 똑같이 그런 경험이 있어서 아이의 맘이 너무 이해가 간다고. 아마 크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아이 엄마가 그러더라.


"그렇죠. 저도 어릴땐 중간에 들어가서 눈치받고 그런거 싫었어요. 애를 이해해요. 하지만 애한테서 나의 단점이 보이면 그게 퍽 속상하더라고요. 애는 나보다 낫길 바라죠."


내 아이에게서 나의 단점이 보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아니 그런 상황 자체를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헙- 하고 숨을 순간 멈췄어. 내 아인 나의 단점을 닮지 않길, 나보다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괜시리 울컥하더라. 


예전에 엄마가 그랬잖아. 내가 맨날 이웃집 꼬마애한테 맞고 울면서 집에 들어오면 그렇게 속상할 수가 없었다고. 나이도 더 많으면서 자기보다 어린 애 하나 이기지 못하고 들어오는게 답답하고 속상했다고. 난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엄마가 느꼈던 감정을 정말 1차원적으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답답함', '속상' 이렇게 겨우 단어 하나로 표현 되는 것들 말야. 그런데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엄마가 느꼈을 그 감정들은 그렇게 단어 하나로 쉽게 표현될 마음이 아니었을 거라고. 그리고 그 마음은 내가 '엄마'가 된 후에야 겨우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난 아마 이렇게 평생을 뒤늦게 엄마의 마음을 깨달아가며 걸어가겠지? 앞서지도 못하고, 같이 서지도 못한 채 매번 그 뒤를 걸으며 엄마가 남겨놓은 마음들을 하나하나 주워가면서. 지금은 엄마가 내 곁에 있으니 "엄마! 나 이제야 알 것 같아!" 라며 내가 발견한 엄마의 마음들을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그 발견이 너무 늦은 순간이 올 것 같아서 두려워. 엄마가 오래오래 천천히 걸어줬으면 좋겠다. 내가 발걸음을 좀 더 빨리 해서라도 얼른 쫓아갈 테니, 나한테 너무 많은 후회가 남지 않게 조금만 천천히, 그렇게 걸어줘. 

매거진의 이전글 있잖아,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