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존슨, 2018년 1월 16일, 뉴욕타임스
"layer innocent nothing argue pottery winner cotton menu task slim merge maid"
문장 속 단어들의 순서는 무의미하다. 알고리듬에 의해 묶인 무작위 단어 조합은 영어사전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로워진다. 윗 문장이 나에게 있어 특별히 귀중한 이유는, 메타마스크(Metamask)라는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에 의해 독점으로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암호 기술 분야에서 이 문장은 나만의 시드 문구(seed phrase)라 부른다. 일관되지 않은 의식 속 흐름 기법처럼 읽겠지만, 단어들은 디지털 은행 계좌를 만들거나, 혹은 온라인에서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될 수가 있다. 그저 몇 가지 단계만 거치면 된다.
시드 문구를 안전하게 보관하라는 지시사항이 컴퓨터 모니터에서 보였다. 따로 메모를 하거나, 아니면 컴퓨터 내 안전한 구역에 따로 저장하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온라인 메모장에 윗 12개 단어를 휘갈겨 썼고, 버튼을 클릭했다. 그러자 나의 시드 문구는 64개의 철자로 구성된, 겉보기에는 아무런 패턴을 찾을 수 없는 문장으로 변신했다.
"1b0be2162cedb2744d016943bb14e71de6af95a63af3790d6b41b1e719dc5c66"
이 문장은 암호 기술 세계에서 소위 "개인용 열쇠(private key)"라고 불리며, 실제에서 현관문을 열 때 사용되는 열쇠가 당신의 신원을 보증하듯이, 제한된 방식으로나마 온라인에서 당신의 정체성을 보증하는 장치다. 나의 시드 구문은 매번 정확한 철자 배열을 구현하지만, 이를 역설계하는 방법은 아직까지 나타나지 못했기 때문에, 시드 문구를 안전한 장소에 따로 보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온라인 내 개인용 열쇠는 두 번의 추가적인 변환을 통해 새로운 문자열을 다시 생성한다.
"0x6c2ecd6388c550e8d99ada34a1cd55bedd052ad9"
바로 이 문자열이 이더리움(Ethereum) 블록체인의 나의 계정 주소다.
이더리움은 암호화폐인 비트코인과 같은 과(same family)로써 가치는 2017년 한 해 동안 무려 1.000% 이상 상승했다. 이더리움은 또한 자체 통화를 가지고 있으며,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더(Ether)이지만, 관련 플랫폼은 그저 돈보다는 훨씬 다양한 범위에서 운용되고 있다. 나의 이더리움 계정 주소는 아마도 은행 계좌, 이메일 주소, 혹은 사회보장제도의 번호로 여겨질 수가 있다. 크라우딩 펀딩에 기부하거나, 아니면 온라인 투표에 참여하는 등, 온갖 종류의 전자 거래를 재차 시도했었을 때, 나의 컴퓨터 안 어딘가에서 안전하게 저장된 이더리움 주소는 거래를 검증하려고 그 자리에서 구축된 전 세계의 컴퓨터들 간의 네트워크로 널리 퍼져나간다. 검증 결과가 나오면, 이것 역시 네트워크 안에서 다시 송출되고, 더 많은 기계들이 수학적 계산을 수행하고자 일종의 경쟁에 뛰어든다. 경쟁을 거친 최종 우승자는 지금까지 구현된 모든 종류의 거래들로 이뤄진 이더리움의 역사에 또 하나의 단일 이정표로 기록된다. 왜냐하면 이러한 거래는 데이터의 "블록(block)" 형태의 하나로 등록되기 때문이다. 등록된 기록들을 우리는 블록체인이라고 부른다.
