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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터마인 Jan 07. 2019

5. 눈이 좁아서, 도대체 아무도 (2)

하루 치 향유 - 필름사진을 본 후, 쓰고 그립니다

 지금, J는 70%정도의 일방성으로 호감을 느끼는 상대가 있다. 70%라고 정한 이유는, 호응에 따른 상대의 감정이 그녀가 가진 호감의 30%정도라고 가늠하기 때문이다. 아마 0%는 아닐 거다. 그렇게 믿고 싶지는 않다. 그는 J가 일하는 주얼리 브랜드의 브랜딩 프로젝트를 돕는 마케팅 회사의 디자이너다. 로고 작업으로 인해 담당 팀끼리 몇 번의 회의와 작업을 거쳤고, 그 과정에서 그에 대한 J의 감정이 조금씩, 퍼센테이지를 더해갔다. 크지 않은 키에 단단한 몸을 가진 그는 가끔씩 하와이안 셔츠나 주머니가 뒤에 달려있는 독특한 아우터를 입고 나타나는데 너무 잘 소화해서 오히려 튀지 않는다. 평소 강팍한 나뭇가지같은 눈매는 웃을 때 갈대처럼 부드럽게 휘어진다. 그리고 특히 목소리. 그의 목소리는 물에 잠긴 바위처럼 낮고 묵직하며, 아득하다.


 J가 그에게 다가가기로 마음 먹은 것은 그가 스파이크 존즈와 드니 빌뇌브를 알았으며, 시가렛 애프터 섹스와 프랭크 오션을 함께 듣고, 무라카미 하루키 외에도 요시다 슈이치나 미야베 미유키 같은 일본 작가들을 더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텀블러에 올리는 작업물들과 그 작업물에 대한 소개글들의 정갈함과 정확함이 그녀에게 감탄과 동요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일까.


 사실, 그런 사람은 흔치 않았지만 J의 주변에 완전히 부재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왜 J는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도 그에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한 번 만나고 싶다’고 메시지를 보냈을까. 그녀는 자신이 적극적이고 가벼운 사람으로 보일까봐 걱정되었지만, 70%의 호감을 혼자서 없던 일로 죽일 자신이 없었기에 눈 딱 감고 적극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러나 가벼움으로 포장한 J의 요청은 ‘그래요, 조만간…’이라는 호응으로 돌아왔다. 조만간이 지나도 연락이 없는 그의 마지막 메시지를 보면서 그녀에 대한 30%의 호감이 매일 조금씩 증발하는 걸 보았다.


 그래서 그와 가고 싶었던 연남동의 레스토랑에서 J는 토마스와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단 한 명의 셰프가 혼자서 운영하는, 8개 정도의 바 자리 밖에 없는 매우 사적인 공간에서. 어쩌면 이 사람에 대한 30%의 호감을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에서 깊고 긴 대화를 나누며 높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바질과 고추 장아찌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오일 파스타와 크림 소스를 곁들인 양갈비 스테이크는 오랜만에 왔음에도 여전히 감미로운 맛이었다. 파스타를 돌돌 말아 야무지게 한 입을 먹으며 J는 토마스에게 물었다.


 “독서모임을 한다고 하셨잖아요, 소설 같은 것도 읽으세요?”

 “아… 사실 소설은 잘 안 읽어요. 읽다보면 작가의 생각이나 주장을 독자에게 강요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언젠가부터 안 읽게 됐어요. 아마 아주 어렸을 땐 읽었을 텐데… 중학생? 정도 때 부터 안 읽은 것 같아요.”


 풍부한 맛과 탱글한 식감을 가진 오일 파스타가 J의 목에서 부드럽게 넘어갔지만, 머릿속에서는 턱 하고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파스타 면발처럼 미끄덩 넘어갈 수도 있었을텐데, 그의 말에 공감은 못해도 납득하고 싶었던 J는 그 이유에 대해 집요하게 물어봤다.

 “오히려 논문이나 에세이, 칼럼 같은 장르가 더 작가의 의견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나요? 소설은… 독자가 판단하기 나름인 거 잖아요. 그래서 김영하 작가도 ‘이 글의 주제를 고르시오’ 라고 묻는 한국의 국어 수업이 잘못 되었다고 하는 거 잖아요.”

 “아, 그 잘못된 국어 시험 때문에 제가 소설을 싫어하나봐요. 하하하”


 한 번 만들어진 매듭은 풀려고 할 수록 꼬여만 가고, 포기하면 더 이상 쓸 수 없을 만큼 엉망이 된다.

 무슨 말을 해도 벽에 가로막히는 듯한 기분에 표정이 굳어가던 J는 자신의 표정을 보고 토마스가 건넨 한 마디에 호감 0%로, 바닥을 쳤다.


 “J씨는 좀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아요. 너무 남들 눈 신경쓰지 마세요. 저는 J씨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누구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중인데…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당신 때문에, 당신 앞에서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린 건데. 어떻게 남의 행복에 대해 저렇게 쉽게 판단할 수 있는거지? 다른 것도 아니고, 행복에 대해서 말이야.'

 그러나 J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이 아니라 더 낮은 사람으로 느껴지게 하는 상대와는 더 이상 진심을 얘기할 수 없게 된다. 대신에 말했다.

 “마감 시간 다 되어 가네요. 이만 일어날까요.”


 오더를 마감한 셰프는 간결한 모양새가 돋보이는 중간 크기의 그릇을 누군가에게 주려는 듯 신문지로 깔끔하게 포장하고 있었다.

 “딱, 저런 크기의 그릇. 필요했는데. 간단한 스낵이나 소스를 담기 좋은 그릇이 은근히 없잖아요. 그쵸?”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왔다. 퇴근 시간에 자신의 코트도 못 찾는 남자에게. 그는 해맑게 답했다.

 “아, 저는 계속 부모님이랑 살아서 주방 용품은 잘 몰라요. 여자들은 저런 거 좋아하죠?”


 아, 결국 마이너스로 가는구나. 그녀는 주말의 저녁, 작고 아늑한 식당에서 보낸 지난 몇 시간을 그저 비우고 싶어졌다. 나오자마자 빠르게 택시를 잡았다. 꼭 사랑이 아니어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남은 시간이나마 꽉 채우고 싶어서 J는 그들이 모여있는 동네의 위스키 바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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