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겨레에서 진행한 동화 작가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작가 수업을 선생님 한 분이 진행하는 게 아니라 현역에서 활동하시는 동화작가님들과 평론가님들이 돌아가면서 수업을 하셨다. <만복이네 떡집> 김리리 선생님, <푸른 사자 와니니> 이현 선생님, <옹주의 결혼식> 최나미 선생님 등 동화작가님과 동화 쪽에서 꽤 유명하신 평론가님들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던 귀한 시간이었다.
성함은 생각 안 나지만 평론가 한 분이, 본인은 동화를 평가하는 직업이지만, 동화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동화작가분들을 존경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화작가 지망생인 수강생들도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나도 요즘 그 평론가님의 말씀에 백번 공감하고 있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의 글을 고치기만 했는데, 내가 직접 글을 쓰려니 여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세상에 책을 낸 모든 작가님들을 존경한다. ^^ 아니, 사랑한다.
그렇다면, 어떤 글을 써야 하는 걸까?
내가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구체적으로 쓰기다.
특히 책은 읽는 사람이 다수다. 그래서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한 분야에서 전문가인 분들이 저지르기 쉬운 실수가, 본인들만 알고 있는 전문 용어들을 늘어놓는 것이다. 전문 용어들이 최대한 일상의 용어로 녹아들 수 있게 배려해야 한다.
에세이를 쓸 때도 구체적인 글 쓰기는 중요하다. 뭉뚱그려 '아침에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출근했다.'라고 쓰기보다는 '오전 여덟 시, 내가 2호선 지하철에 오른 시간이다. 옆사람의 숨소리도 느껴질 만큼 붐비는 지하철 안, 회사까지의 거리는 달나라까지 가는 것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
막연히 '아침'이라고 하기보다는 '여덟 시'라고 구체적으로 말해 주면 좀 더 친절하고 세심한 글이 된다. '지하철'이라고 쓰는 것보다는 '지하철 2호선'이라고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만 써놓아도 붐비는 지하철이라는 걸 독자들이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출근길 지하철 2호선이 얼마나 붐빌지 상상이 가고도 남는다.
결국은 공감이다. 자신의 글을 읽은 상대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계속해서 읽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마케터의 문장>에도 같은 말이 나왔다.
미국의 저명한 광고 카피라이터인 조셉 슈거맨이 남긴 명언이다.
“첫 번째 문장의 목적은 두 번째 문장을 읽게 하는 것. 두 번째 문장의 가장 큰 목적은 세 번째 문장을 읽게 하는 것이다.”
즉 독자가 계속 읽고 싶어 하는 문장을 쓰라는 뜻이다.
자기만 알고 있는 언어가 아니라, 모두의 언어로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자. 물론 내가 쓴 글이 모든 사람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적어도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불친절한 글을 쓰지는 말아야 한다. 내용이 부족하면 자신이 전하려는 메시지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