전자 거래가 완전히 끝나기까지 단 몇 분만 소요된다. 나의 관점에서, 이런 경험은 일상생활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기술적 관점에서 보자면 기적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기술이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 신용을 위해서 부단히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전통적인 금융 기관을 배제한 채 나는 안전한 거래에 성공했다. 중개인이 개입할 여지가 이번 거래에는 없었다. SNS 미디어가 나의 온라인 거래를 분석해서 관련 광고를 선보이는 사례도 없었다. 어떤 신용 기관도 나의 재정적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자 개인적인 온라인 활동을 추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모든 활동을 가능하게 만들어 준 플랫폼은 과연 무엇일까? 일단 그 누구도 이 플랫폼을 소유하지 못한다. 이더리움 주식회사(Ethereum Inc)를 지원하는 벤처 투자자들은 없다. 왜냐하면 이더리움은 주식회사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조직 형태로 봤을 때, 이것은 민간 기업보다 훨씬 민주적이다. 제국의 수장이 밑으로 일방적인 명령을 내리지 못한다. 그저 사람들은 관련 커뮤니티에 가입하고,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이더리움이라는 배를 조종하는 특권을 가질 뿐이다. 다른 유명한 블록체인인 비트코인과 마찬가지로, 이더리움은 형식화된 실체보다 더욱 집단적인 특색을 지닌다. 경계선 표면에는 구멍이 많고, 계층 구조는 철저히 평면적이다.
아, 또 한 가지가 더 있다. 블록체인 코인인 이더의 경우에, 2017년 1월의 가치는 8달러였지만, 1년 후는 843달러로 급상승했기 때문에, 집단 내에서 열심히 노동에 참여한 몇몇 사람들은 이미 수십억 달러 규모의 순익을 거두었다.
어쩌면 당신은 이 같은 변화를 고려할 가치가 없다며 일축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고삐가 풀려 제어가 좀처럼 되지 않는 비트코인과 이더의 변동 폭은 소위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의 사례 연구에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면 신용카드 거래를 새로 만들고자 온라인 웹사이트에 로그인을 하는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게 다가오는 작금의 신비로운 기술적 혁신에 왜 당신은 신경을 써야 할까?
이것을 단순히 부정하려는 자세는 근시안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우리가 인터넷의 최근 역사를 통해 하나라도 배웠더라면, 외견상으로는 소수가 소프트웨어 아키텍처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면, 기술이 한 번이라도 광범위한 순환이 될 시에, 그 결정은 전 지구적으로 엄청난 영향력을 촉발시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만약 1970년대부터 활용된 이메일 시스템이 공개용 및 개인용 열쇠를 위시한 암호 해독 기술을 디폴트 세팅으로 받아들였더라면, 기업 소니(Sony)부터 개인인 존 포데스타(John Podesta)까지, 우리는 어쩌면 대재앙에 가까웠던 이메일 해킹을 미연에 방지했었을 테고, 소비자들은 온라인 개인정보 도용 피해를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만일 월드 와이드 웹 창시자인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가 사람들의 사회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프로토콜을 초기의 인터넷 사양에만 한정시켰다면, 우리는 페이스북 같은 프로그램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더리움 같은 블록체인 플랫폼을 철저하게 믿는 사람들은 다수의 공헌으로 나타난 신뢰가 하나의 네트워크를 이루며, 결국에 이것은 역사적 함의를 이끌어내는 매우 진일보한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가운데 한 가지로 나타날 거라고 주장한다. 