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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 Sep 15. 2022

14_성교육에서는 왜 난임에 대해 알려주지 않을까

해피엔딩이 아닐지라도 - 시험관 고차수 난임 에세이


나의 첫 성교육은 초등학교 5학년 또는 6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성교육은 오로지 여자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남자들도 2차 성징을 겪긴 하지만, 여자들의 초경이라는 것은 어린 나이에 겪고 감당하기엔 워낙 큰 이벤트여서 그런지 초경이 시작되었을 때 대처해야 할 실질적 방법이라든지 마음가짐에 대해 집중적으로 교육을 받았다. 다른 내용들은 굉장히 형식적으로 빠르게 넘어갔다. 여자아이들의 성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같은 반 남자아이들은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하거나 피구를 했다.


중학교 때에도 성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가물가물하게 남아있긴 한데 뭔가 강한 깨달음이나 인상으로 남아있는 부분이 없는 걸로 봐서 초등학교 때 받았던 교육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 학교 교과 과정으로 진행되는 생물 수업을 통해서 사람의 생식기관과 호르몬의 종류, 임신에 대해서 배웠다. 점수를 잘 받기 위해 이론적 내용을 달달 외우고 크게 틀린 것이 없이 시험은 잘 치러냈지만, 실질적으로 그래서 어떻게 해서 임신이라는 결과에 이른다는 것인지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깨닫게 된 것은 그보다 시간이 좀 더 흐른 후 소위 그 분야로 성숙하다는 친구들이 이야기해주는 19금 이야기 같은 것을 통해서였다.


대학에 입학한 후 접했던 성교육은 학교 교양강의나 사설 매체를 통한 강의였는데 주로 피임법에 대한 교육이었다. 교회 대학청년부에서는 혼전순결을 매우 강조했다. 성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정 안에서만 허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혼 전에는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했다. 내가 초중고 시절부터 대학시절까지 받았던 모든 성교육의 최종 결론은 혼전순결과 피임이었다.


결혼을 하고 약 1년 정도는 피임을 했다. 많이들 신혼이라고 하면 '제일 좋은 때'라며 덕담을 건네곤 하는데, 실질적으로 신혼의 시기는 부부 모두에게 생각보다 혼란스럽고 쉽지 않은 시기이다. 모든 것을 내가 원하는 스케줄에 따라 움직일 수 있었던 싱글 때와는 달리, 배우자를 비롯해 양가 가족들과 내 삶의 일부를 나누어야 하는 일 등에는 적응 시간이 꽤 필요했다. 나는 이 상황에서 아기까지 덥석 생겨버리면 감당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임신 시도를 했다. 사실 그때까지도 아기를 맞이하기 위한 온전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는 않았었지만, 더 이상 적은 나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임신을 더 늦추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여러 달 임신 시도를 했는데 열매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다른 증상 때문에 우연히 찾은 병원에서 난임과 관련된 검사를 받아볼 것을 권유받았고 나와 남편은 차례로 여러 검사를 진행했다. 나는 평균적인 내 나이에서 보여질 수 있는 것보다 난소 수치가 매우 떨어져 있었고, 난관 한쪽이 막혀있었으며, 내분비적 호르몬 문제와 면역학적 문제 등으로 인한 난임 요인과 유산 가능성 등이 발견되었다. 남편의 정자 상태는 자연임신을 시도하기에는 힘든 수치였고, 정자 선별을 통한 체외 수정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 받아보는 진단에 시한부 선고를 받는 듯한 무서운 기분이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내가 살면서 느꼈던 불편이나 신체적 고통은 한 번도 없었다. 산부인과 진료를 자주 받아본 것은 아니지만, 건강종합검진에 포함된 간단한 산부인과 검사는 매년 받았었고 늘 큰 문제가 없었었다. 생리주기는 늘 규칙적이었고 생리통도 일반적으로 평범한 다른 여성들이 겪는 정도 이상은 아니어서 나는 내가 산부인과적으로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생리를 규칙적으로 하고 자궁에 특별한 질환이 없기 때문에 내가 임신을 하는데 있어서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 보지 못했었다.  


