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ileen Sep 30. 2019

튼튼한 마음으로 사랑하기

사랑하는 사람을 제대로 사랑해주려면 마음에도 퍼스널 트레이닝이 필요하다.



운동을 한번도 안해본 말랑한 몸으로 퍼스널 트레이닝을 처음 받으면 다음날 아침 온몸의 근육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근육통이 찾아오는 것처럼, 내가 내부를 설계해 말랑한 마음의 어떤 부분을 지켜내왔다면, 그걸 부수고 들어온 이를 상대하는것은 엄청난 마음의 근육통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것이다.



-


마음이 튼튼해졌으면 좋겠다. 그게 요즘의 나의 주제다. 모두에게는 부모적 자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기쁨을 축하해주고, 나의 슬픔을 위로해주는, 그리고 또 훈육을 해야한다면 훈육을 해주는. 


나는 감정의 동요가 크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게 아니라 시시콜콜한 것들에도 감정의 동요가 인는 사람이라서 감정에 접촉하는것을 멀리하고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고 요즘의 연인을 만나면서 확신이 들었다.


잘 설계된 나의 내부는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서 교묘한 장치를 많이 만들어 놓는다. 동요할 것 같으면 먼저 거리두기, 너무 가깝지 않기, 무례하게 굴면 다음에 무례하게 굴지 못하도록 거리 두기. 그런데 이렇게 언제까지나 살 수 있다면 너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는 떄도 있고, 그렇지 못할때 내가 이렇게 와르르 무너져서 알고있던 스스로를 뺀 모든 카오스와 변화가 찾아오니까 지레 겁먹고, 어쩔 줄을 모르고, 그러니까 뭔가 결정을 내려야만 할것같은 강박에 빠져서 스스로에게, 또 남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하는 스스로에게 조금 질렸다. 알아 알겠는데, 진정하고 이해될 수 있게 말해봐. 같은 뉘앙스로..


마음이 힘들었다. 힘들다고 진짜 본심으로 인정하고싶지 않았다. 너무 좋아하니까 내가 힘든걸 다른 친구들이 봤을때 내 사랑을 부정할까봐. 연인에서 일어나는 흔한 싸움인거고, 얘는 사실 괜찮은 애고, 그런거지 뭐 하고 합리화 했던것 같다.


연인사이에서 일어나는 흔한 싸움인것도 맞고, 얘는 사실 괜찮은 애인것도 맞다. 그리고 그냥 이 친구가 내가 허용하는 정상의 범위 밖의 정상이었던 사람이라 서로 계속 문제가 생기고 그러면서 맞춰갔던거지, 나도 정상의 범위가 겹치는 소위 말하는 더 잘맞는 '내 짝'을 만나면 덜 스트레스 받을 수 있다는 것 안다. 그런데 왜 정상의 범위가 멀리 떨어진  사람을 만나서 내 정상의 범위를 넓혀가면서까지, 마음이 아프다는걸 느끼면서까지, 만나고 싶은걸까? 심리나 정신분석에 관심이 많을 뿐이지 정확한 지식은 없기에, 내가 성적으로 아주 강렬하게 이 친구에게 끌리고, 그래서 감정의 노예가 되버리는것 아닐까 라고 추측만 한다.


마음이 이렇게 힘들어도 되는걸까요? 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물론, 내 안전을 해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대답한다. 그리고 내 기준의 정상적인 관계의 가장 바탕이 되는 신념, 한사람만 만나고, 다른사람과 성적 관계를 맺는것은 바람을 피는것, 을 가정하에 대답했다.


왜 이렇게 마음이 아픈지 생각해보다가 감정이나 마음에도 몸처럼 근육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그래서 우리가 시간이 지나면서 무뎌지고, 비슷한 상처에 더 잘 대응하는 여유가 생기는거라는 불안에 대한 강의의 일부분이 생각났다. 운동을 한번도 안해본 말랑한 몸으로 퍼스널 트레이닝을 처음 받으면 다음날 아침 온몸의 근육의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근육통이 찾아오는 것처럼, 내가 내부를 설계해 말랑한 마음의 어떤 부분을 지켜내왔다면, 그걸 부수고 들어온 이를 상대하는것은 엄청난 마음의 근육통을 동반할 수 밖에 없는것이다.


나의 셀프 가학적인 면모는 여기서 드러난다. 나는 이 사실을 깨달았을때,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에게 엄청난 자극을 줄 수 있는, 그렇지만 자극을 주고 내가 겉으로 보이는 나의 차가워보이는 모습과는 다르게 스스로의 감정에 허우적대는 당황스러운 꼴을 보고도 도망가지않고 옆에서 손내밀어줬던 사람. 


그 생각이 들었을떄, 여태까지 본능과 욕망에 충실해서 네 손을 절대로 놓고싶어하지도 않고, 네 손을 내 품속에 꼭 껴안아서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도 않았고, 모든 문제가 너한테 있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식으면서, 뭘 봐야하는지, 네가 얼마나 대단하고 멋지고 마음이 큰 사람인지, 그리고 사실 나에게는 네게 그런것을 요구할 권리 따윈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때, 손을 놓아줄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태까지 위에서 설명한 방어기제를 토대로 사람들을 대해왔기때문에, 깊지 않은 사이에서 어떤 불편을 야기하면 거리를 두는 편이고, 이성들은 주로 손절을 해왔기 떄문에, 주변에서 취미가 손절인 여자, 라고 불리기도 했다. (나름대로 합리적 이유와 적당한 자비가 있었다.) 


이번의 내가 그를 놓아줄 수 있을거라고 확신해서 든 마음은 지난 날의 손절들과는 아주 다른 느낌의 놓아줌으로 내게 찾아왔다. 내 마음의 어떤 약하고 말랑한 부분을 건드리며 나를 궁지로 모는 상황들의 불안정함, 애매함에 무슨 결정이든 빨리 내려야만 해서 잘라버리는 인연이 아니고, 한달 전보다, 육개월 전보다 더 많은것들을 겪고 조금 더 단단한 근육을 가지게 된 내가 새로운 방법을 시도 해보고, 스스로를 트레이닝 해보려고 하는 놓아줌 이다.


그를 놓아준게 아니라, 지난날 내가 보호해야한다고만 생각해서 붙잡고있던 속 안의 어린 아이를 세상 밖에 내보내는 기분이 들었다. 부모의 마음으로 나의 연약한 마음을 보고 지켜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그의 행동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 마음이 단단해진 사람이 되면, 언젠가 그의 모든 행복을 빌어주면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 더 성숙하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이게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긴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앞으로 가는 길이 계속해서 교차점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의 미래의 사랑에게 사랑하는 만큼 사랑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될거란 희망도 생긴다.


그런 마음이 들게되면서 자연스럽게 그에게 붙었던 (친구들이 붙여주고 엄마가 붙여줬던) '만나면 안되는 사람'의 딱지가 없어지고, '마음이 더 커졌을때 만나면 좋을 사람' 이라는 딱지가 생겼다. 


사랑은 느끼는것도, 표현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사랑 받는 사람이 내가 주려는 사랑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도록, 나의 의도가 최대한 곡해되지 않도록, 잘 고려해서 주는 방법을 찾는것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 사랑의 언어를 배워갈 수 있어서 뿌듯하다. 아직은 감정의 잔여물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이런 희망이 생기는것과, 이것마저도 없는것은 천차만별이라고 생각하고, 당분간은 스스로에게 집중해 볼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졸업작품의 반을 마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