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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Dec 04. 2022

도서관 천태만상 | 사서는 어디까지 도와주어야 할까

과제 지원과 작성의 사이에서

오늘도 열람실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나이가 좀 있어 보이시는 이용자가 "바쁘세요? 하하" 라고 큰 소리로 물어보며 열람실에 입장하신다. 일을 하고 있는 것 뻔히 보고 있으면서 왜 물음? 생각하며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대뜸 파일을 꺼내더니 파일 안에 있는 프린트물을 보여주며, 이것 좀 작성해줄 수 있냐고 묻는 것이다. 프린트물에는 "~ 기말결시자 과제" 대충 이런 제목이었고, 여러 장에 걸쳐 과제들이 적혀 있었다. 과제들은 이러했다.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읽고 서평을 쓰라." 등등. 


나는, 과제 작성은 선생님이 직접 하셔야 하는 것이고, 사서는 과제하실 때 도움이 되실 만한 자료들을 최대한 찾아드리는 것은 할 수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도 자꾸 다른 프린트물을 보여주며 "그럼 이건 안 돼요?" 라고 묻는 것이다. 나는 수 차례 같은 말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에는 이 이용자분이 포기하고 다른 열람실로 가셨다. 포기한 거 맞겠지?...


사서는 이용자를 어디까지 도와주어야 하는 것일까? 여러 문헌들을 보면 전 세계적으로 도서관과 사서는 기존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하게 되는 추세이긴 하다. 청년들의 취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넥타이와 정장을 빌려주는 도서관도 있고, 학생들에게는 개인별 방과후 프로그램을 제공해 과외를 하듯이 과제 해결을 위해 도움을 주는 곳도 있다고 한다. 도서관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범위가 매우 넓어지고 있다. 여러 사례들을 보다 보면 이런 것을 꼭 도서관에서 해야 하나? 싶은 것들도 있을 정도다. 모두 도서관이 속한 커뮤니티의 요구사항이 반영된 것일 테다.


사실 도서관과 사서는 이처럼 이용자를 위해 가능한 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과제의 직접 수행까지 해주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난 여전히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 면접을 도와준다고 하지만 사서가 직접 가서 이용자 대신 면접을 봐줄 수는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로 이용자에게 주어진 과제 또한 그 대신 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세상 모든 이용자의 과제를 사서가 대신 다 해 주면 그건 지원이 아니라 불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용자의 연구논문을 사서가 대신 써 주는 게 불가한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에는 '사서에게 물어보세요'라는 서비스가 있다. 말 그대로 궁금한 것이 있을 경우 사서에게 질문하는 공간이다. 여기에서도 '학교 과제물을 위한 완성된 내용물 작성'과 같은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완전한 답을 제공하지 않을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조치이지만, 점점 도서관이 그 역할을 확대해 가면서, 종국에는 도서관이 이런 것도 해야 되지 않니! 라는 요구를 받게 될까 우려가 되기도 한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일을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 있다. 어찌 보면 도서관의 품질을 높이는 요소 중 하나는 이용자들의 문의 품질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어떤 이용자의 질문은 사서들로 하여금 더 성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끔 도전을 준다. 지금 내가 이렇게 부족하니 좀더 공부해야 이용자들에게 더욱 퀄리티 높은 답변을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한편 어떤 이용자의 질문은, 사서로서 자괴감이 들게도 한다. 내가 이런 걸 해 주려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건가? 싶게 만드는 질문들. 결국 도서관과 사서를 성장하게 만드는 것은 도서관의 고객인 이용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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