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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ileen Nov 27. 2016

지금의 행복이 아니라면 행복이 아니야

마비와 행복의 평행관계

술이 달다는 것은 1시간후와, 내일과 다음주, 다음달, 다음해의 걱정으로 하루를 보냈다는 뜻인가봅니다.
그래서 나는 술이 좋으면서도 “술 없이 잘 살수있어” 같은 뻐팅김으로 3주씩 술을 입에도 대지않는다던가, 의식적으로 와인을 사오는 횟수를 줄인다던가 하는것 같아요.

리서치 페이퍼를 써야할떄는, 보다 객관적인 사실을 써야하기때문에 말문이 막힌듯 끙끙 거렸던 손이, 왜이렇게 내 생각을 써내려갈때에는 단 한번 막힘없이 춤추듯 움직이는지, 원망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이 손이라도 신나게 움직인다는 사실이 감사하기도 하고요.

하루종일 정부통계같은 자료랑, 다른 명석한 사람들의 논문같은걸 붙잡고 어버버 하면서 있다가 뭔 12시간이 후딱 지나갔네요. 온종일 꽁꽁 묶여있던 손가락이 아까워서라도 일기를 꼭 쓰고 잠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앞으로 2주동안 할 일이 정말, 정말 무지많이, 많지만, 이런 객관적 리서치페이퍼만 아니라면은 뭐든지 할수있을것 같은 마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리서치 페이퍼 대신써주는 아르바이트 애들이 얼마를 받더라, 하는 생각도 잠깐 하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다시 막대기 그래프와 뭐 표 같은걸 한참을 들여다 봅니다.

하루종일 몸을 배배, 아니 손을 배배 꼬던걸 옆에서 내내 지켜보던 룸메이트가 사과를 잘게 썰어서 화이트와인에 담가서 한잔 건네줍니다. 술을 입에 잘 대지않는 그녀가 한잔을 야금야금 마시더니, 이내 한층 더 다정한 목소리 톤으로 이런얘기 저런얘기 건넵니다.

‘쭉 들이켜 쭉’
‘천천히 마실게.. 내가 너무 조금쓰고자면 내일 불행할 것 같아’
‘지금 행복하지않으면 행복이 아니야!’

라고 명언을 건넵니다.

쭉 들이키면 나의 시간 감각과, 걱정거리들과, 결정을 하지않으면 견딜 수 없는 막연한 불안들이 온통 마비가 되겠지만. 이 마비는 내일 더 큰 마비를 불러올테고, 그 마비는 더 잦은 마비를 데려올거고. 마비가 된 상태로 죽을때까지 사는건 너무 불행하잖아요. 너무 한 장면의, 단편적인, 쾌락에 지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절충안으로, 와인을 아주 천천히 마시면서, 리서치 페이퍼를 즐기면서 쓸 수 있는 정도의 마비만 올 수 있도록 하는게 목표입니다.

부디, 이번주의 어마무시한 양의 리서치 페이퍼들과, 다음주 또 다다음주에 와락 덮쳐질 온갖 재봉 숙제와 그림숙제의 비를 눈을 부릅 뜨고 와다다다 지나쳐가서, 연말에는, 부디.

따듯한 잠옷을 입고 따듯한 블랭킷을 덮고 따듯한 차를 마시면서 따듯한 쿠션에 몸을 뉘여서, 따듯한 글들을 읽고 따듯한 메세지를 나누는걸 상상하면서, 차가운 기말의 몸을 데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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