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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Jan 17. 2023

부모 되기, 사람 되기를 읽고

부모 되기를 자인하는 일의 의미에 대해


요즘 아이 대하기가 힘들다고 생각을 한다.

결국은 또 나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내가 성장을 해야 하는 것임을.







여섯 손주의 할머니가 된 여성학자 박혜란 씨는 자식에 대한 욕망을 접는 방법으로 아이를 "언젠간 떠날 손님처럼"대하길 권합니다. 손님이 밥을 안 먹는다고 애가 타서 억지로 입에 밀어 넣는 일을 테니까요." 아이가 내 뜻대로 안 되면 안심하라"고도 말합니다. 정말 걱정해야 할 건 '아이에게 자기 뜻이 없는 거'라고 말이지요.


'모든 아이들은 부모 사람 만들기 위해 세상에 온다'는 말처럼, 부모가 된다는 것은 아이를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기를 결심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은 이 어려운 '부모 노릇'을 다들 어떻게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있는지 다양한 이야기를 한데 엮어보았습니다.

좋은 부모,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는 분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길, 먼저 흔들린 자의 깨달음과 지혜가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이 현실로 경험하는 동네 어른들에게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그리고 좋은 사람이 사는 삶은 어떤 모습인지를 자기 자신으로, 그리고 자신이 살아가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좋은 사람이 부모가 되면 '좋은 부모'가 되고, 훈장이 좋은 사람이면 당연히 '좋은 스승'이 되어 아이들에게는 부모나 스승의 존재가 그대로 '살아 있는 멘토'로 경험될 테니, 부모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자녀교육은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가르치는 사람이 자신의 삶으로써 가르쳐야 한다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의 삶이 앎의 행위가 일어나는 핵심 경로가 되어야 한다는 뜻임을 되새기자. 이는 결코 가르치는 사람의 삶을 닮고 모방하하는 말이 아니다. 자녀를 교육하고자 하는 부모라면 "가르침 역시 자기 배움의 방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이 교육을 통해 배우는 사람의 성장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은 무엇보다 자신의 배움을 통해서이다. 따라서 자녀의 삶을 성장하게 하는 교육은 가르치는 부모와 배우는 자녀가 마주 보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삶 '뒤'에서 꽃핀다.


자녀를 이상화할 때 부모의 사심이 커진다.



오드리헵번의 마지막 임종을 앞두고 아들에게 보낸 마지막 크리스마스 카드


매력적인 입술을 갖고 싶으니?

그러면 친절하게 말하거라.

사랑스러운 눈을 갖고 싶으니?

그러면 사람들에게서 좋은 점을 보도록 해라.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으니?

그러면 너의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아름다운 머릿결을 갖고 싶으니?

그러면 하루에 한 번이라도 아이들이 네 머릿결을 어루만지게 하여라.

아들아, 나이를 먹으면 너도 알게 된단다.

우리가 두 개의 손을 가진 이유는 한 손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한 것임을.


이 마지막 카드를 받았던 오드리 헵번 아들이 2015년 세월호 1주기 때 한국에 와서 '기억의 숲'을 조성해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자고 기금을 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그땐 정부 차원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는 일을 온갖 수단을 동원해 방해하던 시기여서 그랬다. 이듬해 2주기 때는 아들의 두 딸 그러니까 헵번의 두 친손녀가 한국에 왔다. 이들의 한국 방문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드리 햅번의 사랑의 나눔과 돌봄의 삶이 자녀와 손자녀의 삶에 좋은 '환경'이 되었기에 가능했던 '필연적'사건이었다.


부모가 자녀의 성장을 위한 환경이 되려면, 부모는 자녀와 함께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며 자기 삶의 마디를 만들어가되 스스로 성장하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의 뒤꿈치가 배우 사람이 도달해야  삶의 종착점이 되게 해서는  된다. 물론 부모가 좋은 환경이 된다고 해서 자녀의 삶이 쉬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비에 흠뻑 젖는 사람도, 강한 바람에 밑동이 뿌리째 뽑힐 두려움에 떠는 사람도 자녀 당사자일 테니까,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차이는 '  견디면,  비바람 버티면 나도 우리 부모의  믿음직한 마디를 만들어낼  있겠구나' 하는 삶의 희망이 살아 있는가이다.  희망의 존재 여부가 부모가 자녀의 삶에 좋은 환경인지 굴레인지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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