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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Feb 21. 2021

육아(我)일기

워킹맘 2주차

다음날 별일만 없다면 해 뜰 때 잠드는 걸 선호할 정도로 지독한 올빼미인 내가 요즘 밤 열 시면 곯아떨어진다.

먼저 워킹맘이 된 친구들이 아홉 시에 아이들을 재우며 같이 잠에 들게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난 그래도 하고 싶은 게 많으니 의지를 발휘해서 내 시간을 지켜내지 않을까 싶었는데, 교만이었다. 피곤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침에 곤히 자고 있는 아기를 기저귀갈이로 깨우고, 간신히 옷을 입혀 무거운 아기, 무거운 내 가방을 들쳐 메고 차에 태운다. 초보운전인 내가 아드님 목, 척추 등의 무사를 위해 몹시 막히는 올림픽대로 안에서 양발 잔뜩 힘을 주며 최대한 스무스하게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번갈아 누르고 떼려 온 힘을 기울인다. 어떤 날은 집에 오면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다. 등원시킬 때 울면 또 어쩌나 하는 걱정에 요즘도 집을 나서기 전에 배가 아프다. 울어도 어쩔 수 없지만, 그 어쩔 수 없음에 속상하고 그게 또한 스트레스가 된다. 나도 이런데 아들은 오죽할까.

일은 또 어떤가. 그간 해보지 않았던 완전히 새로운 업무라 익히는 중이다. 나도 아직 익히는 중인데 외부에서 문의전화가 오면 식은땀이 삐질삐질 난다. 내가 있는 곳은 특별한 자료들을 갖고 있어서 잠잠할 땐 잠잠하지만 일이 터지면 크게 터지는 곳이기도 하다. 일도 처음, 같이 일하는 분들도 처음이라 머리와 마음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함에 꾸역꾸역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틈틈이 아들이 잘 있나 궁금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도착해있는 키즈노트 알림장으로 아들의 활동상을 보고 안심한다. 웃고 있는 사진이 올라온 날에는 한참을 들여다보곤 한다. 괜히 식단표에도 들어가 오늘은 이런 걸 먹었구나, 한다.

열람실 근무이기에 다른 사람들처럼 몇 분이라도 조금 일찍 아기를 하원 시키러 가는 것이 쉽지 않다. 덕분에 우리 아들은 끝에서 두 번째, 혹은 끝에서 첫 번째로 하원한다. 그래도 그나마 그 끝에서 첫 번째가 되지 않도록 퇴근하자마자 사무실 건물에서 어린이집 건물로 최대한 신속하게 달려간다. 다섯 시부터 엄마를 찾는다는 아들에게 엄마를 좀 더 일찍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이때 뛰려고 요즘은 구두를 안 신고 운동화를 신는다. 운동을 안 한 지 오래라 심장이 아프다.

보통은 퇴근시간만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막히는 퇴근 시간이 하루 중 스트레스가 가장 큰 시간이다. 출발 전 아무리 핸드폰을 두들겨대며 다른 경로들을 검색해봐도 노답.(이럴 땐 생각한다. 다음 분관(..)은 어디 시골 한적한 곳도 괜찮겠다고..) 찡찡거리는 아들을 어르고 달래며, 때로는 무시하며 내 갈 길을 향해 간다. 초보운저너에게 아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나가는 능력은 사치다. 그래서 요즘은 핸드폰을 테이프로 차에 붙여 아들이 좋아하는 포레스텔라 삼촌들의 노래 영상을 틀어준다. 그나마 조금 낫다. 휴. 기어이 뽀로로는 안 된다며 선택한 차선이다.

집에 와서는 엄마랑 오랜 시간 떨어져 있던 아들을 위해 정성을 들여 놀아준다. 잠시 그러다가 밥을 달라고 하면 밥을 푸고 반찬을 준비해 대령해드린다. 밥을 먹는 동안 간단한 설거지를 하고 내 밥을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하면 금세 또 한 시간이 지난다. 아들이랑 얼마 놀지도 못했는데 아들의 잘 시간이 온다. 그리고 아들이 잠들면 나도 같이 진이 빠져 초저녁에 헤롱헤롱 잠이 든다.

잠이 안 드는 날은 빨래거리가 있으면 빨래를 하고, 거실에 아들 장난감이 너무 너저분하면 대충이라도 정리를 한다. 어린이집 준비물이 있으면 미리 챙겨 가방에 넣어주고, 다음날 입을 옷들도 미리 꺼내놓는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과 체력이 부족하다. 집에 정리하고 청소해야 할 것들이 쌓여있을 때 생기는 나의 출처 없는 죄책감은 또다시 스트레스로 돌아온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흘러가는 중이다. 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자꾸 미뤄진다. 시간과 체력은 자꾸만 부족하다. 거의 못 느껴본 무기력함도 종종 느껴진다.

그렇지만 다 내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에, 하루 안에 있어 내가 마주하는 모든 순간들에 그냥 그때그때마다 최선을 다 하기로 했다. 길이 막혀도 뭐 어쩔 수 없이 길은 가야 하는 거고, 일을 하는 시간에는 다른 걱정 하지 말고 일에 최선을 다 하기로. 순간순간 내가 맡는 역할들에 그냥 집중하기로 했다. 어쩌면 이 모든 당혹스러움은 내 한 몸뚱어리에 주어진 역할들이 갑자기 많아져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직은 몸과 마음이 모두 적응 중이니 그들이 가자는 대로 가야겠다. 억지로 힘낼 생각도, 이것저것 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잠시 멈추기로. 곤하면 쉬고, 엄마로서 아내로서 부족한 것들에 대한 죄책감도 잠시 내려놓고 조금은 여유를 갖자. 머지않아 적응하는 날이 올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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