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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식 Mar 20. 2021

사명감만 강요하는 사회

<드라마 '라이브'>를 보고, <김현아_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를 읽고

  사명감을 가져야하는 직업들이 여럿있다.

  “나는 오늘 경찰로서 목숨으로 여겼던 사명감을 잃었습니다. 지금껏 후배들에게 ‘어떤 순간에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경찰의 사명감을 가져라’고 수없이 강조하고 말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말을 했던 모든 순간들을 후회합니다. 우리는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현장의 욕받이다! 현장은 사선이니 모두 편한 일자리로 도망가라고 가르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현장에서 25년간 넘게 사명감 하나로 악착같이 버티어온 나를! 이렇게 하찮고 비겁하고 비참하게 만들었습니까! 누가! 감히! 내 사명감을 가져갔습니까?!”

  연쇄살인범을 체포하다가 심각한 부상을 입고 쓰러진 사수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실탄을 발사한 신입경찰은 감사에 불려갔다. 사명감을 잃은 사람은 그 쓰러진 사수였다. 그가 후배를 위해 증언하는 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총을 쏘지 않았다면 사수과 시민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었다. 공포탄을 발사하고 경고를 세차례 해야하는 매뉴얼을 지키지 않고 바로 발포했다는 것이 감사의 이유였다. 이미 언론에서는 경찰의 총에 맞은 그 범인의 외모가 수려하고 장래가 총망받는 의대생이며 떠들어댔고 사람들은 범인이 아니라 경찰을 욕했다. 

  장면이 바뀌고, 선배경찰들은 자신의 역할을 한 후배경찰을 위해 회의실에 모였다. 

  “누구라도 해야할 일을 했습니다. 당연한 일을 했는데 왜 감사를 받습니까?” 

자신들의 동기를 위해 같은 신입 경찰은 목소리를 높혔다. 그러자 선배 경찰들은 이렇게 말했다 

  “당연한 일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이미 닳을대로 닳아버린 우리 선배들은 총을 쏘고 일어날 뒤에 일들을 생각했을 것이고 나의 안위와 가족의 안위를 먼저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을 것이다.”

  사명감을 강요하는 사회이다. 아니다 한 글자를 더 넣어야 한다. 사명감만을 강요하는 사회이다. 25년을 사명감으로 버텨온 경찰을 그리고 21년을 사명감으로 버텨온 간호사를 끝내 비참하게 만든건 다름아닌 그들이 몸 담아왔던 조직이었다. 

  간호사가 사망한 환자를 양치시키고 열린 항문으로 나오는 대변을 닦아내고 마지막 가는길 초라하지 말라고 면도를 하는 것은 돈이 되지 않는다. 그 일은 누가 강제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 강제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스스로 가지는 사명감이다. 누가 감히 사명감을 강요할 수 있을까. 강요하는 너는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있나. 

  드라마의 인물이나 책을 쓸만한 인물 쯤 되니 이미 그들은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는 사람이겠다. 그들은 난사람들이기 때문에 20년을 넘게 버틸 수 있었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아니다. 어쩌면 그들도 어쩌다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명감 없는 경찰이다. 단지 먹고 살려고 경찰이 됐고, 그게 별로 부끄럽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죽자 살자 뛰고 있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인데, 내일이면 또 다른 사건에 묻힐 일이 뻔한데, 현장의 우리들의 노고를 알아주는 건 거대한 조직이 아닌 초라한 우리들뿐인 걸. 그래도 나는 아이가 살았으면 했다. 지금이라도 당장 먹고 살 일이 있다면 그만두고 싶은 현장이지만, 별다른 사명감도 없지만, 우리가, 내가 이 아이를 만난 이상 제발 이 아이가 살았으면.”

  이 대사는 발령받은지 얼마 안된 신입경찰의 것이다. 그런데 왜 이 대사를 간호사로, 그리고 교사로 바꾸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까. 

  나는 사명감이 없는 교사이다. 단지 먹고 살려고 교사가 됐고, 그게 별로 부끄럽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 왜 이렇게 수업 준비를 하고 있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인데, 교장 교감은 공문이나 어서 올리라 성화일게 뻔한데. 현장의 우리들의 노고를 알아주는 건 거대한 조직이 아닌 초라한 우리들 뿐인 걸. 그래도 나는 아이들이 행복했으면 한다. 지금이라도 당장 먹고 살 일이 있다면 그만두고 싶은 학교이지만, 별다른 사명감도 없지만, 우리가, 내가 이 아이를 만난 이상 제발 이 아이가 행복했으면.

  초등생 버스 용변 사건으로 한 초등학교 교사는 8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그녀의 사명감은 안녕한지 모르겠다. 당연히 안녕하지 않겠지. 어쩌면 사명감만을 강요하는 사회는 지뢰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처럼 나는 지뢰를 밟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사명감을 강요하는 그들이 그나만이라도 조금 있는 내 사명감을 가져가지 않길 바랄 뿐이다. 가져가려고 할 때 나도 그녀처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길 바랄 뿐이다. 


2018.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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