이런 기대감은 암호화폐 평가에 대한 크나큰 발전을 가져왔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비트코인 버블 사례는 진정한 블록체인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는 궁극적인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기술의 출현에 따른 확실한 전망은, 그간 수많은 기술 혁신가들이 주창했듯이, 우리의 화폐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을 바라보는 대중의 사고방식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 놓는 것에 놓여 있으며, 온라인 세계가 더욱 평등해지고 분산화된 성격을 띠는 공간으로 탈바꿈된다는 점에서도 방점을 찍는다. 당신이 기술 혁신가들의 말을 믿는다면, 블록체인을 우리의 미래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인터넷의 근원(roots)으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무한한 도서관과 전 세계적인 상호 연결 등 유토피아적인 꿈이 영감으로 주어진 이후로, 지난 한 해 동안 인터넷은 대중에 의해 보편적인 희생양이 된 것처럼 보였다. 여러 종류의 사회적 질병의 원인이 온라인에서 우리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페이스북 등지에서 페이크 뉴스를 만들어 우리의 민주주의를 파괴시키는 러시아 악성 댓글러들(trolls)이 있고, 트위터나 레딧에서는 소수의 괴짜 엘리트들이 챙기는 막대한 부로 인해 소득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는 내용의 증오 표현 게시물들 넘쳐난다. 인터넷 초창기에 활약했던 사람들 가운데 몇몇은 작금을 신학에 등장하는 '인류의 타락 이후의 상황(post-lapsarian)'과 비슷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소규모 잡지, 블로거들, 그리고 온라인 백과사전은 인터넷이 앞으로 평등주의적 미디어 도구로 성장할 거라는 전망을 했었다. 특히 20세기에 대중문화를 주도했던 정보업계의 거물들은 방송 채널이나 계급 간 구조로 파생되는 체계가 아닌, 상호 협력적인 네트워크를 통한 보다 분권화된 구조로 나아가려고 했었다. 더욱 광범위해진 문화는 인터넷 안에서의 개인과 개인이 연결되는 'P2P(peer to peer)' 아키텍처로 반영될 거라고 내다봤다. 당시의 웹은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좀 멀었고, 그 대신에 투자 자금 관련된 버블과 스팸 업체의 난립과 더불어 수천 가지의 문제점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단점 밑바탕으로 진보의 근원적인 이야기가 있을 거라고 가정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인 2017년은 우리에게 이 이야기가 실로 붕괴되었다는 표식을 정확히 알려주었다. 인터넷 회의론자들의 존재감은 비단 새롭지는 않다. 그럼에도 차이점이 있다면, 이제는 회의론자들의 주장이 과거 인터넷을 찬양했던 사람들의 귀에 설득력 있게 들린다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의 공식 자서전을 쓴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은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몇 주쯤 지나서 출간한 자신의 에세이에서 "인터넷을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40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 인터넷은 그 자체를, 그리고 우리를 좀먹고 있다."라고 썼다. 구글에서 전략가로 활동했던 제임스 윌리엄스(James Williams)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주목 경제(attention economy)의 역학은 구조적으로 인간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뉴욕 최고의 벤처캐피털 회사인 [유니온 스퀘어 벤처스]의 경영 파트너인 브래드 버냄(Brad Burnham)은 자신의 블로그에 디지털 시대에서 준독점 기업들의 활동에 따른 부수적인 피해에 대해 한탄하는 게시글을 올린 바 있다. "페이스북 뉴스 피드에서 펼쳐지는 결코 차별되지 않는 콘텐츠들의 홍수에서 출판업자들은 자신들도 어느덧 그러한 것들을 일조하는 공급업자와 비슷한 자신들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웹사이트들은 구글 검색의 알고리듬이 조금이라도 변할 시에 자신들의 이익에 바뀔 거라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리고 아마존이 중국에서 제품들을 직접 아웃소싱하고, 이를 수요에 맞춰 자사 제품으로 공급하는 정책을 결정하면서, 미국의 일반 제조업체들은 자기네들의 판매량이 급감하는 과정을 무기력하게 쳐다볼 수밖에 없다. (참고로 버냄이 속한 회사는 내가 창업한 스타트업을 2006년에 투자한 적은 있었지만, 그로부터 5년 후인 2011년에 내가 매각을 한 이후로 그와의 일절 재정적인 관계를 맺은 적은 없습니다) 심지어 웹 창시자인 팀 버너스리 조차도 SNS와 검색 엔진의 광고 기반 운용 모델은 놀랍거나, 충격을 주거나, 아니면 우리의 편견이 확증되도록 고안된 "잘못된 정보"나 "페이크 뉴스"가 존재할 환경을 제공한다는 자신의 우려를 한 블로그 게시물에서 표명한 바 있다. "들불처럼 마음껏 퍼져 나가고 있다."