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런이유지 Aug 16. 2023

손님,  그때 그 케이크는 맛있게 드셨나요?

창밖의 햇살이 선명히 기억나는 날의 오후였다. 여느 때처럼 벽을 마주 보고 일을 하고 있었고 전화벨이 울린다. 일하며 걸려오는 대부분의 전화는 남편이 받았지만 그땐 내가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아.. 바쁜데 어디 간 거지. 전화기 좀 가져가지..’라고 생각하며 통화버튼을 눌렀다. 차분하고 나긋한 음성의 여자 목소리.


-안녕하세요. 혹시 홀케이크 주문이 가능할까요? 내일이 제 생일인데 이곳 케이크를 꼭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제가 가지러 갈 수 없는 상황이라 그런데 혹시 배달도 해주시나요? 아이가 어린데 제가 몸이 좀 안좋아서요..

-따로 배달 서비스가 있지는 않고요. 멀지 않으면 저희가 상황 봐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원래는 이틀 전까지만 예약을 받고 전날 오전부터 작업을 시작하는데요 지금 마침 여유분의 재료가 있으니 빠른 결정 해주시면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아 네 정말 다행이네요. 바로 입금해 드릴게요.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서 왠지 아이가 어리다는 말보다 몸이 안 좋다는 말보다 남편도 아닌 본인이 생일 케이크를 직접 주문한다는 사실에 더 크게 동요했다. ‘컨디션도 안 좋은데 아이 맡길 데도 없이 독박 육아 중이시구나 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인데 그 마음 잘 알지. 셀프 생일 케이크라니 남편은 바쁘신가? 남일 같지 않고 맘이 짠하네. 목소리만 들어도 좋은 사람인 것 같으니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신경 써서 만들어드려야지’


다음 날 정성을 덤으로 담아 선물한다는 생각으로 마당에서 가장 예쁜 꽃을 따다가 하얀 케이크 위를 장식했다. 옆에서 방금 통화를 마친 남편이 말한다. 어제 그분인데 친언니가 대신 찾으러 오신대. 아 그래? 잘됐네. 곧 오신대? 응. 금방 검은색 옷을 입은 여자분이 케이크를 찾으러 오셨고 어쩐 일인지 얼굴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안녕하세요. 동생이 주문한 케이크 찾으러 왔어요.

-아 네 여기 준비되어 있습니다.

갑자기 카운터 앞에 서있던 손님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동생이 말기 암 환자인데요 이 케이크를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암이..


그제야 아이가 어리고 몸이 안 좋아서 외출이 어렵다는 말을 이해했다. 어제의 유난히 차분했던 목소리가 떠오른다. 마지막일지 모르는 자신의 생일을 위한 케이크를 주문한 당사자와 퇴근길에 그 케이크를 대신 찾으러 온 언니. 12살 때 돌아가신 친할아버지의 임종 이외에는 죽음의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슬픔이다. 덩달아 터져 나오는 눈물을 감출 수 없어 안녕히 가시라는 인사도 못하고 창문 너머로 케이크를 들고 돌아가는 손님의 뒷모습만 바라봤다. 손님의 검은색 옷이 절망을 한껏 머금고 있다.


오픈한지 얼마안된 특별히 홍보도 안 하는 작은 가게를 어떻게 알고 전화를 주셨던 걸까. 그날 가족과 생일파티는 잘하셨을까. 케이크는 좀 드셨을까. 입맛에는 맞으셨을까. 궁금한 게 참 많은데 그 후의 이야기는 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듣지 못하고있다.

작가의 이전글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한 겹 한 겹 쌓아 올린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