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런이유지 Aug 28. 2023

아... 오늘은 뭘 쓰지?

내가 가장 취약해지는 순간은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는 때이다. 비교하는 마음이란 서민층의 예민하고 욕심 많은 둘째 딸로 태어나 평범하게 살아온 나의 약점을 예리하게 파고드는 세상의 공격이었다. 비교를 하기 시작하면 남들에게는 내가 갖지 못한 장점들만 보이고 나에겐 부족하거나 없는 것들만 남겨져 한 없이 초라해졌다. 자존감을 갖게 해 준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 그러니까 30대 이전의 예쁘고 아까운 시간들을 가지지 못한 많은 것들에 집착하며 소비했다. 반복되는 실패는 성취의 경험이 없는 내 인생의 서사에 자연스러운 전개라고 생각했다.  


찬란한 비교의 역사가 시작된 순간을 기억한다. 창문 너머로 우리 동네 최초의 대단지 아파트 마무리 공사가 한창 중이던 초등학교 3-4반 교실. 맨 뒷자리에 앉은 10살의 내가 수업 중에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아파트가 다 지어졌네. 페인트 색 예쁘다’ 따위의 생각들을 하며 종이 울리기를 기다렸다. 그로부터 얼마 후 모든 세대의 입주가 끝났고 각 반별로 새 아파트에 살고 있는 친구들의 수도 여럿 생기게 됐다. 학교에서도 가깝고 단지 내에 놀이터도 있는 저기에 우리 집도 있었으면 했다. 빨간 벽돌로 대충 지어놓은 다세대 주택의 좁은 집에 사는 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친구들의 집이 부러웠다. 어린 마음에 뿌리를 내린 비교의 씨앗은 성인이 된 후에도 깊은 곳에 남아 가끔 그 아파트 단지 꿈을 꾸기도 했다. 꿈속에서도 그 아파트엔 내 집이 없었다. 비교의 마음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구한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창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성적과 외모비교를, 대학시절엔 학벌, 사회인일 땐 집안의 자산 수준까지 관통하며 생에 주기에 맞춘 자존감 갉아먹기가 착착 진행됐다. 경쟁 상황이 되면 스스로의 부족한 점을 부각해 뒷걸음치는 습관은 아마 그렇게 생겨난 것이 아니었을까. 도전이 필요한 일에는 이런 못난 마음 뒤에 숨어 당면해야 할 일들을 회피하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커지는 건 자기를 비하하는 마음뿐이다. 패배감이 빛의 속도로 배달되어 마음속 못난이 창고에 하나 둘 쌓여갔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30여 편의 글을 쓰는 동안은 사실 별 어려움이 없었다. 육아와 일을 하며 짬나는 대로 글을 풀어내느라 좀 피곤하긴 했지만 괜찮았다. 지저분한 집안을 정리하듯 생각들을 하나하나 꺼내며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삿짐처럼 쌓여있던 생각들을 대충 정리하고 나니 아이를 재우고 피곤한 몸을 일으켜 3~4시간씩 글 쓰는 작업이 힘들게 느껴진다. 약간의 자극만 줘도 언제든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는 회피본능이 자꾸만 고개를 쳐든다. 끊임없이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을 빌리고 브런치스토리 앱을 열어 다양한 이야기들을 살펴본다. 경험도 다양하고 재주도 뛰어난 작가들의 글에 압도된다. 나는 그저 내 얘기만 써 내려가면 될 것을 비교하느라 에너지를 다 써버리고 만다. 도시의 삶이 싫었던 것도 1등 인간이 아니라는 패배감에 그랬던 것인데 여기서도 그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삶이란 성취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나를 괴롭혀 왔다. 어디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내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힐 땐 우울감이 밀려들었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닌데, 그저 하루하루의 행복이 잘 살아내는 날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존재의 이유가 성취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습관처럼 나를 열등한 못난이 인형으로 만들어버린다.


안 되겠다. 정신 차려야지. 여기서 물러서면 난 또 스스로에게 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패배자가 되고 만다. 내일모레 불혹이면 이 정도 내적 갈등쯤은 극복할만한 연륜 아니었나. 집에 있는 글쓰기 책들을 끼고 앉아 현재 나에게 힘을 줄만한 문장들을 찾아 읽는다. 저자는 언젠가 이런 마음의 내가 책을 뒤져볼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것처럼 나에게 필요한 말들을 책 속에 잘 정리해 뒀다. 글쓰기를 멈추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글쓰기는 나의 쓸모를 증명해 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비관에 빠지려는 나를 끌어올려줄 동아줄이며 나를 사랑하는 방식으로서 활용해 봐야겠다. 며칠 좀 무기력함에 빠져 있었는데 다시 노력해 보기로 한다.


아.. 이번에도 임팩트는 없고 나의 징징거림만 남은 것 같은데 어쩔 수 없다. 내 성격에 깊이 고민하면 안하게되니 이번에는 이렇게 대충 넘어가야지.퇴고도 접자.


작가의 이전글 손님, 그때 그 케이크는 맛있게 드셨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