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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st in Translation Mar 06. 2018

"#미투" 시대에 발맞춰, 미인 선발대회를 재고하다

마곳 미플린, 2018년 3월 1일, 워싱턴포스트


현재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는 오명을 뒤집어쓴 상황이다. 대회 CEO는 사임을 표했고, 한때 미스 아메리카들의 팬이라고 지칭했던 소설가 제니퍼 와이너(Jennifer Weiner)는 바야흐로 "미스 아메리카의 종말"을 선언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우선 미인 선발대회가 과연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물어볼 가치가 있겠다. 미스 아메리카는 지난 1921년 첫 우승자가 나온 후 대중이 별명을 붙여준, 단순히 "수영복을 입은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인 걸까? 또한 첫 우승자가 쓴 왕관을 계속 이어 쓰면서, 마치 자유의 여신상처럼, 우승자는 미국의 가치를 상징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그녀는 미국에서 제일 성공한 "싱글" 여성이 된 걸까?

 

어수선하여 갈피를 잡기 어렵다.

 

미인 선발대회는 여성의 사회적 진보에 직면하면서도 그때마다 현상 유지를 위해서 언제나 수많은 투자를 단행했다. 장학금 지급부터 자선사업 관리까지 수십 년 동안 아무리 힘써 봐도(tweaking),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여성이 얼마나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지 상관없이, 한 가지라도 제대로 조절하거나 관리할 수 없다면, 그녀는 루저(loser)에 지나지 않는다. 그 한 가지는 바로 "아름다움(beauty)"이다. (역사학자인 로이스 W. 배너[Lois W. Banner]가 일찌감히 얘기했듯이, 미인 선발대회의 주된 개최 이유는 사회적 기강에 가깝지, 사회적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아름다운 외모를 미국인의 성취로, 국가적 자부심의 일환으로 바라보는 애국심 따위는 그저 눈속임(drapery)에 불과하다.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는 미국에서 여성의 참정권이 생긴 후 1년 만에 처음으로 개최되었지만, 지금은 새로운 동력을 거머쥔 유권자들이 여성의 자주적 해방을 설파함으로써 대회 존립 자체가 불투명해져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최초의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는 미국 동부 애틀랜틱 시티의 한 해변에서 "도시 간 미인 선발대회(Inter-city Beauty Contest)"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당시 이 대회에 참가한 여성의 수는 8명이었고, 대부분 소녀였으며, 수치스럽게도 노출이 심하면서 신체에 꼭 끼는 수영복을 착용했다. 이는 공공연히 불법이었지만, 여성들이 해수욕 관련 복장을 공공장소에서 입는 걸 금지하는 법안을 선발대회에 내내 적용시키지 말아달라는 요구가 거셌다. 

 

당시의 미인 선발대회는 참가자들의 피부 상태를 보이는 쇼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회 감독관들이 참가자들은 어린 소녀와 혼기에 달한 여성들로 한정하고, 미국 태생의 백인들로만 하는 게 사회적으로 유익하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인에 대한 이러한 기준은 이민에 따른 불안감을 경감시키고, 우생학이라는 유령을 자연스럽게 다시 불러냈다. 이는 1910년대에 종종 열렸던 아기 선발대회(baby contests)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고, 결국 미국의 가정 확립과 "나은 양육"이라는 모토 아래서 추후에 개최된 (미국에) "더욱 적합한 가족, (Fitter Family)"이라는 선발대회까지 열리는 데 영향을 줬다. 미스 아메리카 주최 측은 바로 이 지점을 중요하게 포착했다. "미래의 후손을 낳고 기를 사람들의 능력을 선발대회에서 측정하는 것보다도 국가를 이롭게 할 재능을 평가할 더 나은 방법이 과연 있을까?"

 

그때 당시의 문제는, 지금도 그렇지만, 바로 수영복이었다는 점이었다. 초기 대회 참가자들은 주로 "아네트 켈러만"이라는 브랜드를 이용했다. 챔피언 경력을 지닌 한 수영선수가 직접 디자인한 이 수영복은 원피스 형태로써 신체에 꽉 끼는 구조가 특징이었고, 물속에서의 스피드를 강조하는 동시에 여성의 다리를 감싸는 전통적인 블루머형(bloomer) 바지가 아닌, 무릎까지 오는 스타킹을 착용하도록 고안되었다. 당시 공공장소에서 착용 가능한 여성 전용 수영복의 개념은 여전히 새로웠다.  왜냐하면 한 세기가 지날 때까지, 여성들은 무거운 모직으로 만든 수영복만 입었기 때문이다. 어떤 여성들은 소위 "배싱 머신(bathing machine)"이라 불렸던 이동식 탈의 기계를 빌려서 아무도 보지 않는 저 멀리 바닷속까지 끌고 가기도 했다.