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이러한 종류의 어마어마한 구조적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방안으로써 스마트폰의 전원을 잠시 꺼두거나 아이들로 하여금 SNS 접속을 못하게끔, 온라인의 위험성을 스스로 경각하는 마음가짐을 주문하거나, 혹은 규제나 반독점 조치 등 강력한 사회적 권고안이 있어서 거대 IT 공룡들도 전화나 철도, 혹은 초기 인터넷 망처럼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대중의 이익과 부합되는 활동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던 여타 다른 기업들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개인의 마음가짐과 사회적 권고안, 이 두 가지 아이디어는 좋다. 우리는 SNS와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해야 하는지를 준거하는 새로운 자세를 공고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기업들도 TV 네트워크와 똑같은 규제 감시를 받아야 한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방안은 현재 온라인 세계가 직면하는 핵심 문제들을 결코 해결하지 못할 거라고 본다. 기실, 지난 1990년대에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인 권력에 도전했던 것은 미국 법무부의 반독점 조치뿐만이 아니었다. 그때 웹, 오픈소스, 그리고 애플의 유수의 제품들 등 새로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나타났고, 이로 인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우세한 시장 장악력은 점차 약화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이더리움과 같은 플랫폼을 지지하는 열혈 블록체인 지지자들은 소프트웨어나 암호 기술 및 분산 시스템이 각기 비슷할 정도의 발전을 거듭했기 때문에 오늘날의 디지털 문제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온라인 광고을 갉아먹는 인센티브, 페이스북이나 구글, 혹은 아마존의 준독점 체제, 러시아의 역정보 캠페인 등등. 만약 지지자들의 예상이 맞는다면, 아마도 그들의 창조물은 과거의 반독점 규제 조치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IT 업계 거물들의 헤게모니를 저지할 수가 있을 것이다. 또한 열혈 지지자들은 19세기 후반 악덕 자본가들(robber barons)이 탄생했을 때부터 좀처럼 보기 어려웠던 부의 불평등을 촉발시켰던 현 자본주의의 승자독식 모델에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런 효과적인 대안은 일반적인 IT 소비자들이 이해 가능한 범위의 제품에서는 그렇게 확실히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대중으로부터 확실하게 눈도장을 받은 유일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비트코인이고, 현재 투기라는 거품에 휩싸여 허우적거리는 듯하다. 이건 마치 이웃집 차고에서 의료 및 가구를 염가로 판매하는 것처럼 보였던 1990년대 인터넷 기업 공개에 따른 사회적 양상과 어지간히 비슷하다. 그래서 여기에는 블록체인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인지적 불협화음이 존재한다. 앞으로의 혁명을 꿈꾸는 잠재적인 힘은 협잡꾼들, 거짓 선지자들, 외국 용병들로 구성된 온라인 폭력조직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군중에 의해 실제로 약화되고 있다. 비록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보다 개방되고 분산된 네트워크를 염원했던 기술주의자들은 실상 자신들이 하룻밤 만에 엄청난 이익을 거두려고 난리 치는 기회주의자들로부터 둘러 싸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문제는, 버블이 터진 이후에도 블록체인의 실질적 장래성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이다.
