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방향, 결, 산골짜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자신을 봤을때에도, 정말 “야 이건좀..” 하는 결점들이 눈에 띌 떄가 있다. 내가 동굴속에서 혼자 나고자란게 아닌 이상, 그 결점을 누군가에게서 습득해왔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 탓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내 속에 오래 가지고 있던 그런 속성들. 어떤류의 상황을 마주했을때, 아주 깊은곳 어딘가에서 차오르는 아주 본능적인 그런 감정들. 막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강하고 더 빠르게 입으로 얼굴표정으로 치고 나오는 그런 감정들. 그것들을 생각하면 누군가 “야 안바뀌는건 니 태도야” 라는 식의 말을하면 나도 분하다. 누구보다 바꾸고싶은건 난데 말이야
근데 또 반대로 생각해보면 나도 “안바뀌는건 네 태도야” 하는 류의 말도 해왔던 것같다. 나는 그거 해봤는데 됬으니까, 네가 안된건 변화하기에는 덜 열성적인 너의 태도야, 라고 단정지으면 쉽고 편하니까.
우리는 살아왔던 환경이 다 다르니까, 우리는 사고하는 태도도 다르다. 나의 어떤결은 깊이가 깊지않아서, 사포로 슥 밀어내고 수직의 결을 내는게 금방이지만. 어떤결은 오랜날동안 매일매일 부딪히며 깊어져 산골짜기 만큼의 깊이가 되버린 것들도 있다. 산골짜기만큼의 깊이는, 사포로 슥 민다고 될일이 아니고, 자란 나무를 베어내고, 베어낸 것들을 정리하고, 흙을 조금씩 모아 옮겨 담아서 굴곡진 부분을 평평하게 해야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열심히 자란나무들을 베어내고 풀을 베어내고 그것들을 치우고 있는 와중에 산골짜기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내 인생이 휙 끼어들어서 “게으름피지마” 라고 하면 너무 지치는 일이겠거니 한번 떠올려본다.
어린날의 트라우마들. 준사람도 받은사람도 왜 그렇게 고체화 되어서 마음에 응어리져있는지 모를 작은 억울함과 분노들이 똘똘 뭉쳐서 만들어낸 피해 덩어리들. 작고크게 누구나에게 주어졌던 그런 기억들. 요즘은 나보다 늘 억울한게 많았던 동생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순간이 더 잦아진다. 늘 뭔가가 억울하고 부당했던 그녀에게도 산골짜기 만큼의 결이 있어서 그런거였을까? 그녀가 가족 밖의 생활을 새로 시작하는 지금, 그녀의 산골짜기를 정돈하면서 가끔, 그녀가 별로 대단하지 않게 생각해왔던, 사실은 그녀에게 주어진 많은것들의 잔물결을 보면서 마음의 평안을 조금씩 찾아가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나는 왜 그녀가 주어진것들보다 주어지지 않은것들에 더 슬퍼하고 아파하는지 이해를 못했다. 몇년전 새로운것들을 더 많이 한번에 배워야 할 때 확 성립되어버린 나의 이론은, 당장 바꿀수없는 나의 위치에 연연하지말고, 서있는 그자리에서 바라보는 방향만 틀면 인생에있어서 실망이나 질투같은 류의 분노를 훨씬 덜 마주칠수 있기 때문이다. 내 위치를 내가 부단히 노력해서 바꿔놓는다고해도, 바라보는 방향이 주어진 것 쪽이 아닌 주어지지 않은것 쪽이라면, 위치와는 관계없이 끊임없는 욕심을 마주쳐야될테니까. 그래서 주어진것들을 바라보면 좋겠다. 그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니까. 고개를 돌려줄수있으면 좋겠다. 괜찮아 이쪽을 봐도 네가 가지지 못한것들이 너의 뒤를 덮쳐오진 않을꺼야 라고 조근조근 말할수있는 상냥함이 쌓아지면 좋겠다.
우리엄마는 뭐든지 똑부러지게 잘하는 사람이어서 그런가 그런 상냥함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 터프한세상을 살아가는게 쉽고 말랑한 감정을 다루기가 어려운게, 동생한테도 비슷하겠거니 짐작만 한다. 우리 둘다 산골짜기를 부지런히 깎아서, 그래서 마음이 한결 편안하고 할일을 열심히 하는 그런 어른이 되어가고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