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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Jan 15. 2024

가게도 중요하지만 일상도 지켜야지

일만 하며 서서히 휴식 같은 건 잊어가던 우리는 2년 전 어느 날 이틀의 휴무를 하루로 줄였다. 그로 인해 단 하루의 휴식마저 빼앗긴 일상은 제어 장치가 고장 난 열차처럼 쉼 없이 달리기만 했다. 늘 한 발 늦은 채로 무언가의 뒤꽁무니를 쫓는 기분으로. 지난가을쯤 함께하던 직원을 끝으로 더 이상의 새로운 멤버 없이 남편과 둘이 일하고 있다. 케이크 집의 대목인 연말을 지나며 오랜만에 늦은 새벽까지 야근을 했다. 뒷마당 고양이 형제들 마저 깊은 꿈나라로 떠난 늦은 새벽. 이른 아침부터 이어진 작업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예전처럼 휴무를 하루 더 늘리자고 말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지? 하루 더 일한다고 해서 엄청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하루 덜 한다고 해서 우리가 길바닥에 나 앉아야 하는 것도 아니잖아. 몸만 축내고 있어. 이대로는 이 일을 오래 하기 힘들 것 같아. 어쩌면 평생 케이크가 싫어질 수도 있어. 우리 그냥 일주일에 하루는 좀 쉬자. 나도 쉬는 날 마음 편하게 밥 먹고 집안 정리도 하고 싶어. 칸막이 지지대가 빠져 옷장이 무너져있는데 한 달이 넘도록 손도 못 대고 있잖아. 가게도 지켜야 하지만 일상도 지켜야지.
그래 그러자.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나도 동의해.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끝난 직후부터 매장의 휴무일은 화요일 하루에서 화, 수 이틀로 늘어났다. 첫 휴일을 보내고 나니 작은 설거지 통에 빼곡하던 설거지가 하나 둘 빠지며 여유가 생기고 정리되는 느낌에 마음이 가뿐 해져서 남편에게 말했다. 온전한 하루를 얻으니까 새살이 돋아나는 것 같아. 쉬지 않고 일할 때는 변기에 앉았다 일어나서 손 씻고 다시 일하러 나올 때마다 뭔가 되게 억울한 게 있었는데 그 느낌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어. 다음 주도 그다음 주에도 이렇게 쉴 생각 하니까 너무 즐겁다. 



오롯이 남편과 둘이서 가게와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다 보니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모호하다 못해 한 덩어리가 되어 이리로 저리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온 부모 세대의 삶을 안타까워하며 나는 그 고단한 굴레를 벗어나길 바라왔다. 하지만 학창 시절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그 모습이 어느새 내게도 어른거리고 있었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추가 예약을 받아 야근을 하고, 케이크가 많이 남는 날에는 연장 영업까지 하며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 했다. 집안일보다는 늘 가게일이 우선이었다. 케이크 하나라도 더 파는 것이 가정을 위한 일이었기 때문에 온 에너지를 가게에서 쏟아냈다. 집으로 돌아와 씻을 힘조차 남지 않아 아이와 함께 그대로 뻗어버리는 날들이 늘어갔다.

주방과 거실은 말할 것도 없고 집안의 모든 곳이 정리가 안된 상태였다. 오픈과 마감 시간이 따로 없는 집안일은 늘 후순위로 밀리고 밀려 따로 날을 잡지 않으면 정리가 안될 정도로 늘 포화 상태였다. 건조기에 넣으면 안 되는 새 니트를 따로 빨아야지 하고서 두 달이 다 되도록 한 구석에 방치하거나, 분명히 버려야 하는 것을 아는 상한 식재료를 눈으로 보고도 그냥 냉장고 문을 닫아 버리는 날들이 길어질수록 삶의 질은 떨어졌다. 자존감도 함께 떨어졌다.



휴무를 늘린 후 네 번째 휴일을 앞두고 있다. 그 사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는지 메뉴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인기는 있었지만 만들기 복잡했던 레몬무스케이크를 다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레몬을 씻어서 제스트를 갈고 즙을 짜서 씨를 걸러내는 과정이 생각만 해도 번거로워 3년이 지나도록 만들지 않았다. 레몬무스케이크를 맛보았던 손님들의 문의가 계속 있었다. 하지만 만들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제는 만들지 않는다는 안내만 했었는데 다시 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큼한 레몬의 맛을 기다리던 손님들은 기뻐했고 쇼케이스에도 생기가 더해졌다. 


내일은 피로에 밀려 메뉴에서 빼두었던 코코넛아이스크림과 피스타치오아이스크림을 만들 예정이다. 쉬는 만큼 메뉴를 하나 둘 부활시키니 결과적으로 업무량은 비슷할지 몰라도 그 하루의 숨구멍은 이렇게 마음속 고래를 춤추게 한다. 휴일 만세 만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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