 

또한 대회 관리자들은 원피스 유형의 수영복이 여성 참가자의 신체적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식으로써 남성 구경꾼들로 하여금 헐떡거리게 하거나, 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지르는 데 용이할 거라는 정당성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것은 수영을 하는 행위와 전혀 거리가 멀었고, 지금도 그렇다. 그저 여성들의 신체적 "적합도"를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수영복 착용에 따른 미인 선발대회의 영속적, (그리고 확연한) 역설은 여성의 몸을 노출시키는 동시에 그녀의 성적, 신체적 힘을 부정하는, 또 다른 이중잣대를 만들어냈다. 한 참가자가 전날 미인대회에서 입었던 수영복을 그대로 다음날에 해변에서 입고 돌아다니자 경찰에 의해 체포된 건 이중잣대의 극적인 장면을 의미한다.

 

1941년에 리노라 슬로터(Lenora Slaughter)라는 사람이 최초로 여성 관리자로 임명된 이후로, 미인 선발대회는 지금까지도 볼 수 있는 여러 기능을 당시에 제시함으로써, 특정 해변에서만 개최된 눈요기용 행사가 아닌, 미국 전체를 아우르는 국가적 행사로 발돋움을 꾀했다. 슬로터는 미인 선발대회의 전통적인 가치, 이를테면 정숙함, 문화적 유사성, 그리고 이성애적 여성상을 유지하면서도 미스 아메리카가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는 여성이라는 포맷을 들고 나섰다.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요."라고 슬로터가 말했다. "애틀랜틱 시티에 가서 한낱 해변 미인 선발대회로만 남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죠."

 

리노라 슬로터는 평과 가정에서 참가자의 품격과 지능을 추가했고, 우승자가 수영복 대신에 이브닝 가운을 입고 왕관을 수여받는 걸로 바꿨다. (이로 인해서 일부 언론사들은 실망감을 느낀 나머지 파문을 일으켰다) 이와 더불어서, 대회가 열리는 주 내내, 참가자들을 관리하고자 에스코트 인력을 붙였고, 오늘날까지 스트립쇼에서 볼 법한 화려함을 공적인 가치로 가려주는 장학 프로그램을 그때 처음으로 출범시켰다.

 

그러나 슬로터가 20년 동안 대회 총책임자로 부임하자, 미국에서의 여성의 가치는 끊임없이 충돌하게 되었다. 1945년에 그녀는 베스 마이어슨(Bess Myerson)이라는 여성이 첫 번째로 유대인 출신의 미스 아메리카로 등극할 거라는 예지력을 보였다. 하지만 슬로터는 그녀에게 이름을 영국식으로 바꾸라고 종용했다. 또한 슬로터는 그녀가 피아니스트로서 투어를 다닐 정도로 재능이 탁월하지만, 우승 왕관을 쓴 이후로는 노래와 춤을 곁들인 소회극인 보드빌(vaudeville) 순회공연에서 휘파람을 부는 남성들을 앞에 두고 수영복 차림으로 등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슬로터의 영향 아래서 미인 선발대회가 운영이 되는 과정에서 악명 높은 규정 7이 등장하고야 말았다. "대회 참가자들은 건강이 좋아야 하며, 무조건 백인이어야 한다." 슬로터 체제 아래서 미스 아메리카가 무엇을 표현하든지 간에, 그것은 민주주의적 절차로 의해 정해진 게 아니었다.

 

리노라 슬로터가 은퇴하는 1960년대 후반까지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는 완고하게 수구적인 색채를 강조하면서 전국적으로 TV에 방영되는 하나의 사회적 제도로 이어져 있었다. 1968년은 미국에서 역사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격변의 해였고, 신데렐라(Cinderella)가 선발대회 주제로 결정되었다. 사회 기득권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일련의 젊은 세대로 출현으로 말미암아 미인 선발대회 자체의 부적절한 성격을 간파한 펩시(Pepsi)는 후원을 당장 중단했다. 

 

2세대 페미니스트들(second-wave feminists)의 주도 하에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성차별에 반대하는 해변가 가두시위에 수많은 여성들이 참여했다. 또한 그날에는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가 지원하고 오로지 미국의 흑인들만 참여한 미스 흑인 아메리카 선발대회도 처음으로 열렸다. 그때 우승을 거머쥔 손드라 윌리엄스는 관중을 향해서 "미스 아메리카는 흑인들을 대변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승 타이틀을 가지고 흑인 여성들도 백인들과 똑같이 아름답다는 점을 보여줄 겁니다"라고 외쳤다.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는 1970년까지 흑인 여성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후에야, 바네사 윌리엄스(Vanessa Williams)라는 여성이 유색인종으로는 처음으로 미스 아메리카 왕관을 수여받았다. 

