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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ileen Feb 28. 2017

친구와 연인 사이의 무수한 중간

그는 못을 잘박는다. 항상 확신에 차있고, 눈이 반짝거린다. 그의 입술을 탄 단어들은 에너지가 넘치고, 단단하고, 또렷하다.
그에 반해 나는 다른모습이었다. 나는 움츠러들어있지는 않지만 당장 5분뒤에 내가 길건너다 차사고로 운명을 달리해도 이상할건 사실상 없는 세상에 살고있으니까 라고 생각하는 존재라서, 내 자신도, 부모님도, 누구도 확신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는 사람을 참 편안하고 재미있는 기분으로 만드는데에 특출난 재주가 있는데, 여지껏 딱 한가지 날 불편하게 하는것은 때때로 그가 나와 의견이다를때 “그러면 안돼”와 같은 어조로 말을 하는 버릇이다. 나도 그도 둘다 성급하고 말이 많은스타일이라서 그런지 입은 마를새가 없지만, 난 항상 그와만나고나면 그가 했던 수많은 단어들중의 몇가지만 골라서 곰곰히 생각해보게 되기 일쑤였다. 그렇게나 말을 많이하는 사람이니까 아무래도 의미전달 실패의 확률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일이지만.

우리 둘다 암묵적으로 우리는 연인관계가 아니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서로를 소개할때에도 친구라고 소개했다. 연인이 하는 모든일들은 다 같이 했는데, 책임감 하나만 쏙 빼서 우린 그냥 서로를 친구라고 불렀다. 그는 정확히 어떤마음이었을까 궁금하지만, 나는 그랬다. 친구에서 연인까지 가는 길은 너무 긴 데 비해 중간에 멈춰설 만한 곳은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정의되지 못한 그 중간들에 더 불편을 느끼는 둘 중 하나가 슥 제안을 해서 얼렁뚱땅 같이 순간이동 할 수 있지만, 뭔가 이사람과는 그렇게 하고싶지 않았다.

그는 순간순간을 보게 또 집중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여겨져서, 나는 그와의 관계의 순간순간도 집중해서 보고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우리는 중간의 길을 떠났다. 그리고 한달을 거의 매일 봤다. 자 우린 중간이야! 라고 정했다고해서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것을 멈추는법은 없다. 중간이 친구에 가까운중간인지 연인에 가까운 중간인지 수도없이 왔다갔다 하는 그 여정에 혼자 갸우뚱거리기도 여러번이었다. 내가 당장 원했던건 그 사람과의 즐거운 시간이었지, 책임감이 전혀아니었기때문에 내가 먼저 물어보고싶지도 않았다. 그냥 흐름에 맡겨서 두둥실 떠다니다가 마음맞아서 어느 섬에 내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도, 아무리 그렇게 몸을 맡기고 있고 그 상태가 기분이 좋았다고 해도. 우리에게 정착할 섬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둘 다 열이 올라 언쟁을 하던중에 그가 슥 꺼낸 말에, 현실과 이성과 모든 말이되는 것들이 다 들어있었지만, 그냥 어느날엔 섬에 도달하면 좋겠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떠다니고있던 나에게는 스위치 오프와도 같은 것이었다. 서글프지만 스위치가 꺼져서, 분홍색 구름같았던 지난 몇주가 조금 사그라들고, 그냥 조금 더 꺠끗하고 똑바로 보게 되는 것 같은 일이다.

사실 그 스위치가 꺼진 이유를 찾아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졌다. 만약에 나도 어떤 commitment를 원한게 아니라면, 화가 날 이유가 없었던것같은데, 도대체 내가 왜 기분이 확 상했는지 모를 일이었다. 우린 연인이라는 이름은 붙지않았지만, 연인이 하는 거의 모든일들에 책임감 하나만 빼고 다 해왔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에게 예쁘고 매력적인 존재이고 싶었다. 나의 어떤면이라도 그의 관심을 잡아 끌고 그가 날 욕심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화가 났었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일들을 risk하고싶어 하는 것 같은 모험적이고 열정적인 그가 한, 현실을 생각해보면 어렵다는 그말이 꼭 나에게는, 나는 욕심 나지 않는 대상이라는 것 같아서 그래서 화가 났었던 것 같다. 나를 욕심내지 않는 그에게,위험을 무릎쓸만큼 콩깍지가 씌여있지 않은 그 때문에 분했던 것 같다.

그 후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그래서 그 분이 조금 사그라 들고, 다시 내 감정을 한번 더 꺠끗하게 볼 수 있게됬다. 나는 그와 연인관계를 원하지 않는것 같다. 뭐니뭐니해도 그가 나를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같은 추측이 가장 큰 요소였겠지만, 일단 그와의 언쟁이 시작된 그 시점에서 가치관의 너무 큰 요소가 다르다는걸 알게되버렸기도 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모든게 예뻐보이는 초기의 뭉게구름이 삭 사그라들고, 나는 성급한말로 나에게 상처를 준 그와는 너무 가깝고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것같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흘러가는 관계는, 어디론가는 가겠지라는 나에게만 조용히 속삭이는 확신이 있을때만 매력적이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어디에도 멈출수 없는 관계는, 나는 별로 흥미가 없다. 어쩌면 나는 무서워서 발을 빼는걸지도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적어도 나는 나를 예쁘게 탐나게 여기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이성을 만나고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을 내 언어로 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친구들은 그가 지나치게 무례하다며 그냥 연락 하지마, 라고 했지만. 나는 그 무례함은 그처럼 활활타는, 열정적인 사람들에게서 흔히 같이 따라오는 반대쪽 면의 것이라서, 그 타던 열정에 매료된 내 자신의 책임을 상기하며 조금 더 예의바르게 우리의 연인아닌 연인관계를 마무리 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그가 괜찮다면, 우린 친구로 지내면 굉장할것같지만. 안된다고 하면 그냥, 덜 본 그의 멋있는 모습에 아쉬워하고, 덜 상처받은것에 감사하며 그냥, 이쯤에서 인사를 해도 아프진 않을것같은 초기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그와 거의 매일을 함께했던 지난 몇주는 이야깃거리로 가득찼고, 끊임없이 웃었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하며 신났으니까, 그쯤의 기억으로만 해도 좋겠거니 한다. 뭣보다 마음이 침체되어있던 런던의 첫 한달에 그가 불을 지펴줘서 따듯하고 뜨거웠다. 그래서 상처가 되는 단어들에도 그를 미워하고싶지 않다. 그와 좋은 친구로 남고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 아이러닉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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