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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샥 Mar 25. 2017

중국전 패배, 과신은 실패를 불러온다

호샥 축글 _ 스물 세 번째 글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한민국은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다.

대한축구협회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획득이라는 역사를 만들어 낸 홍명보 감독에게 월드컵 대표팀 감독직을 맡기며 또 한 번의 역사를 써주기를 꿈 꿨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홍명보 감독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기준 없는 선수 선발과 기용, 그리고 변화 없는 전술 운영을 고집하며 ‘의리 축구’라는 비판과 함께 국민 영웅이 된 지 고작 2년 만에 초라하게 국가대표팀을 떠나야 했다. 올림픽 동메달이라는 신화에 취해 준비되지 않은 감독에게 성급히 국가대표팀 감독직이라는 중책을 맡긴 결과였다.

2014 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은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다.

대한축구협회는 브라질 월드컵에서 무너져버린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새 선장으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을 선택했다. 2014년 9월 국가대표팀의 새 사령탑으로 취임한 슈틸리케 감독은 4개월 뒤 2015년 1월 호주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이라는 호성적을 거두며 ‘갓틸리케’로 등극했다. 비교적 준비 기간이 짧았던 데에 비해 슈틸리케 호가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경기력과 선수단 운영이 꽤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에 이어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에서도 무실점 전승이라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탄탄대로를 달렸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상승 곡선은 딱 2차 예선까지였다. 최종예선에 접어든 이후 슈틸리케 호는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왔다.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 초기 스스로 제시했던 선수 선발의 기준은 무너졌고, 그렇게 기준을 거스르며 발탁된 선수들의 경기력은 엉망이었다. 엉망이 된 경기력을 변화시킬 감독의 전술적 능력 역시 부족함이 드러났다. 아직까지 최종예선 조 2위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수비는 안정감을 잃어버린 채 실점을 습관처럼 이어갔고 전체적인 팀의 전술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답답한 경기력이 계속됐다.

작년 10월 이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경기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패배했던 경기가 슈틸리케 호의 현재 모습을 보여준 가장 적절한 경기였다. 이란에게 패배한 이후 대한민국의 월드컵 진출 가능성에 위기감이 조성되며 슈틸리케 감독으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됐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신뢰를 유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록 지금은 흔들리고 있지만, 아시안컵과 2차 예선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던 슈틸리케 감독이기에 조금 더 믿고 기다려주겠다는 뜻이었다.

국민들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국가대표팀을 맡았던 감독들 중 가장 오랜 기간 감독직을 유지하고 있는 주인공이지만 발전하는 모습은커녕 날이 갈수록 실망스러운 경기를 보여주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남은 최종예선 경기를 맡겼다간 어쩌면 정말로 월드컵에 가지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슈틸리케 감독 체제에 대한 불안감을 표출하면서도, 상대가 약체 중국인만큼 중국에게는 지지 않을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의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중국을 상대로도 무기력한 경기를 펼치며 1:0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홍명보 감독의 실패 원인은 수없이 다양했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치명적이었던 첫 번째 원인은, 런던 올림픽 신화에 취해 아직 준비가 부족했던 홍명보 감독을 ‘과신’하며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맡겼던 대한축구협회의 오판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을 향해 보내준 신뢰는 충분했다.

현재 대한축구협회의 태도는 3년 전의 실패를 떠올리게 한다. 호주 아시안컵과 2차 예선의 성공에 취해 슈틸리케 감독을 과신하며 그의 반등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대한축구협회의 모습은 3년 전 홍명보 감독을 과신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홍명보 감독에게는 준비 기간이 짧았다는 변명의 여지라도 있었지만, 슈틸리케 감독에게는 그마저도 없다. 대한축구협회는 역사상 그 누구에게도 보내지 않았던 오랜 기간의 신뢰를 슈틸리케 감독에게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신뢰의 정도에 비해 그 근거가 미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슈틸리케 감독에게 수십억의 연봉을 제시하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제안했을 때, 대한축구협회가 가장 우선적으로 전했던 목표는 아시안컵 준우승이나 2차 예선 통과가 아닌 ‘월드컵 진출 및 월드컵에서의 성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최종예선에서 슈틸리케 감독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국민들로 하여금 월드컵 진출을 확신하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가까스로 월드컵에 진출한다고 해도 월드컵 본선 무대에 큰 기대를 갖지 못하게끔 하고 있다.

