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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Nov 16. 2023

Oh! Sugar Sugar

4일간 출장을 다녀온 다음 날 피로를 가득 안고 첫 출근을 했다. 매장은 영업을 하지 않는 화요일이라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여유 있게 일을 시작한다. 하루정도 쉬었다가 일하고 싶지만 현실은 늘 이런 식이다. 그래도 아이가 하원할 때쯤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쉬면 좀 괜찮아질 것이다. 몸은 좀 무겁지만 꿋꿋하게 계량을 시작하고 빵을 굽기 시작했다. 생크림은 남편이 준비하기로 했는데 바닐라빈을 다루기가 귀찮은 남편이 나에게 부탁을 한다. 평소라면 받아주지 않지만 내가 없는 동안 혼자 장사하며 케이크까지 만드느라 고생했으니 이런 요령쯤 가볍게 눈감아 주기로 한다. 평소 하던 대로 양을 맞춰 계량을 마친 생크림의 양이 어쩐지 적어 보인다. “응? 생크림 한 통 덜 넣은 거 아니야?” 남편은 비어있는 통들을 보여주며 맞게 했음을 어필한다. 이상하다.. 기분 탓인가.. 어린이집 하원 시간 전에 일을 마쳐야 하므로 이내 다음 일에 집중한다.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어린이집 차가 도착했다. 남편이 담당하는 샌딩 작업은 모두 끝났고 나만 마무리하면 집에 갈 수 있다. 본인 할당량을 끝마친 남편이 설거지를 하기 위해 그릇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이어트하자고 약속한 지 하루도 안 지났는데 남편은 사용하다 남은 생크림을 한 주걱 왕 먹는다. 오만가지 잔소리가 튀어나오려는데 남편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망했다. 설탕 안 들어갔어….”,”뭐~~~~ 어????????????? 하………..”,”하아……..” 정말 한숨 말고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아…… 올 들어 최악이다 정말. 왜 하필 오늘이냐…..” 사실 설탕을 빼먹은 실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초창기에 한 두어 번쯤 해봤던 실수지만 그땐 케이크 만드는 양도 적었고 하원하는 어린이는 뱃속에 얌전히 있을 때였다. 예약이 있어 만들어둔 케이크 양이 적지도 않고, 출장에서 어제저녁에 돌아온 후 출근했고, 어린이도 하원을 마쳤는데 오전부터 하던 일을 오후 6시에 새로 시작해야 하다니. 만들어둔 케이크에 생크림만 거둬내고 다시 하고 싶지만 옛날에 다 해봤다. 그렇게 하는 게 새로 일 시작하는 것보다 오래 걸리고 빵 상태도 보장할 수 없다. 꼼짝없이 일을 새로 시작했다. 매장에 돗자리를 펴고 이불을 깔아 아이를 재우고 나서 케이크를 만들었다. 청소는 사치고 겨우 케이크만 완성해 두고 가게를 나서니 12시가 다 되어간다.


다음 날.

안드로메다에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정신머리는 또 한 번 실수를 저지른다. 이번엔 내가 예약 장부를 잘못 봤다. 다음 날인 목요일 예약을 봐야 하는데 금요일 예약으로 계량을 하고 빵 굽기를 마무리했다. 어제의 일도 있고 신중하게 생크림을 준비하는데 남편이 먼저 뭔가 잘못 됐음을 알아차렸다. “내일 쑥케이크 예약 2개 더 있는데 왜 하나만 했어?”,”……………?!”,”아… 내가 진짜 정신이 없다. 하.. 기운 빠져. 도망가고 싶다 진짜”,”그래도 마지막에 설탕 빠진 거 알게 된 것보다 나아”라고 생각했는데 퇴근 시간이 어제랑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는 이틀 연속 매장 바닥에서 잠들었다. 엄마 아빠 기다리느라 아이도 힘들었을 텐데 (나 일하기 편한 대로 있어주지 않는다고) 온갖 짜증을 아이에게 내버렸다. 미안하고 짠한 마음에 잠든 아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신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때에는 예약이 없어도 괜찮은데 공교롭게 예약도 좀 있어서 주말까지도 연달아 아이를 데리고 야근을 했다. 평일에도 주말에도 아이와 함께 놀아주지 못하는 부모가 됐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아이와 함께 가볼 만한 곳이 많은 제주도에 살면서 우리는 한 번도 마음 편히 놀아보지 못했다. 계절마다 바뀌는 자연도 느껴보고 포켓몬 팝업스토어 같은데도 가보고 싶은데.. 방학기간마저도 어린이집 통합보육의 기간으로만 알고 있는 아이에게 한 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우리의 현실이 슬프기까지 하다. 요즘 나는 한창 여행 유튜브에 빠져있다. 성향상 여행을 좋아하지 않아 어딘가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못해보고 살아왔지만 내년에는 꼭 아이와 함께 어디든 가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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