현대의 기술사를 배우는 학생이 보기에 인터넷 품위 하락은 불가피하게도 역사적 교훈으로 귀결될 것이다. 2010년에 자신의 저서인 [마스터 스위치, the Master Switch]를 펴낸 팀 우(Tim Wu)는 20세기의 주요 기술들이 유사한 발달 과정을 고수했다고 주장하면서, 공동체주의와 호기심에 입각한 연구진과 취미 생활자들이 먼저 기술을 선보이지만, 결국 주주 이익의 극대화에 초점을 둔 대규모 다국적 기업들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걸로 매번 끝이 난다고 말했다. 팀 우는 이런 비슷한 패턴을 "사이클(Cycle)"이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인터넷은 표면적으로나마 그럴싸한 확신을 가지고 이 사이클을 따랐다. 이윽고 인터넷은 정부 지원을 받은 학술 연구 프로젝트와 개인적인 부업으로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웹이 대중의 상상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한 지 20년 후가 돼서야, 구글과 페이스북, 그리고 아마존, 간접적으로나마 애플까지도,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유용하면서도 강력한 기업이 태생될 수 있게 되었다.
블록체인 옹호론자들은 사이클의 불가피성을 용인하지 않는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터넷의 근원은 이전 정보기술보다도 훨씬 극단적으로 개방되고 분산되었다. 또한 그들은 그 근원에 충실히 따랐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유지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온라인 세계는 더 이상 소수의 정보시대의 거물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을 테고, 새로운 플랫폼은 조작과 부정을 그리 쉽게 용납할 시스템이 아니며, 신분 도용은 이제 흔한 일이 아니고, 아주 광범위한 영역의 미디어 조직들에게 많은 돈이 골고루 분배될 것이라고 한다.
왜 그렇게 될지 이해하고 싶다면, 먼저 인터넷은 겹겹이 쌓인 여러 레이어들을 발굴해 나가는 고고학적 접근과 비슷하게 두 가지의 서로 다른 근본적인 시스템이 하나로 맞물려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 첫 번째 레이어는 1970~1980년대에 발달한 소프트웨어 프로토콜들로 이뤄져 있으며, 1990년대에 이르면서, 그때 사람들이 구사한 언어에 따르면, 이미 임계치에 도달했었다. (하나의 프로토콜은 다수의 컴퓨터들이 서로 간의 통신을 하는 데 있어 동의한 공통의 의사 전달 수단[lingua franca]이다. 프로토콜의 종류도 다양한데, 인터넷에 오고 가는 데이터를 관장하는 프로토콜, 이메일 메시지를 보내는 프로토콜, 웹 페이지의 주소를 정의하는 프로토콜 등이 있다) 그 후에 나타난 두 번째 레이어는 웹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혹은 트위터나 아마존이 여기에 해당이 되고, 향후 10년 동안 크나큰 발전을 거듭했다.
첫 번째 레이어인 "인터넷원(InternetOne)"이라 불렸으며, 오픈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당시 이런 프로토콜은 학술 연구자들과 국제 표준 기관에 의해 정의되고 규격화되었는데, 그 누구도 이것을 혼자서 소유하지는 못했다. 기실, 이 시대부터 내려온 개방성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가 있지만, 사람들은 쉽게 그걸 판별해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메일은 여전히 오픈 프로토콜인 POP, SMTP, 그리고 IMAP에 기반하고, 웹사이트들은 여전히 HTTP라는 오픈 프로토콜을 통해 서버를 유지한다. 비트 단위의 컴퓨터 정보량은 인터넷의 초창기 오픈 프로토콜이었던 TCP/IP에 의해서 지금도 계속 순환되고 있다. 이러한 소프트웨어 간의 협약이 기술적 수준에서 어떻게 작동이 되어 여러 혜택을 제공하는지에 대해 당신은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다. 협약의 당사자들 간의 공유하는 것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특징은 누구나 무료로 사용 가능하다는 점이다. 당신이 만약 웹페이지를 구축하려고 할 때, HTTP를 소유하는 몇몇 조직들에게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SMTP를 이용해서 이메일을 보내려고 할 때도, 광고주들에게 당신의 개인정보 일부분을 딱 잘라내어 부분적으로 판매할 이유도 없다. 위키피디아와 함께 인터넷의 오픈 프로토콜들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 커먼즈(commons) 기반 생산 방식의 가장 인상적인 예로 발돋움했다.
