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욜로족
유럽 배낭여행 나도 해봤었다.
29살 겨울 무렵, 유럽의 낭만을 꿈꾸며 혼자만의 배낭여행이 시작되었다.
멀쩡하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려고 이유를 찾기에 바빴던 것 같다.
그동안 갈고닦은 영어실력 테스트도 해본다는 목적이 있기도 했고, 30대를 맞이하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여행 경로는 런던-브뤼셀-베를린-체코-빈-베네치아-스위스-파리-일본 21일간의 자유일정이었고, 호텔 패키지였다. 여자 혼자라서 그랬던지 완전 자유여행은 아니라 자는 곳은 좀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지금이라면 그냥 자유여행을 했었을 것 같다.
그 시기엔 같이 갈 지인도 없었지만 혼자라서 자유롭기만 할 거라는 게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전에 대학생 때 다녀왔던 두 번의 해외여행 경험은 있었다.
처음 해보는 12시간의 비행은 정말 길었다. 앉아서 식사 두 끼를 먹었고 잠도 충분히 자고 영화도 봤는데도 아직 남은 시간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다 옆자리에 앉는 나보다는 훨씬 어린 남학생이 같은 목적지에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던 것 같다.
도착시간은 아침시간이었다.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짐을 놓고 와서 만나 오늘의 일정을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그 당시에는 전화기도 없던 상황 한국의 전화기로 해외 로밍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냥 시간을 정했고 약속시간 장소에서 만나야 했다. 지금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시대 풍경이다.
다행히 약속시간이 되어 잘 만날 수 있었고 숙소에서 일행을 만났다며 같이 와서 3명이서 첫날 일정을 함께 할 수 있었다. 딱 거기까지 기억이 나고 그다음부터는 드문드문 기억이 난다.
거쳐간 도시명은 지도를 다시 보면 알겠는데 여행지가 기억나지 않았다.
전화기가 없었다면 상상이 되는가? 카메라가 있던 시절이었다. 디지털카메라이긴 했다. 사진은 많이 찍었었지만 생각은 많이 나지 않는다. 사진을 보면서 기억을 더듬을 수 있을 뿐이다.
제일 기억나는 것은 그때의 감정.
혼자 밤새 기차를 타고 이동했어야 했는데 그때의 무서움, 그게 생각이 난다.
독일에 들른 호텔에서 본 그 문손잡이가 생각이 난다. 열려는 흔적이 너무나 뚜렷했고 바로 옆은 큰 창문이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 방을 프런트에 가서 바꿔주길 요청했으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연히 만난 여학생 두 명에게 하룻밤 신세를 지기도 했다. 더블침대의 중간자리가 얼마나 불편했던지 그 느낌은 기억이 난다.
그때 느꼈다. 같이 오는 이유가 있구나. 혼자서는 자유롭긴 했지만 무서웠다.
그 이후 최대 고비가 현금 인출이 안되었을 때였던 것 같다. 돈을 많이 들고 가면 소매치기당할 위험도 있고 하니 적당히 가져가서 현금 인출기에서 출금을 한 다음 사용을 하면 된다고 했는데 출금 기계를 찾을 수 없었다. 또 미리 예약해둔 호텔에 숙박하는 것이 싫어서 한국 민박을 구해야 했는데 당장 돈이 없어 급히 송금받았던 기억이 있다.
돌이켜보면 목적지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목표는 없었던 내 성향 덕분에 비싼 비용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너무 빨리 잊힌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문제는
목적지에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그 목적지가 어디냐는 것이다.
- 메이벨 뉴컴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