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런이유지 Oct 15. 2023

두부조림

테두리가 쫄깃하게 구워진 두부를 고춧가루와 간장 그리고 양파와 고추가 들어간 양념장을 넣어 만든 두부조림. 대수롭지 않던 그 맛이 부쩍 그립다. 만들기 간단한 밑반찬 중 하나라고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장벽이 느껴지는 메뉴이다. 홈메이드 두부조림의 이미지는 널찍한 쟁반에 질척하게 붙어있는 젖은 키친타월의 모습인데 생각 만으로 번거로워 두부를 사놓고도 만들지 못한 날들이 모여 수년의 시간이 흘렀다. 마트에서 조림용으로 집어든 두부는 주로 된장찌개와 김치찌개가 되어 밥상 위에 올려졌다. 종종 식당에서 밑반찬으로 나오는 두부를 만나면 메인 요리보다도 반가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며칠 전 꼭 조림을 하리라 마음먹고 커다란 두부를 하나 사 왔다. 이번만큼은 절대 다른 메뉴로 변경하지 않겠다는 그 마음 변치 않으려 전날부터 두부조림 영상을 여러 편 찾아봤다. 퇴근 후 아이를 아빠에게 맡기고 경건한 마음으로 두부를 자르고 채반에서 물기를 좀 뺀 후 키친타월에 하나씩 썰어 나열했다. 수분을 빼기 위해 펼쳐둔 두부의 면적이 넓어지는 것이 싫어서 키친타월을 사이사이에 두고 층층이 쌓아 올렸다. 겉 부분이 쫀득한 것이 먹고 싶었기 때문에 약한 불에서 천천히 두부를 구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온 집안에 연기가 가득하다. 감기 때문인지 연기 때문인지 연신 아이의 기침 소리가 들려오지만 굽는 과정을 멈출 수 없다. 1시간이 넘도록 두부를 굽고 일부는 아이를 위한 간장조림으로 마무리했다. 엄선한 레시피로 원하던 매콤한 양념장을 만들어 조림을 완성하니 냄새를 맡고 자다가 일어난 남편이 당장 밥을 먹어야겠다고 한다. 건강 검진을 위해 식이조절 중인데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밥이라니.. 겨우 말려서 방으로 돌려보냈다.


다음 날 출근하자마자 싸가지고 간 도시락부터 열었다. 그런데 그렇게나 정성을 들여 완성한 예쁜 내 두부에서 생각했던 맛이 나지 않았다. 만들고 바로 먹지 않아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식감도 다르고 양념맛도 뭔가 부족하다. 기대했는데 부족한 2%가 뭔지 너무 궁금했다. 어젯밤 정말 열심히 두부를 썰고 굽고 조렸는데. 부침용 말고 찌개용 두부로 다시 해볼까? 굽는 시간이 좀 길었나? 모르겠으니 일단 먹기로 한다. 


사실 밑반찬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둘씩 만들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아침잠이 많은 엄마로 살다 보니 아이의 아침식사를 챙겨주는데 밑반찬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한 가지든 두 가지든 주는 대로 잘 먹어주는 아이 덕분에 컨디션에 맞게 한 두 가지 정도만 준비해 둬도 충분하다. 보통 잠들기 전 반찬을 만들어두는데 비교적 만들기 간단한 것들은 바로 끝내지만 과정이 복잡하면 이틀에 걸쳐 만들기도 한다. 그저께는 먹었던 경험만 있지 만들어본 경험은 없었던 고구마줄기를 사 와서 1시간 넘도록 껍질을 까서 완성하지 못한 채 냉장고에 넣어뒀다. 어제는 바빠서 볶지 못했고 오늘은 퇴근 후 완성할 계획이다. 


식당이든 집밥이든 직접 차려먹지 않을 땐 밑반찬을 보면 이건 맛이 어쩌고 저건 저쩌고 하면서 평가하기 바빴다. 차려준 밥상 잘 먹고 감사하기보다 미식가라도 된 듯 맛을 평가하다가 고작 밥상 치우는 것을 귀찮아하던 날들은 분명 내 흑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아있다. 몇 번 반찬을 만들어보고 나서야 뒤늦게 반찬투정 하던 지난날들을 반성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