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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식 Feb 04. 2021

의미를 찾는 것에 대한 의미

<오기사_변덕자들의 도시를 읽고>를 읽고

  내가 대학시절 총학생회에서 문화기획국장을 맡았을 때 제일 처음 배웠던 것이 그 행사를 왜 하냐는 것에 대한 의미를 기획서 제일 첫 단에 적는 것이었다. 사실 이 간단한 기록을 하는 것이 내 인생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내가 이것을 왜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습관처럼하게 된 어떻게 보면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간단한 신입생과의 술자리를 기획한다고 해도, 게임의 순서와 진행과 모둠을 어떻게 할지는 사소하게 다 의미를 가지고 배열이 되었었다. 그 때 적었던 많은 장의 기획서들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줄지 당시는 몰랐다.


  도덕전담으로 아이들과 만났을 때 아이들은 나를 보고 ‘왜’선생님이라고 불렀었다. 이미 배려, 존중, 나를 사랑해야한다는 말들은 아이들에게 죽은 문자로 있을 것 같아서 그렇다면 왜 배려를 해야하고, 왜 존중을 해야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쳤다. 칠판에는 항상 ‘왜’라는 단어를 크게 적고 수업을 했어서 그랬는지 나를 ‘왜’선생님이라고 불렀었다. 그 별명이 퍽 좋았다.


  변덕주의자들의 도시는 건축에 의미를 담아내는 사람의 기록인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의미를 찾고 담아내는 사람은 대체로 휴머니스트이다. 인간미가 느껴진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직업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각자의 일로 자신이 보람을 느끼고 보람이 조금은 주변으로 확산되어 좋아지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나도 그랬으면 새삼 생각했다.


“건축은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이다.”
“결국 사람들은 그저 그런 도시에서 살며 자본이 풍부한 이들이 정성스럽게 모방해놓은 리조트에 가끔 놀러가 낭만을 찾는다.
“보다 발전된 사회에서는 여유로운 건축이 보편적이다. 아까워도 견뎌내는 의식은 제도적 발전의 결과물이다.”
“그 결과 우리는 매력이 많지 않은 도시에 살게 되었지만 개발 과정에서 누구도 악의는 없었을 것이다.


  "교육으로 세상을 바꿀수 있겠습니까?"


 내 손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고 믿었던 언젠가 선배들한테 이렇게 물어봤었다. ‘믿으면 바뀐다’라는 다소 낭만적인 대답이 돌아왔지만 그나마 제일 마음에 드는 답변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그 일의 의미를 퇴색시키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것, 그 과정에서 다소 변덕이 있을지는 몰라도 앞으로 나가는 것, 나는 그렇게 해석했.


  작가는 이 책을 세 그룹을 위해서 썼다고 한다. 첫 번째는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 두번째는 미래의 고객, 세 번째는 이미 세상의 소소한 재미를 알고 그것을 기꺼이 삶의 중요한 이유로 삼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내가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룹을 준거집단으로 삼기에는 동떨어져있고 나는 꼭 ‘이미 세상의 소소한 재미를 알고 그것을 기꺼이 삶의 중요한 이유로 삼는’사람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한 아이들도 그런 사람이 되도록 '먼저 사는 사람'으로서 내 이야기를 해줘야겠다고 다짐한다.


2017.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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