엄청나지만 육안으로 보기 힘든 프로토콜들의 그간 이득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키에 대한 표준(key standards)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발달되지 못했다는 점을 우선 상상해 보자. 우리의 지리적 위치를 알려주고자 공개 표준(open standards)을 이용하는 장치가 바로 GPS다. 원래 지구 위치 파악 시스템은 미국 군대에 의해 개발이 되었지만, 레이건 행정부 때 민간 용도로써 처음으로 활용되었다. 그로부터 약 10년 동안은, 소비자 개인을 위한 자동차 내재 내비게이션이 나올 때까지, 이것은 주로 항공업계에서 널리 쓰였다. 그리고 현재 우리 위에서 궤도를 그리며 도는 GPS 위성으로부터 신호를 수신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 나와 있고, 우리는 근처 레스토랑 맛집 검색, 게임 포켓몬 고(Pokemon Go) 활용, 재난 구조 활동 협력까지 모든 분야에서 특별히 발휘될 힘을 우리는 이용할 수가 있다.
하지만 만약 군대 측이 GPS를 공공 도메인 밖으로 몰아냈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렇게 된다면 1990년대 중반쯤에 실리콘밸리의 혁신가들이나 IT 업계의 핵심 세력들은 소비자들이 보다 정확한 지리적 좌표를 알아내서, 이를 디지털 지도에 특정 위치로 투영하는 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재빠르게 캐치했었을 것이다. 물론 독자적인 위성을 궤도에 쏘아 올리고, 고유한 프로토콜을 발전시키는 등 기업들 간의 경쟁이 몇 년 동안 점화되었겠지만, 결국 업계에서는 사람의 위치를 확인하는 용도로써 공통적이지만 단일한 기능으로 귀결되어 나중에 하나의 지배적인 모델이 나왔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만들 수 있었던 가상의 회사를 "지오북(GeoBook)"이라고 명명해 보자. 처음에는 지오북의 기술을 채택함으로써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에 정밀한 위치 인식 기능을 구축하려 했었던 소비자들이나 기업들은 약진을 거듭하게 된다. 하지만 그 후부터는 어두운 전망이 나타나게 되는데, 하나의 특정 민간 기업이 지구촌 수십 억 명의 행적을 추적하게 되고, 이동하는 위치를 특정해서 맞춤 광고를 제공하는 거대한 집단을 만들게 된다. 이와 다르게 소규모 스타트업들은 거대한 지오북의 일시적인 변덕에 취약한 지리 인식(geo-aware)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밖에 없다. 적절하게도 분노로 가득한 논란은 하늘에 떠 있는 "빅 브라더"를 지탄하는 글귀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빅 브라더"라는 단순한 이유로 그것을 비난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지리위치정보(geolocation)는 웹페이지의 주소나 이메일 주소, 아니면 도메인 이름과 마찬가지로 오픈 프로토콜로 문제를 해결 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혀 문제없이 사용했었기 때문에, GPS가 얼마나 아름답게 작동을 하는지, 그리고 여타 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이 그것을 토대로 만들어졌는지를 잘 몰랐다.
개방적이고 분산된 웹은 인터넷원 층에서 보다 생생하고 효과적이다. 그러나 우리가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에 안착하면서 아주 소수의 새로운 개방형 프로토콜만을 적용시켰다. 1995년이 지나자 최신 과학 기술 전문가들은 온라인 내 정체성, 공동체, 그리고 결제 메커니즘을 위시로 한 여러 난제들을 지적하기 시작했고, 대부분은 민간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되었다. 이는 곧 2000년대 초반에 인터넷 서비스라는 엄청나게 강력한 층을 촉발시켰는데, 그것은 바로 "인터넷투(InternetTwo)"이다.
