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을 May 14. 2022

두유 넣은 딸기스무디 난 맛있는데 왜

밥 차리는 것을 즐거워하려고 애를 씁니다 - 코시국 집밥기록


사둔 지 얼마 되지 않은 딸기가 또 시들시들하다. 김치냉장고가 있었다면 우리 집에 들여오는 과일 채소들이 좀 더 싱싱할 수 있었을까? 디자인이 심플한 것이 좋아 도어가 하나짜리인 모듈형 냉장, 냉동고를 하나씩 쓰고 있는데, 일반 사문형 냉장고에 비해 냉동실 용량이 큰 것에 반해, 냉장고의 용량은 좀 작다. 마트가 멀어 한 번 살 때 식재료를 좀 많이 사두는 편이라 좁은 냉장고 안은 늘 가득 차 있다. 냉장고 안에서 냉기가 충분히 돌아다닐 공간이 없어서인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식재료들의 신선함이 오래가지 못한다. 또 아무래도 김치나 채소, 과일들을 오래 싱싱하게 보관하기에는 일반 냉장고의 냉기가 김치냉장고보다 조금 부족하기도 할 것이다.


김치냉장고를 함께 사지 못한 것은 우리 집이 전셋집이기 때문이다. 냉장고장 자리를 그냥 널찍하게 두어줬으면 좋으련만, 요즘의 신축 아파트들은 냉장, 김냉 칸을 따로 구별해서 냉장고장 중간에 칸막이를 만들어놓는다. 우리 집이었으면 저 칸막이를 잘라내었겠지만, 남의 집에 함부로 손을 댈 수는 없지. 내년에 이사 가면 꼭 김치냉장고를 사리라 조금만 참자, 벼르면서 시든 딸기를 어떻게든 해치워보고자 냉장고에서 꺼내본다.




어릴 땐 우유를 어떻게 먹었나 모르겠다. 학교급식으로 우유를 매번 시켜서 먹었었는데, 우유를 그리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친구들도 많이들 먹으니까, 키도 커지고 건강에 좋다고 하니까 그냥 그런 군중심리로 나도 시켜서 먹었던 것 같다. 성인이 돼서야 나에게 유당불내증이 있는 것을 알았다. 배탈이 심하게 나거나 하는 것은 아닌데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해 유제품을 먹고 나면 속이 매우 불편하고 신물이 올라온다. 어릴 땐 그래도 지금보다 위장이 튼튼할 때라 증상을 심하게 느끼지 못하고 넘어갔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우유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을 싫어하는 것은 아닌데 내 속에서 받아들여주시질 않는다. 백미당의 아이스크림이나 폴바셋의 라떼를 한 입 하면 입에서는 너무 즐거운데 두 입, 세 입이 넘어가면서 속에서는 불편하다고 난리를 친다. 


아침부터 친한 친구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의 대화가 활발하다. 시든 딸기에 두유를 넣고 갈아 쉐이크를 만들어볼까 한다고 했더니, 친구들이 상상만 해도 맛이 이상하다고 한다. 우유의 대체품으로 두유나 아몬드밀크를 사용해서 이미 이런저런 것들을 활용해본 경험이 있는 바, 나 역시 그 맛을 상상해봤는데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왜들 그러지. 소이라떼도 있는데 딸기소이스무디가 뭐 어때서. 


시든 딸기를 처리하려는 김에 냉장고 안을 살펴보니 닭가슴살 한 덩이가 애매하게 얼려져 있다. 토달볶이 영양가가 꽤 좋은 메뉴라는데, 워낙에 육식동물인 나는 계란과 토마토만으로는 영 포만감이 차지가 않는다. 오늘은 저 닭가슴살을 같이 잘라 넣고 볶아봐야겠다 싶다.


두유 넣은 딸기스무디와 닭가슴살 넣은 토마토 달걀 볶음이 꽤나 맛있다. 아침을 먹는 편이 아닌데 오늘은 시든 딸기를 처리하려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출출함을 느끼기도 전에 속을 채웠더니 든든해서 오늘 점심은 그냥 지나가도 될 것 같다.


| 2020.04.07



코로나가 시작되었던 2020년 초부터 조금씩 해 두었던 밥상에 대한 기록과 그 기억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하나씩 옮겨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김밥 싸는 데 곰돌이채칼이 꼭 있어야 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