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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사서 Mar 26. 2024

도서관 천태만상 | 해달라는 자 vs. 직접 하라는 자

내가 일하고 있는 열람실에는 컴퓨터가 많다. 사람들이 와서 웹DB나 전자책도 이용하고 인터넷 서핑도 하고 문서작업도 하고 유튜브도 보고 부동산 가격도 보며;; 자유롭게 컴퓨터를 활용하는 공간이다.


기기가 익숙한 젊은 사람들은 주로 본인의 노트북을 들고 오고 연세 많으신 분들은 주로 열람실에 준비되어 있는 컴퓨터를 이용하신다. 데스크에 앉아 있으면 하루에도 수많은 이용자가 컴퓨터를 이용하다가 막히는 부분을 물어보신다. 대부분은 한글 문서작업을 하며 겪는 어려움이고, 바탕화면을 뚫어져라 노려보시며 도대체 인터넷은 어떻게 들어가는 거냐고 물어보시기도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열람실의 사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자자료를 이용할 때 도움을 드리기 위해 존재하지만, 주로는 문서작업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 드릴 때가 많다. 우리의 업무분장에는 없는 일이지만, 할아버지들이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어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는 도움을 드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많은 컴퓨터 관련 질문들을 받으며 자연스레 세워진 내 나름의 철칙 중 하나는 '내가 직접 해 드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바로 빠르게 해결해 버리면 응대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이용자들은 편해서 좋아하겠지만 이렇게 하다 보니 나중에 유사한 걸 재차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정보격차 문제는 이미 생각보다 중대한 사회문제로 자리잡았기에 도서관에서 최소한으로라도 알려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잡는 법을 알려드리는 맥락으로 하나하나 순서대로 알려드리고 있다. 


대부분은 맞닥뜨린 문제가 해결되면 웃으며 고맙다고 하시지만 어떤 이용자들은 사서에게 "그냥 해주면 안 돼?" 라고 한다. 내가 비서도 아니고 이용자에게 "앞으로도 계속 문서작업 하실 텐데 그때마다 제가 도와드릴 수 없으니 방법을 알려드리는 거예요." 라고 하면 "이걸로 밥 벌어 먹을 것도 아닌데!" 라며 쏘아붙인다.  하나 하나 알려드리면서 "이제 거의 다 됐어요." 하면 마음이 급한 이용자는 "안 된 것 같은데" 라며 뒤따르는 내 설명은 듣지도 않고 본인의 말을 계속 한다. 나의 설명은 듣기 싫은 것이다. 다 알려드리고 데스크 자리로 오면 또 궁금한 내용을 가지고 또 오신다. 내가 서가에 살짝 가려서 안 보였는지 "으씨 어디갔어?"라고 하기도 하시며 많이 찾아주신다. 그러면 나는 또 컴퓨터 자리로 불려간다.


그까이꺼 한번 해 주면 편하다. 그러면 이런 사례는? 일전에 나와 함께 일하는 직원 분은 이용자에게 본인의 블로그를 만들어서 글도 써 주고 관리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개인적인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관리를 하는 건 사서의 일이 아니기에 거절했더니, 도서관 사서가 그런 것도 못 하냐며 도리어 화를 냈다고 한다. 저희가 어디까지 해 드리기를 바라시는 걸까요?


도서관에까지 왔으면 단순히 유튜브 오락 영상만 보지 마시고 하나라도 더 배워가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어르신 중 가게 키오스크 앞에 가면 긴장하고, 뒤에 사람이 줄 서 있으면 더 긴장되어 주문을 못 하신다는 이야기를 신문에서 읽었다. 정보를 찾고 다루는 방법을 몰라 젊은 층보다 노년층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일들도 많이 있다고 한다. 거창한 디지털 리터러시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더라도, 편하게 그냥 우리한테 해 달라는 것보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는 의지가 있다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도 그냥 해 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나라도 더 알아가실 수 있도록, 주변에서 시끄럽다 하더라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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