난임요인을 알아보기 위한 검사들은 모두 처음 들어보고 처음 경험해보는 검사였다. 나만 이 나이 먹도록 너무 이 부분에 대해 무지하고 관심이 없었나 싶어, 후에 주변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다른 친구들 역시 (이미 출산을 경험한 사람들 조차도) 이런 검사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친구들보다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결혼을 하고 신혼 초에, 보건소에서 신혼부부 대상으로 해 준다는 산전 무료 검진을 받은 적이 있었다. 피 한 통 뽑는 것이 검사의 전부였는데, 우리 부부 둘 다 비타민 D의 수치가 조금 낮게 나왔을 뿐 나머지는 모두 정상으로 나왔다. 그 검사 결과 한 장으로 우리는 우리의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알았고, 임신을 하는 데에도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 결과지를 산부인과에 보여주었더니 이 검사는 너무 기본적인 검사라 이것 만으로 임신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그 검사를 통해서 우리가 임신을 하는데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오로지 풍진 항체 보유 여부뿐이었고, 그 역시도 무리 없이 임신이 된다는 가정 하에 생각해 볼 문제였다.


저출생이 국가적으로 큰 문제라고 하면서, 왜 이런 정보들은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일까. 난임은 신체적으로 고통을 주는 질환이나 죽을병이 아니어서 중요하지 않다 여기고 소외 시 되는 건가. 매년 건강검진을 받을 때마다 고민되는 부분이 내가 개인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추가 항목 검진에 대한 부분이었다. 난 아직 젊고 신체적으로 큰 불편이 없는데 MRI, CT 같은 이런 검사를 꼭 받아야 할까 싶었다. 만약 검진 항목에 항뮬러관호르몬검사(AMH)나 나팔관 조영술 등에 대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고, 이런 검사들을 선택할 수 있었더라면 나는 미혼일지라도 한 번쯤 호기심과 내 몸에 대해 알아가는 의미로 한 번쯤 받아보았을 것 같다. 물론 비용이 적게 드는 검사는 아니지만, 결혼과 출산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받아보고자 하는 검사일 것 같다.


남자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평범한 미혼 남성들이 자신들의 생식 건강을 알아보기 위해서 제 발로 비뇨의학과를 찾아가는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건강검진 항목에 남성호르몬이나 정액검사가 있다고 한다면 한 번쯤 검사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싶다.




사실 미혼의 시기에 나의 생식 건강에 대해서 미리 알게 되었다고 해서 어떤 뾰족한 방법을 동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긴 하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결혼과 출산을 희망하지만 아직 짝을 찾지 못한 미혼 친구들이 몇몇 있는데, 그들 중에 나중을 대비해 임신과 출산과 관련한 검사를 받았다든지 난자 냉동을 진행한 친구는 아직 한 명도 없다. 가끔 미디어를 통해 연예인들이 난자나 정자 냉동을 했다는 소식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아직까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뭔가 넘기 힘든 문턱인 것 같다. 또 서류상 혼인을 하지 않은 경우에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에 보험 적용이 전혀 되지 않기 때문에 비용 때문에라도 진행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래도 내 몸에 대해서 미리 잘 알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마음가짐은 상당히 다를 것 같다. 나만 해도, 내가 내 몸에 대해서 좀 더 미리 잘 알고 있었더라면 적어도 신혼 초에 피임을 했던 시간이라든가 난임 치료를 망설이고 미뤘던 시간을 좀 줄일 수는 있었을 것 같다.


