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기한이 벌써 지난 거야?
얼마 전 냉장고에 사다둔 순두부가 생각나 유통기한을 확인해 보니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 있었다. 식재료를 사다 놓기만 하고 고스란히 버려지는 일이 많아 요즘엔 필요한 만큼만 사려고 노력했는데 또 이런 일이 생겨버리다니. 시간에 쫓기며 일하느라 살림에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하다는 합리적인 핑계 앞에서도 내 살림은 왜 이 모양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든다.
아침 시간에는 전 날 미리 준비해 둔 밥을 챙긴 후 설거지 할 시간도 없이 싱크대 가득 일거리를 남겨두고 출근한다. 한창 일하는 낮에는 요깃거리로 허기를 채우고, 드물지만 야근이 없는 저녁에는 종종 외식을 하거나 집으로 돌아와 오전에 남긴 설거지를 하며 식사를 준비한다. 바쁘다는 핑계 속에서도 삶은 계속되기에 더 나은 살림에 대한 욕구는 전혀 지금의 사정과는 관계없이 커져만 간다. 눈치 없는 알고리즘은 한술 더 떠 살림을 기똥차게 해내는 주부들의 피드를 연신 띄워주느라 정신이 없다.
결혼 전 다섯 식구가 모여 살 때 엄마는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었다. 양쪽 할머니들의 음식까지 더해져 냉장고는 늘 먹을 것으로 가득했다. 그 시절 난 식욕 왕성하던 시기였고 필요한 양 이상의 음식은 다른 식구들의 몫으로 남겨둘 수 있었기 때문에 식재료의 양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가족이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음식은 많을수록 좋았다. 그런 평생의 습관으로 내 살림을 하려니 점점 냉장고는 가득해져 갔고 감당하기 어려운 재료들은 하나 둘 썩어서 버려졌다. 채소류는 단골 폐기 대상이고 각종 유제품 및 계란 심지어 고기까지 버리는 일이 생겼다. 분명 많은 양을 샀던 건 아니었는데 왜 자꾸 버려지는 거지? 바쁘다는 핑계로 요리를 못해서 그런가 싶어 열심히 늦은 시간까지 반찬을 해도 그대로 냉장고에 있다가 곰팡이 꽃을 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제야 나의 식사 패턴을 생각해 보게 됐다. 남편과 아이는 주로 내가 먹자는 대로 따르는 편이라 나의 패턴이 곧 우리 가족의 패턴이다.
첫째, 한번 먹었던 음식은 한 동안 생각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오전에 먹은 카레를 저녁에도 먹을 수 있지만 다음날이 되면 전혀 새로운 음식이 생각난다. 어제는 집밥을 하느라 힘들었으니 오늘은 외식을 하자고 제안하거나, 일하느라 끼니를 놓치고 간편식을 먹는다. 3일쯤 지나고 다시 생각나면 좋으련만 같은 음식이 또 먹고 싶어 지는데 평균 두어 달 이상 걸리는 것 같다. 남겨둔 반찬들은 남편과 아이가 좀 더 먹다가 그래도 남으면 냉장고 뒤로 밀려난다.
둘째, 이 정도는 다 먹을 줄 알았지
집에 먹을 것이 떨어져 마트에 가면 ‘이 정도는 두고 먹겠지’ 싶어서 의심 없이 집어든다. 감자를 예로 그 양의 변천사를 보자면 처음엔 1kg짜리를 샀다가 반 이상을 싹 틔워 버리기를 반복했다. 1kg이 우리 가족에게는 많구나 싶어 낱개로 3~4개 정도 비닐에 담아 가격표를 받아왔고 역시 한 두 개는 버리는 일이 생겼다. 이것도 안 되겠다 싶어서 어제는 카레 재료로 사용하려고 주먹만 한 감자 2개를 사 왔는데 또 하나가 남았다. 앞으로 큰 감자는 1개 작은 감자는 2개가 우리의 정량이다.
셋째, 식사 계획을 지키기 어려운 자영업자의 생활
주로 마트에 가는 시간은 야근이 없는 날의 저녁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두 세끼 정도는 생각하며 장을 보는 편이다. 그렇게 고기도 사고 생선도 사고 무나 당근 같은 단단한 채소들도 사놓고 두부도 사고 콩나물도 산다. 애초의 계획과 다르게 야근이나 손님의 방문 등 변수가 생겨 냉장고를 들여다보지 못하면 어느새 식재료 및 음식들이 변질되기 시작한다.
넷째,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많지 않다
유튜브에 먹방 콘텐츠가 유행하기 전부터 내 안에는 대식의 욕망이 있었다. 대식가를 꿈꾸던 그 시기에도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양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많이 먹는 사람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 번에 한 가지만 먹기보다 조금씩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남편과 시내에 볼일이 있어 다녀오면서 사정상 포장 음식을 돌아오는 차에서 먹어야만 했다. 맥도널드에서 햄버거세트 1개와 단품 버거 1개를 포장하고 근처 김밥 맛집에서 김밥을 포장해 한 줄씩 먹고는 늦게까지 소화가 안 돼서 결국 저녁을 먹지 못했다.
얼마 전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을 버리며 생각했다. 우리에게 적절한 음식의 양은 당장 지금 먹을 수 있을 만큼이라는 것을. 지구 환경을 위해서 딱히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아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무거웠는데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나가는 일부터가 내가 실천할 수 있는 환경운동이라는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