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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Aug 19. 2023

평범하고 소중한 일상

정신없이 일하며 살다 보면 가장 먼저 포기하게 되는 것이 제때의 끼니와 수면이다. 건강하기 때문에 바쁘게 살아갈 수 있고 행복을 위해 열심히 사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 근본을 저당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양질의 식사와 수면에 대한 의지까지 없는 것은 아니라 일하며 떠오르는 식재료나 간식을 로켓배송으로 주문하기도 한다. 마트라도 들르면 어찌나 사고 싶은 것들이 많은지 집으로 돌아와 냉장고 테트리스 한판 신나게 하고서야 숨좀 돌릴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재료를 사 오면 바로 요리를 시작할 텐데 우리 집 주방에서 그런 자연스러운 루틴이 돌아갈 확률은 반반이다. 아침부터 종일 서서 일한 탓에 오래도록 가라앉지 않은 다리의 붓기는 주방으로 향하려는 의지를 쉽게 꺾어버린다. 그래도 마트를 들렀기 때문에 가능성이 반이나 생긴 것이다.


어느 집 남편은 매 끼니 다른 반찬을 해줘야 한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눈살을 찌푸리며 “으휴~ 진상. 그런 사람한테는 절대로 밥을 해주면 안 돼”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우리 집은 그 진상 남편 역할이 바로 나인 것 같다. 만드는 역할도 나라서 다행이지 나 같은 사람한테 구박받으며 살뻔했다. 엄마는 ‘먹고 싶은 것도 많다. 누가 보면 임산부인줄 알겠어’라는 말을 자주 했었다. 정작 임신 기간에는 특별히 음식을 가리지 않았고 먹는 양이 늘어지도 않았다. 남편과 아이는 매 끼니 같은 것을 줘도 군소리가 없는데 내가 늘 새로운 것을 찾는다. 어제 먹은 건 어제 먹어서 싫고 냉장고에 넣어둔 반찬은 그냥 먹기가 싫다. 의지를 따라잡지 못하는 실행력 덕분에 정작 먹는 음식은 고만고만하다. 김치찌개나 김치볶음이나 된장찌개나 남편이 좋아하는 제육볶음. 한식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입맛 덕분에 새로운 것좀 먹어보자 하다가도 제자리를 찾듯 다시 한식으로 돌아온다.


지난 목요일에는 남편의 생일을 기념해서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일을 마치고 난 후 저녁 6시가 넘은 시간이라 맛집을 찾아볼 열정도 식당까지 찾아갈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고민은 아이의 취침시간만 늦출 뿐이어서 얼른 마트에 들러 국거리와 불고기용 소고기를 사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침 손님의 방문으로 별거 아닌 반찬이지만 풍성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리끼리 있었다면 국이며 반찬이 남았겠지만 여러명이 함께한 덕분에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운 저녁이었다. 퇴근 후 가져온 조각 케이크에 초를 꽂아 생일축하 노래도 불렀다. 마감시간 없는 레스토랑이다 생각하고 우리만의 속도로 식사를 마친 후 바닷가를 산책하고 돌아와 평범하지만 특별했던 하루를 마무리했다. 편안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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