바디버든이라는 개념을 들어 본 지 10여 년 정도 된 것 같다. 처음 이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만 했지 당장 일상에서 무엇을 실천하기는 힘들었었다. 플라스틱이라든지 화학물질은 여전히 너무나 손쉽게 닿을 수 있는 곳곳에 널려있었고, 건강을 챙기고자 쉬운 것을 포기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유난을 떨기에는 일상이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요즘은 천연화장품, BPA Free 등의 용기들도  나오고, 웬만한 제품들에는  성분이  표시가 되어 있어서 선택지가  많아진  같다. 이제는 나도 일상에서   있는  바디버든을 조심하려고 최대한 애를 써보고 있다. 하지만 이미  체내에 쌓인 유해물질들과 환경호르몬이 지금까지  몸에 알게 모르게 미친 영향들은 어쩔 도리가 없다. 학창 시절 플라스틱 접시에 뜨거운 떡볶이와 어묵 국물을 담아주는 분식집의 음식을 먹었고, 학원이 끝나면 편의점에서 인스턴트 음식을 즐기며 자랐다. 한여름  먹은 옥수수는 비닐봉지에 담겨 펄펄 끓는 찜기 안에 놓여 있었다. 예쁜 여자 연예인들이 광고하는 (화학) 샴푸를 사다 썼고, 흡수율이 좋다는 (화학제품이 가득했을) 생리대를 골라 사용했었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성교육은 어떤 모습이려나. 내가 처음 성교육을 받아보았던 것이 거의 30여 년이 다 되어가니 지금의 성교육은 그때와는 좀 달라졌길 기대해본다. 2차 성징이란 이런 것이고, 정자와 난자가 만나면 임신이 된다에서 끝나는 성교육은 아니길 바란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성에 관련된 지식과 성을 대하는 예의에 대해 알려주는 교육이기를 바란다. 또 유해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단지 뉴스에서 볼 수 있는 어떤 특별한 상황 중에 하나가 아니라, 당장 내 몸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을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잘 알고 내 몸을 소중히 여기며 조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에서는 과정뿐만 아니라 결과적인 부분에서도 설명하는 것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성은 행위로써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뿐 아니라, 생명을 잉태할 수 있다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 것인데 많은 성인 성교육에서는 어떻게 하면 건강하고 즐거운 성생활을 할 수 있는지 행위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면이 더 큰 것 같다. 때문에 지금까지 '피임만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던 성인 남녀가 임신을 시도하려고 했을 때 임신이 잘 되지 않으면 굉장히 당황을 한다. 훗날 임신과 출산을 염두에 두고 있는 성인 남녀라면 그전에 어떤 것들을 미리 알고 있어야 하고 준비해야 하는지 역시 잘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부에서는 난임과 관련된 산부인과 및 비뇨의학과적 검사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보다 손쉽게 받아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많은 성인 남녀들이 결혼을 해서 임신을 해보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까지 내 몸의 생식건강 상태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의 갑상선 암 발병률이 유난히 높은 것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검사율이 높아서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때로는 과잉진료가 될 수 있어 이 현상을 그다지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입장에서 나온 의견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환자가 될지 모른다는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진단에 따른 처치가 과잉 일지 적합할지의 문제는 의료진의 역량과 선택인 것 같고 우선 내 몸의 상태에 대해 정확히 알 수 있는 편이 더 안심이 되는 것 같다.  


난임과 관련된 질병들이 당장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그동안 우선순위가 되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연일 저출생에 대한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면서 난임에 관련된 부분은 큰 해결책으로 연관 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당장 아이를 낳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 얼마간의 돈을 쥐어줄 테니 아이를 낳아보라고 설득하는 것보다, 아이를 낳고자 결심한 사람들이 본인들의 건강상태를 보다 손쉽게 점검할 수 있는 기회, 난임치료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아이 1명을 더 태어나게 하는 데에는 더 빠른 방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 <허락된 경험을 곱씹다> 설명 :  

시험관 고차수이고, 난임을 겪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 가정의 오랜 노력과 소망이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아도 좋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합니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는데 진짜 그러면 어쩌려고 이제 글까지 써서 남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난 수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들을 정리해봅니다. 누구나 바라는 것이 있겠습니다. 그 모든 바람이 해피엔딩이 아닐진대, 인생의 섭리를 인정하며 나에게 이 경험이 왜 찾아왔을지 사유해봅니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누군가에겐 부디 공감과 위로를 드릴 수 있길 바랍니다. 연재를 하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적다 보니 글의 시점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 듭니다.


* 앞서 연재된 1~13화는 <나에게 허락된 경험, 난임> 브런치북으로 묶어 발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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