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차리는 것을 즐거워하려고 애를 씁니다 - 코시국 집밥기록
언젠가부터 명절 때마다 친정 식구들과 안면도에 갔다가 집에 오는 길에 간월도에 들러 굴밥을 먹는 것이 전통처럼 되어버렸다. 명절에 안면도에 간다고 하면 모르는 사람들은 충청도에 가까운 친척이 있거나, 아니면 우리 가족이 충청도 출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께서 진주 출신이시라 엄마가 경상도 문화를 경험하며 자라긴 하셨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라셨고, 아빠도 서울 토박이, 나와 동생도 서울 토박이이다.
명절 때마다 안면도에 가게 된 것은 10년간 미국에서 지내던 동생네 부부가 한국에 돌아와 자리를 잡은 곳이 세종특별자치시이기 때문이다. 경상도 남단에 있는 제부의 본가에 들렀다가 다시 친정에 방문하기 위해 하루나절이 걸려 올라오는 동생네 부부가 너무 고생을 하는 것 같아, 친정 부모님과 우리 부부가 적당한 곳으로 내려가 함께 접선을 하기로 했다. 그러기에 참 좋았던 위치가 바로 안면도였다.
안면도는 동생과 내가 대학생 때 엄마아빠와 함께 자주 방문하던 휴가지였다. 한창 피자, 파스타 좋아하던 나이라 외식으로 토속적인 한국음식을 찾아먹는 것을 그리 즐기지 않았었는데, 처음으로 비릿한 굴이라든지 쿰쿰한 청국장이 맛있다고 느껴졌던 곳이 바로 안면도 옆 동네에 위한 간월도의 한 식당이었다. 어른 입맛에 첫 눈을 뜨게 된 곳이라고나 할까.
마트에 들렀는데 채소 코너에 달래가 맨 위에 바로 보였다. 마트의 진열됨을 보면 계절이 보인다. 달래라니 봄이구나. 달래를 보는데 문득 굴밥 생각이 났다. 간월도 굴밥집에서 늘 달래양념장이 같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굴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요즘 뭘 먹어도 입맛이 잘 돌지 않았는데 굴밥에 간장양념을 비비면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굴도 찾았다. 카트에 달래와 굴 두 봉지를 나란히 담았다.
마트에 갈 때는 장보기 리스트에 적어간 것 이외에 충동구매를 잘 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면죄부가 될 수 있는 1-2개 정도의 여유분은 좀 남겨둔다. 세일을 매우 많이 해서 '이건 오늘 꼭 사야 해' 하는 품목이나, 오늘 이 달래나 굴 같은 것이다. 달래나 굴 같은 것이라고 함은, 충동구매라고 하기엔 매우 부담되는 금액이 아니면서 메뉴 계획엔 없었지만 생각지 못한 별미를 해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식재료. 계절감도 딱 맞아서 내가 미처 생각을 못했을 뿐 생각만 했더라면 리스트 마지막 즈음엔 들어갔을 만한 품목, 뭐 그런 것이다.
솥밥을 할 거라서 모처럼 무쇠냄비를 꺼냈다. 결혼할 때 엄마가 사 준 무쇠냄비들은 생각보다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너무 무겁기 때문이다. 국 하나를 끓여먹어도 여기에 끓여먹으면 훨씬 맛있다고 하는데 매일 먹는 국을 끓이자고 이 냄비들을 꺼내고 씻고 하는 일이 내 손목에는 좀 버거웠다. 전기밥솥에 하는 방법도 있지만, 간월도 굴밥이 생각난 김에 오늘은 무조건 솥이다. 오늘 같은 날에는 아끼지 말고 힘을 내어 좋은 냄비를 꺼내본다.
밥 물을 1:1 분량보다 조금 더 적게 잡고 불린 쌀을 깔고 그 위에 채 썬 무와 송송 썬 표고를 덮어 가스불에 올렸다. 밥이 끓기 시작하니 무와 표고 냄새가 향긋하게 집 안에 퍼진다. 소금물에 살살 흔들어 씻은 굴을 밥 위에 얹고 뚜껑을 닫아 뜸을 들였다. 잠시 후 뚜껑을 열어보니 굴 들이 뽀얗고 통통하게 잘 익어 있었다.
밥이 뜸이 드는 동안 옆에서는 청국장이 절정으로 끓고 있었다. 된장찌개 대신 청국장을 끓인 것은 이것도 그 간월도 굴밥집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청국장이 싫다던 남편은 막상 내가 청국장을 끓이면 그게 된장찌개인지 청국장인지 잘 구분을 못한다. 선입견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막상 먹어보면 맛있다고 할 거면서. 요즘 시판 청국장은 냄새가 부담스럽지 않게 잘 나오는 것 같다.
굴밥 위에 달래장 한 스푼을 넣어 비벼 먹으니 오랜만에 입안 가득 만족감이 생긴다. 어릴 때는 빨간 양념이면 무조건 좋더니 언젠가부터는 간장양념의 감칠맛이 더 좋다. 매운 게 먹고 싶더라도 간장에 청양고추를 곁들인 깔끔한 매운맛이 좋지, 고추장 양념의 텁텁한 맛이 그렇게 썩 당기지 않는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잊지 못한, 친정 엄마아빠에 대한 상처가 큰 편이다. 아직도 종종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좋지 않은 꿈을 꾼다. 남편 말로는 심한 잠꼬대를 하는 날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가족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함께 먹었던 음식을 해 먹거나 하는 날에는 뭔가 내 감정이 모순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상처도 진실이고 추억도 진실이다.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 시간 같은 날들만으로 모든 삶의 기억이 채워지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적당했으면 좋았겠지만 상처의 시간들이 더 길고 깊었다.
어떤 날은 상처가 떠오르고 어떤 날은 추억이 떠오른다. 오늘은 추억이 떠올라서 좋은 날이었다. 나의 상처에 망각의 능력을 허락해주시길 기도한다. 상처보다 추억이 내 기억을 더 많이 차지하는 하루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 2020.03.26
코로나가 시작되었던 2020년 초부터 조금씩 해 두었던 밥상에 대한 기록과 그 기억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며 하나씩 옮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