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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Sep 08. 2020

육아(我)일기

유모차 동네산책 이야기



아기가 좀 커서 이제 집에만 있는 걸 지겨워할 때가 있다. 그럴 때 1)비가 안 오고, 2)너무 덥지 않고, 3)미세먼지가 없다는 다소  까다로운 조건이 충족되는 경우에는 유모차에 태워 동네산책을 한다. 드림이는 유모차 타는 걸 정말 좋아한다. 아니, 엄마가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쓰기만 해도 신이 나서 방긋 웃으며 몸을 흔들흔들한다. 외출하는 줄 아는 거다.


유모차를 밀며 동네를 돌다 보면 이런 저런 생각들이 많이 든다. 제일 자주 드는 생각은 어떤 가게에 들르고 싶은데 턱이 있어서 못 들어갈 때의 아쉬움이다. 그래서 외출 전 나의 머릿속 동선은 그 가게에 턱이 있느냐 없느냐로 정해진다. 가게에 대한 내 인상이 그 앞에 턱이 있느냐 없느냐로 갈릴 정도다. 그래도 꼭 들어가야겠으면 유모차야 아기를 내려서 안고 들어가면 되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들은 절대 못 들어갈 것 같다. 그때 그들의 마음은 어떨지 종종 생각이 든다. 조금 심하면 그 턱들 앞에서 좌절감까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유모차를 밀고 다녀보니 바퀴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더 넓게 보게 된다.  너무 어리석게도 예전에는 '불편하면 그냥 집에만 있으면 되지 뭐.' 라는 막되먹은 철없는 생각을 했었다. '이동권'을 강조하던 장애인들의 목소리가 이제서야 귀에 다시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감사함도 많이 느낀다. 유모차를 밀고 다니면 배려를 많이 받는다. 내가 자주 가는 카페에는 내가 유모차를 끌고 가면 사장님이 몸소 나오셔서 문을 열어주신다. 카운터에 손님이 있어 바쁘신 때에도 그렇게 해 주신다. 오늘은 내가 나갈 때 카페의 손님이 직접 문을 열어 주셨다. 나는 그분이 나가시는 길인 줄 알았는데 보니 아니었다. 또 다른 카페에서는 유모차가 못 들어가는 곳이라 아기를 들쳐메고 들어가니까 아기가 있으니 빨대를 꽂아주시겠다면서 비닐을 벗겨서 직접 다 도와주신다. 어쩌면 되게 작은 일이고, 그 일을 해 준 알바생조차 자기가 그랬는지 기억도 못할 사소한 일이겠지만,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엄청 마음이 따뜻해지고 감동과 감사가 깊게 자리잡는 일이다. 


유모차로 아기를 산책시키며 만나는 감사한 분들로부터 나도 그렇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배려를 챙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 정말 소수의 힘없는 사람들은 사회에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한다. 그저 감내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지금 내 자리에서는 절대 알 수가 없을 환경에 처한 사람들도 많이 있겠지. 내가 겪어보지 않은, 처해보지 않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진정한 차별 속에서  오늘도 그저 묵묵히 살아내는 사람들. 그런 이들에게 나의 얕은 인격에서 영혼까지 끌어 모은 배려와 감동의 일상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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