 

1990년대로 돌입하자 선발대회의 TV 시청률은 급락하게 되었고, 미스 아메리카는 일종의 웃음거리(punchline)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인들은 이제는 너무나 오래되어서 재미가 떨어진 키치(kitsch) 가득한 향연에 오히려 관심을 두었고, 엉덩이에 풀을 발라 볼륨을 키우다 들통난 사건이나 우스꽝스러운 울음 장면을 구경했다. 

 

그러나 만약 이 같은 미인 선발대회가 문화적 특질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을 예전부터 배양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장학금이었다. 1955년에 왕관을 수여받은 배우 리 메리웨더(Lee Meriwether)부터 2016년 우승자인 니나 다불루리(Nina Davuluri)까지, 저소득 가정 출신의 수많은 우승자들은 오로지 대학에 가서 학업에만 매진하는 길밖에 없었다. (메리웨더는 아버지의 사망 이후로 미인대회에 출전한 경우인데, 엄마가 "네가 계속 학교에서 공부하려면 애틀랜틱 시티에 가는 방법밖에 없어"라고 충고를 해주었다고 한다) 미인 선발대회 참가자들은 반드시 사회적인 이슈에 대한 의견을 표명해야 한다는 신설 규정 때문에 우승을 거둔 여성들은 가정폭력이나 문맹률 퇴치, 혹은 AIDS 홍보 활동까지 여러 영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비로소 미스 아메리카는 교육을 받은 여성뿐 아니라 자선활동가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회 측의 기준에 따르면, 미스 아메리카로 선발될 때 참가자의 미모가 약 40% 정도 작용된다고 한다.

 

오늘날의 미스 아메리카 조직위원회는 2013년에 문신을 한 여성을 참가자로 허용했고, 2014년에는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장학금을 신설했으며, 2016년에는 최초로 레즈비언 참가자도 등록을 허락하면서, 대회의 현대화를 시도하고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뒤늦은 자구책은 오히려 영구적으로 덫에 놓인 시간 왜곡을 강조할 뿐이다. (미인 선발대회 특유의 문화가 너무나 소심한 나머지, 레즈비언 여성을 참가자로 등록하는 데 있어 2015년 미국 동성 간 결혼 공식 법제화가 필요했던 것일까?)

 

미스 아메리카의 역사가 요동치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메일 스캔들은 선발대회의 취지를 부식시키고, 문화적 상징을 변색시키는 핵심 요인이 되지 못할 것이다.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여성들의 가치가 폄하되는, 착취당하는, 공격당하는, 여러 사회적 특권이 제한되는 모습이 공공연히 재현되면서, 미인 선발대회 참가자들은 기회의 대가로 자신들의 신체 일부분을 보이도록 요구받는 국가적 의식을 더 이상 받아들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또한 600만 달러로 추산되는, 가장 최대 규모인 여성 전용 장학기금이 오직 미인 선발대회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미국 민주주의 작동 기제의 어느 부분이 실패했다고 알려주는 걸까? 수천 명의 여성 패배자들이 전국적인 오디션을 준비하는 데 1년을 허비하지 않아도 장학금을 받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리고 여성이 장학금을 수령하려면 반드시 예쁘고, 마르고, 싱글이고, 물론 자식도 없어야 하나?

 

모조 다이아몬드인 라인석(rhinestone)으로 만들어진 왕관은 미스 아메리카의 가장 유명한 상징일지도 모르겠지만, 끝에 가서는, 우승자 몸에 두르는 긴 띠(sash)가 더욱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공공장소에서 열리는 대규모 모임은 결국 서프라제트 운동의 강력한 도구로 발휘될 테고, 여기서는 긴 띠가 아니라, 수많은 푸시 모자들(pussy hats)로 인해서 여성운동의 일관적인 메시지와 동지애가 전파될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다양한 색깔(보라색, 하얀색, 그리고 금색)의 모자를 쓰고, "여성 후보들을 투표하라(Vote for Women)"는 구절을 크게 외치면서 전미여성당(National Woman's Party)과 강력한 연대를 표현한 바 있다.

 

그러나 미스 아메리카는 대본을 확 뒤집어버렸다. 미인 선발대회 우승자의 몸을 전체적으로 감싸는 그 긴 띠에는 출신 지역 표기와 더불어서 정치와 전혀 상관없는 개인적인 열망만 가득할 뿐이다.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는 여성에 관한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한 여성에게만 관련된 행사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미인 선발대회에서 우승한 여성들은 각자 홀로 걸어갔다.  

 

 -끝-

 

Margot Mifflin is an author, journalist and professor in the English department of Lehman College/CUNY. She’s currently writing a cultural history of the Miss America Pageant. See more of her work on her 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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