이런 모든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의 틀을 주조한 초기의 프로토콜 발명가들은 훗날 온라인의 문화에 결정적 토대가 된 여러 핵심 요소를 결정적으로 포함시키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마도 네트워크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보다 확실한 개방형 기준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페이지, 링크, 메시지 등이 정보 단위를 규정할 수 있지만, 인간 자체의 프로토콜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한 사람의 실명과 장소, 그리고 (가장 중요한) 타인과의 연결을 정의하거나 공유할 리가 만무했다.
결국 이것은 아주 중대한 간과로 판명 났는데, 왜냐하면 온라인 내 정체성은 하나의 보편적인 세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해결 방안으로부터 혜택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더리움의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Vitalik Buterin)은 이를 두고, "기초 레이어(base-layer)" 기반 시설이라고 묘사했는데, 언어, 도로, 우편 서비스 등 공적 영역의 기본적인 레이어를 확보하면서 상거래와 경쟁을 유발하는 플랫폼이 여기에 속한다. 오프라인에서 여권이나 사회보장제도의 번호를 거래하는 자유 시장 따위는 존재하지 않지만, 국가처럼 평판이 있는 권위를 대신 수용함으로써,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아낼 때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민간 부문이 공백을 메꾸기 위해 갑자기 나타났고, 정체성도 꽤 보편적인 문제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시장은 당신과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을 정의하고자 단 하나의 공통적인 기준을 마련하라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이 부르는 "수익 증대", 혹은 "네트워크 효과"라고 부르는 일종의 자기 강화(self-reinforcing) 피드백 루프는 마이스페이스(Myspace)와 프렌드스터(Friendster) 같은 소셜 미디어 스타트업에 사람들이 투자를 한 후로 실험을 거듭하면서 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고, 시장은 당신과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밝혀주는 특허 표준에 따라서 결정되었다. 그 표준은 바로 페이스북이다. 전 세계 사용자 20억 명이 넘는 페이스북은 1990년대 후반에 터진 닷컴 기업의 버블의 정점보다 그 세기가 더 크다. 사용자 수의 폭발적인 증가에 따라 페이스북은 설립된 지 14년 만에 세계에서 6번째로 제일 큰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페이스북은 인터넷원과 인터넷 투의 커다란 경계선을 긋는 전형적인 화신으로 군림한다. 이메일이나 GPS, 혹은 오픈 웹을 정의하는 프로토콜을 소유하는 민간 기업은 일찌감히 없었다. 하지만 단일 법인이 오늘날의 20억 인구에 관한 사회적 정체성을 정의하는 데이터를 소유한다. 그리고 오로지 단 한 사람, 마크 저커버그가 그 법인 내 투표 행사에 막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중앙으로 집중하는 웹의 탄생이 어떤 한 주기의 필연적인 전환이라고 여긴다면, 그리고 초기 웹의 개방형 프로토콜 이상주의를 마치 청소년기의 그릇된 무의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인터넷원의 비전을 포기하고자 취했던 모든 방식에 대해서 지금 초조해야 할 이유는 거의 없다. 두 가지 중에 하나다. 우리는 지금 타락한 국가에 살고 있어서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방도가 전혀 없거나, 아니면 너무나 고도화된 권력으로 인해 에덴동산, 그 자체가 타락한 판타지라는 것. 무엇이든지 간에, 인터넷원의 구조를 다시 복구하는 건 매우 무의미한 일일 뿐이다.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정부가 규제와 독점 금지 조치를 취해서 이들 거대한 기업들을 국가의 힘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는 오드리 로드의 격언을 살짝 비튼 형태와 비슷하다. "장인의 도구는 그의 집을 절대로 분해하지 못할 것이다." 기술적인 해결방안을 더 내놓는다고 해서, 우리를 위해 기술이 야기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법이다. 엄청난 힘을 가진 독점 카르텔을 분산시키려면 소프트웨어와 서버 영역 밖의 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까 언급한 장인 비유에서, 그의 집에 관련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바로 복층 구조라는 것이다. 위층은 해체하기 어려운 재료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개방형 프로토콜은 더욱 좋은 무엇을 만들 잠재성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