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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터마인 Feb 25. 2019

17. 눈들 - (1)

필름사진을 본 후, 쓰고 그립니다.

 애인이나 친구처럼 가족을 선택할 수 있었다면 인생이 조금쯤 달라졌을까. 송은 생각했다. 그는 동양인이었지 만 서양인처럼 잿빛이 도는 파란 눈동자를 가졌는데, 이는 유전학적 형질 때문이었다. 만약 외모가 수려하고 친절했다면 그 독특한 눈 색깔 또한 그의 신비로움을 더하는 요소로 쓰였을테다. 그러나 작고 왜소한 체격과 패인 볼, 날카로운 눈매에 더해진 푸른 구슬같은 눈동자는 마치 해리포터의 도비처럼 안쓰러운 기괴함을 풍겼다. 때로 사람의 외모는 그가 지닌 성격과 관계없이 타인이 제멋대로 어떤 사람인지 판단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는 고독함을 즐기는 타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너는 고독할거야' 하며 고립시키는 바람에 결국, 고독함을 즐기게 되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나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주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풍경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아무 태그도 없이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처음엔 별 호응이 없었지만 어느 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눈을 클로즈업한 사진을 올린 후로 팔로워가 빠르게 늘었다. 그가 가장 오래 머물고 심취해 있었던 파리의 사진들이 특히 인기를 끌었다. 트렌드에 빠른 매거진들이 그의 사진을 먼저 찾았다. 그는 모델 촬영을 하지 않았지만, 그 자신이 모델만큼 스타성 있었다. 이 또한 그의 성격과 관계없이 매거진이 읽은 대중이 그에 대해 판단한 스타성이었다. 뉴욕, 도쿄, 서울의 매거진에 그와 그의 사진이 개재되었다. 인물 이 부재해 더욱 개방된 풍경과, 그 풍경을 찍기 위해 웅크리거나 쫙 펴거나 한 그의 자세, 그리고 뷰파인더를 응 시하는 그의 눈동자 컷이 차례로 실렸다. 파리에서 열린 그의 첫 전시회에 등장한 모든 작품이 매진되었다. 그리고 


그 사진에서 '눈'이 보인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유미는 대학교 2학년의 겨울방학, 파리로 갔다. 오로지 송의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그와 같은 중,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녀 역시 그를 늘 혼자로 내버려뒀지만, 언제나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사진을 즐겨찍는 엄마의 영향을 받아 유미도 초등학생 때부터 작은 손으로 라이카 미니를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던 그녀는, 주로 인물이 없는 풍경이나 오브제를 즐겨 찍었으나 송을 만난 후로는 인물을 찍는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그녀 역시 그의 푸른 눈동자에 먼저 눈길이 닿았지만, 눈길을 머무르게 한 건 그의 눈빛이었다. 고독함이 묻혀진, 소속되고 싶지만 특별한 혹은 특이한 존재로 주목받고 싶지는 않은 채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배경에 스며 들기를 원하는 갈망의 눈빛. 운동장의 벤치에서, 교실의 한 켠에서 언제나 혼자였고 묘하게 시선을 끌었던 그의 눈빛을 유미는 끈질기게 사진에 담았다. 그녀는 사진학과로 진학하고 싶었지만, '예술가는 가난하다'는 생각이 강한 부모를 설득하지 못하고 성적에 맞추어 서울의 한 대학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사진만큼 책 읽는 것도 좋아했기에 그녀에게 꽤 도전할 만한 전공이었으나, 그 안에서 운영되는 문예창작단엔 들어가지 않았다. 부모의 생각, 그 그늘 아래에서만 피어날 수 있는 그녀의 생각. '예술가가 되고 싶지만 빈곤을 감수하고 극복해 결국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될 만한 천재성이 부족하다'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학의 합격 발표가 나던 날, 그가 대학에 가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졸업식 날, 그녀는 그의 책상 속에 사진작가 리차드 미즈락의 사진집 <다른 존재들의 명도(The opacity of other beings)>을 넣어두었다. 그 책에는 살아 숨쉬는 거대한 자연사이에 물건처럼 인간이 드문드문 박혀있는 사진들이 담겨있었다. 


 안녕? 나는 유미. (읽음)
 DM에는 대답을 안 하는구나. 나를 기억 못하는 걸까? (읽음)
 나 너의 전시회를 봤어. 그리고 작품도 하나 샀지. 운이 좋게도 말이야. 올해의 아르바이트비를 다 써야 했지
만. (읽음)

 아마 들었겠지만... 거기에서
 너의 눈이 보여. (읽음)
 다른 사람들은 의심하다가, 놀라거나 무서워하거나 하는 것 같더라. (읽음) 나는 불편하다가, 반갑던데(읽음) 


 여기까지 쓰고 유미는 잠시 멈추었다. 그리고 다이렉트 메시지는 아무래도 길게 쓰기 어려워서 줄이고 줄인 문장을 바라보았다. 불편하다가, 반갑더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날 늦은 열 시 경, 사진 속 공원의 벤치에 서 스윽 하고 푸른 눈빛이 떠오르던 때를 떠올렸다. 놀랍지는 않았지만 불편했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온 몸에 걸친 것들을 내던지고 속옷만 입은 채 15분 정도 침대에 누워있는 버릇도 중단돼야 했거든. 급작스럽게 치밀어 오르는 허기에 어딘가 앉기도 전에 싱크대에 서서 떡이나 빵을 꿀떡꿀떡 넘기지도 못하지. 송의 눈이 나를 쳐다 보고 있으니까. 남자의 가만한 눈이 크지도 않은 원룸 전체를 응시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모든 불편함은 익숙함으로 변한다. 시선이 익숙해지자 조금씩 친근해졌다. 하루 중 누군가 나를 또렷이 응시하고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교양 수업의 강의실에서, 영어 보조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원 교실에서 불특정 다수의 시선을 받지만 사실 그들은 나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있다는 걸 그 사진의 시선을 받고 나서야 깨달았지. 나를 쳐다보고 있다고 해서 나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의 눈길이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반대로 9평 원룸을 메우는 눈길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귀가가 기다려지기 시작했어. 이런 생각의 흐름을 아홉글자로 줄였을 때 송에게 얼마나 전달이 될까. 유미는 읽기만 하고 답이 없는 그에게 다시 한 번 메시지를 보냈다. 그제서야 송이 유미에게 답을 하기 시작했다. 


 졸업식 날, 너의 책상에 사진집을 넣어둔 게 나야. (읽음)

 [...] (입력 중) (지워짐) (입력 중) (지워짐) 

 너를 기억해. 지금은 어디야? 

 나는 지금, 우리가 졸업한 대전에 있지. (읽음)

 겨울이라 계룡산은 황량하고, 그래서 닿는 빛이 더 따뜻해. (읽음) 

 주말에 출발할게. 만나자.

 

 송은 토요일 오전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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