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은혜, 『음악의 언어』
실제 공연장에 가서든, 유튜브로 보든,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연주자들의 모습을 볼 때면, 음악도 음악이지만 그들의 지난하고도 험난했을 연습과정들, 상상도 못할 만큼 수많은 시간을 투자한 연습의 시간들, 인생의 시간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아 감동이 배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정말 열정적으로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을 보면 이상하게도 내 인생을 반추하게 된다.
이 책도 음악을 매개로 해서 인생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글로 음악을 연주한다고 하면 오글거리는 표현일까? 작가가 아니라 악기를 배우고 가르치는 사람임에도 글맵씨가 맛깔나서 읽으면서 그 표현 하나하나에 적잖이 놀랐다. 책은 저자의 음악 인생 에세이라고 소개하면 될 것 같은데, 'Prelude'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일반인보다 음악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쓰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음악을 느끼고, 음악을 통해 매일을 배워나가는지 글로 적었다. ... 우리의 평범한 삶과 동떨어진 음악 이야기가 아닌, 좌절과 아픔을 딛고 다시 일어선 작곡가와 연주자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음악을 우리의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소소한 방법에 대해 적었다." - 13 p.
음악에 기대어 일상을 표현하는 글들이 참 재미있었다. 나도 취미로 피아노, 바이올린 등 악기 배우는 걸 즐기는 터라 악기 연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엄청나게 공감이 되기도 했다. 큰 무대에서 연주회를 갖는 것도 아닌데 선생님 앞에서 레슨만 받으려면 긴장이 되고 지난 번 레슨 때 배웠던 것을 잘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긴다는 말에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실은 나는 연주자별로 다른 연주 스타일을 캐치한다거나 곡 해석 측면에서의 차이는 잘 못 느끼는 클래식 초심자이기에, 그리고 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하니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책을 보고 나서는 연주자가 멜로디 작곡을 제외하고는 다 하는구나, 생각했다. 작곡가가 곡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 주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은 연주자가 악곡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당대의 음악 관련 문헌을 뒤지고, 고악기까지 관찰해 소리가 나는 원리와 효과를 생각해보기도 한다. 생각보다 연주자는 깊은 '연구가'였던 것이다. 연구의 깊이에 따라 연주가 달라지고, 작곡가의 의도를 생생하게 살릴 수 있는지가 달려있는 것. 앞으로 연주를 볼 때면 더 경이로운 마음으로 그들과 그들의 음악을 대할 것 같다.
음악이라는 언어 속에서 음악가의 일상이 건져올려졌다. 그런데 신기한 건, 음악가가 아닌 나에게도 그 일상의 담담함이, 그 열정이, 그 고민이, 그 마음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것. 그래서 '음악의 언어'가 대단한 것 같다. 언어가 달라도, 음악의 언어는 국가, 직업 불문 다 통하기 마련이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소소하게 악기를 취미로 배우고 있는 사람들, 좋은 클래식 음악을 의미를 담아 듣고 싶은 사람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에세이 탐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이다.
*남겨두기
"음악을 배우는 시간은 좌절의 연속인데, 스스로에 대한 꾸준한 실망과 낙담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연습이기 때문이다. 실망하고 연습하고 약간 회복하고, 또다시 실망하고 습관처럼 연습하고 조금 더 회복하는 시간을 무한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미세하게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다음 목표를 꿈꾸게 된다. 이렇게 좌절은 조금씩 익숙해져 삶의 일부가 된다." - 24 p.
"서로 다른 소리를 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음악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삶에서는 이질적인 무언가를 포용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항상 같은 소리를 내야 하며, 남과 다른 의견은 좋지 않은 것이라고 암묵적으로 배워왔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미덕이다. 하지만 음악에서는 그렇지 않다." - 84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