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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이유지 Aug 02. 2023

아침밥

사실 집밥이 좋기는 하지만 생각은 많고 행동이 느린 내가 주방을 향해 움직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이 많을 땐 도저히 음식 할 짬이 안 나서 못하고, 아이가 어릴 땐 애보느라 전전긍긍하다 지쳐서 못하고, 정말 뭔가를 해보려고 하다가도 결정적 재료가 하나 빠져서 못하고, 지금은 엊그제 급체했던 속이 주방으로 가려니 다시 울렁거려서 누워있다. 참 핑계도 많다.


어릴 적 우리 엄마는 핑계가 없었던 것 같은데. 외식도 거의 안 하던 시절이라 그 끼니는 모두 엄마의 몫이었다. 집안일을 안 하던 아빠의 아내로 살면서 우리 셋을 키우며 매 끼니 음식까지. 그런 엄마에게 우리는 (특히 나는) 음식 투정을 많이도 했다.


엄마밥을 먹고 자라던 나에게도 내가 지은 밥을 먹으며 나를 향해 엄마라고 부르는 꼬마가 있다. 못된 둘째 딸로 밥상 앞에서 불만도 많던 나에게 무슨 행운인지 엄마밥을 최고라고 말해주는 귀염둥이와 “뭐 필요해?”가 입에 붙은 남편이 옆에 있다. 누워서 밥 안 할 궁리나 하고 있는 나를 가운데 두고 아이는 쌔근쌔근 귀여운 배를, 남편은 넓직한 등을 보이며 쿨쿨 자고 있다. 그리고 급체해서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화장실로 뛰어 들어갔던 마트에서 사다둔 재료들이 냉장고에 그대로 있다.


아침잠 많은 내가 이렇게 먼저 일어나 정신이 말똥말똥한 날이 많지 않으니 오늘 아침은 두 사람이 일어나기 전에 요리를 시작해야겠다. 오늘 우리 집 모닝콜은 밥 짓는 냄새와 뚝딱거리는 도마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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