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사랑이 가득한 실레를 만나다.
드디어! 에곤쉴레 작품이 가장 많다는
레오폴드 미술관에 가는 날
오후 3시로 온라인으로 예약했는데, 조금 일찍 도착해서 15분가량 줄을 서고 들어갈 수 있었다.
4층부터 둘러보니 독특한 유리잔들이 보였다.
올록볼록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디자인.
지금 나와도 인기가 많을 것 같다.
왜인지 아주 농염한(?) 그림이 하나 있었고.
여성의 얇은 손목을 쥔 강한 손아귀 때문인가.
남성성과 관능성이 잘 드러나는 것 같다.
특이했던 와인잔 디자인. 실제 마시는 데에 쓰라고 만든 건 아닌 것 같지만 아주 눈이 즐겁다.
호박이 연상되는 귀여운 포트 세트도 있었다. 미녀와 야수에 나오는 마법에 걸린 주전자 같은~
이집트 풍 오리엔탈 배경에
따분 삐딱한 표정의 초상화.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그리고 클림트의 유명한 작품, <죽음과 삶>
유령과 생애를 나타내는 인간들의 군상으로 화면이 이분할되며, 죽음과 삶의 밀접한 관계를 드러낸다.
인간들 중 위에 위치한 갓난아기를 기점으로 점점 허리가 굽는 모습을 통해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또한 여성의 아름다움을 즐겨 그린 클림트는
젊은 여성들의 표정을 생기 있게,
동시에 관능에 취한 듯한 모습으로 그렸다.
가장 왼쪽의 젊은 여성의 눈빛은 마치 광기 같기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풍경.
오후 6시경 막 해가 진 듯한 어스름한 풍경 같다.
동양의 한지공예가 떠오르던 작품.
고즈넉한 색감이 마음에 든다.
광고용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포스터 같은데,
레터링 디자인이 특이해서 눈에 들어왔다.
두 포스터의 내용은 같은데 디자인과 폰트의 개성으로 완전히 다른 포스터처럼 느껴진다.
소설 오만과 편견 속 장면 같은 숲 속 길.
엘리자베스가 운명의 남주 다아시를 만나러 가는 길 같은... (혐관 로맨스 ver.)
특별한 주제는 아니지만 밝은 햇살과 어우러지는 푸르름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그림.
에메랄드 빛 바다 옆에
바스크 치즈같이 놓인 절벽이 왠지 귀여웠다ㅋ
위엔 쑥이야 모야... (배고파?)
어딘가를 쓸쓸하게 바라보는 평민 여인.
삶의 고됨이 느껴지는 그림이다.
엄근진 초상화
<The circle of life> 라는 제목처럼 일생을 하나의 원 순환으로 그린 작품.
우측 하단의 반들반들한 갓난아기로 시작해서,
상단 정중앙의 강한 전사를 거쳐 다시 처음의 자리에서 나이 든 노인의 모습으로 끝난다.
삶은 멀리 보면 이렇게 참 단순하다.
굵고 거친 윤곽선 때문에 음산해 보이는 동시에,
환하게 빛나는 달빛으로 안전(?)해 보이는 들판
대충 상반된 두 느낌이 만나니 특이하다는 말.
자화상인데 솔직히 말하면
조금 찌질(?)한 모습으로 자신을 그렸다.
포즈와 표정의 색다름이 신선하게 느껴짐!
몸 뒤편의 영롱한 후광과 선명한 두 눈동자가, 방금 막 각성한 사람 같다.
그리고 등장하는 에곤쉴레 그림 시리즈....!
두 인물이 보이는데,
뒤의 인물은 그 형태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강해 보이는 외면 뒤에 숨은 약한 내면인 걸까?
조금 격한 표현일 수 있지만
살(flesh)이 마치 생고기의 그것처럼 그려져서
날것의 야생성과 치열함이 더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어떤 가식도 걸치지 않은 자아 본연의 야생성이 느껴진달까.
그리고 기분이 정말 좋았던 순간
이 작품을 7년 전에 직접 모사했었는데 실제로 보다니.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던 친구가 에곤쉴레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사다 준 수첩에 있던 그림이었다.
에곤쉴레의 뮤즈이자 애인, 발레리 노이칠의 초상. 푸른 눈동자가 너무 예쁘다.
(나름 열심히 따라 그렸던.... 이 작품을 실제로 보다니! ㅜㅜ광광)
그리고 에곤쉴레의 자화상.
한국인들에게 가장 유명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표지로서.
동양풍의 배경과 톤다운된 컬러감이 좋다.
보깅 모델처럼 특이한 실레의 포즈도.ㅎ
나란히 걸려 있는데 구도가 딱 맞아떨어진다.
참 잘 어울리는 커플입네다...
프리다 칼로가 떠오른 실레의 그림
눈빛의 강렬함이 딱 프리다의 그것인데..!
컬러 조합은 멕시코의 그것.
에곤실레의 작품들을 보며 의외였던 건,
모성애를 주제로 그린 그림이 많다는 거였다.
제목 '죽은 엄마'가 꽤나 충격적인데, 엄마의 모습은 이미 생명이 바랜 듯 회빛으로 칠해져 있고
작은 아이만 따뜻하고 밝은 컬러로 그려져 있다.
생명이 다해가면서도 아이를 꼭 껴안은
엄마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보기만 해도 불편한 자세로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의 모습.
야위었지만 단단한 골격에서
엄마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추기경과 수녀의 밀회.
욕망을 인내해야 하는 추기경은
수녀를 대상으로 강렬한 성욕을 분출하고 있다.
옷감마저도 그를 닮은 듯 새빨갛다.
수녀의 시선은 이쪽을 향해 있는데
불안함과 두려움이 가득 담겨 있는 눈빛이다.
발각될까 불안한 마음, 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 모두가 담긴 듯한.
사람뿐 아니라 마을도 자주 그린 에곤쉴레.
모직 같은 붓질과 개성 있는 컬러가
집 하나하나의 사연을 궁금해지게 만든다.
그리고 마치 하나의 연극 무대 같던 그림.
특히 가운데에 주황색 이불을 건 집이 눈에 띈다!
저 집엔 무슨 이야기가 있을까?
유화를 덧칠한 붓질이 진짜 면의 질감 같다.
저 오밀조밀한 벽돌은 다 어떻게 칠한 걸까............?예술가들의 인내심은 정말 대단훼.
쉴레의 작품들을 보며 느낀 건, 작품 속에 담긴 여러 형태의 '애정'
예민하고 치열한 자의식 뒤의 실레는
사실 삶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느끼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상당히 건강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백인 남성과
건강해 보이는 흑인 여성.
흠.. 무언가 숨겨진 스토리가 있을 법한 그림이다.
이분 되게 성공한 여성분이셨는데. 본인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고... (라고 기억을 해본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면서
페미니즘이 대두될 시점 그려진 그림.
마치 본투비 공산당 아이 같은,, 두려운 비주얼
스케이트를 타는 연인들과 유모차를 끄는 여인, 장난감을 보며 신난 아이들까지 다채로운 겨울 풍경.
에곤쉴레!로 말 다한 레오폴드 미술관.
나도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 실레의 성찰적인 작품들 앞에 꽤나 오래 서있었다.
동시에 기존에 알던 시니컬하고 치열한 느낌의 자화상뿐 아니라 사랑의 여러 형태(추기경과 수녀, 어머니의 모성애 등)를 그린 것이 인상 깊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는 따스한-사람이었구나....
무척 내성적이었다던 실레.
과거로 돌아가 그와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