아시안컵과 2차 예선 이후 경기력을 발전시키지 못할 뿐더러 책임감 부족한 인터뷰와 의문스러운 코치 선임으로 논란을 일으키고만 있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아시안컵과 2차 예선에서의 성공을 이유 삼아 계속해서 신뢰를 보내는 것이 과연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2018년을 위해 진정으로 옳은 선택인지 의문이 든다. 4년 전 홍명보 감독을 과신하며 월드컵에서 실패했던 아픔이, 올해는 슈틸리케 감독을 향한 과신으로 이어져 월드컵 실패가 아닌 월드컵 진출 실패라는 더 큰 아픔으로 재발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선다.



슈틸리케 감독 경질, 대안은 있는가?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하게 될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반론도 많다.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될 시 후임 감독으로 낙점 받을 가능성이 가장 컸던 신태용 감독이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자리를 떠나 U-20 월드컵 대표팀 감독직을 맡게 되면서 ‘소방수 신태용 카드’도 현실적인 가능성이 사라졌다.

중국은 마르첼로 리피 감독을 선임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말로 대안이 없을까? 그렇지 않다. 대한축구협회가 눈을 높인다면 대안은 충분해진다. 대한축구협회가 협회의 예산을 핑계 삼아 감독을 선택하는 기준을 계속해서 낮추고 있다면 대안이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가 진정으로 대표팀의 성공을 위한다면, 중국 대표팀이 수백억을 주고 리피 감독을 데려온 뒤 우리나라를 꺾은 모습을 통해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한다. 비록 중국처럼 수백억을 쓰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을 데려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지만, 대한축구협회가 스스로 낮춰놓은 기준을 이제는 높여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이 계속해서 축구에 거대 자금을 투자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제자리걸음을 유지할 뿐이라면, 중국에 당했던 ‘충격패’가 더 이상 충격패가 아닌 ‘일상’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월드컵 1년 앞둔 새로운 감독, 성공할 수 있을까?

만약 다음주 시리아전 이후 슈틸리케 감독이 경질되고 새로운 감독이 선임된다면 월드컵까지 1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주어질 것이다. 새로운 감독은 당장의 월드컵 진출이라는 과제를 위해 팀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기보다는 매 한 경기 한 경기의 결과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월드컵 진출을 확정시킨 이후 새로운 감독에게 남아있는 시간은 1년이 채 되지 않을 것이다.

1년이라는 시간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홍명보 감독에게 주어졌던 시간과 비슷하다. 이 짧은 시간으로 새로운 감독에게 월드컵에서의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그리고 새로운 감독에게 큰 성과를 욕심내지 말아야 하는 것은 감독 교체의 타이밍을 놓쳐버린 대한민국의 업보이다.

감독 교체가 반드시 월드컵 진출과 월드컵에서의 성과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선수 선발, 전술 운영, 경기력, 리더쉽 등 다양한 부분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슈틸리케 감독에게 월드컵을 맡기는 것보다는 새로운 감독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더 나은 판단일 수 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한민국은 처참한 실패를 경험했다. 그리고 2017년 현재 우리는 ‘월드컵 진출 좌절’이라는 더 큰 실패를 겪게 될 위기에 직면해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절대 중국에 밀릴 만한 팀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그 동안 슈틸리케 감독에게 햇수로 3년이라는 충분한 시간과 신뢰를 보내왔다. 하지만 신뢰의 댓가로 돌아온 현실은 월드컵 진출 실패의 위기다. ‘과신’은 ‘실패’를 불러온다. 대한축구협회의 냉정한 현실 파악과 신속한 대안 결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 호샥

사진 = 인천일보, OSEN, 게티 이미지 코리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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