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백기완 선생께서 영면하셨다. 그리고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백기완 선생을 기리는 말들 중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네에서 ‘달동네’라는 우리말을 만들었다. 달동네는 ‘산등성이나 산비탈 따위의 높은 곳에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를 뜻한다. 70년이 지난 지금 이 단어는 우리가 즐겨 쓰고 소중히 여기는 우리말이다. 잿빛 동네를 덮은 하얀 눈, 그 위에 뜬 달이 아름다워 달동네라고 이름 붙인 사람은 민중 운동가로 이름 높은 백기완 작가다. 그가 만든 단어들을 살펴보자면 노동자와 민중을 위로하며 평생을 헌신한 삶의 이력을 느낄 수 있다. (출처: 국립국어원)
백기완 선생은 누구보다 우리말을 사랑하셨다고 한다. 달동네 말고도 새내기나 동아리 같은 익숙한 단어들도 만드셨다고 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생활 속에서 우리말을 자주 쓰는 게 우리말을 가꾸는 길이라고 했다. 그가 쓰는 우리말들을 보면 설명이 없으면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과하게 사용하곤 했는데, 그게 더 우리말을 대하는 그의 진정성으로 보였다.
쇠질쟁이는 어떨까. 백기완 선생처럼 대단한 이념은 없지만서도 바꾸고 싶은 단어가 있다. 최근 웨이트트레이닝과 보디빌딩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새로운 단어들이 생겨났다. 요즘에야 웨이트트레이닝이니 보디빌딩인니 하지만 예전에는 모두 '헬스'라는 말도 안 되는 영어 표현으로 불렸다. 그래서 헬스에 열심히인 사람을 두고 사람들은 '헬창'이라고 불렀다.
헬창의 뜻은 헬스에 몸을 판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헬스 창놈, 창녀의 줄임말이다. 나 또한 헬스를 좋아하고 꽤나 열심히 하기 때문에 때로는 저따위 말로 불리긴 했으나 그렇게는 불리기 싫다. 우리에겐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말이면 더욱 좋겠다.
백기완 선생은 새로운 우리말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보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쓰던 우리말들을 기억하고 오래 사용하신 분이었다. 사실 헬스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 말이 있다. 그것은 '쇠질'이라는 말이다. 역기 봉(바벨)을 들고 아령(덤벨)을 드는 행위를 쇠질이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배운 이후로 줄 곳 이 말이 좋았다. 투박하고 우직한 느낌이 들었다. 딱 이 운동의 이미지와 잘 맞았다.
그래서 나는 헬창이라는 단어대신 '쇠질쟁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어떨까 한다. 그리고 쇠질의 경력이나 기술이 아주 좋아지면 '쇠질장이'가 되는거지. 우리말 사전을 보면 말 끝에 '-쟁이'가 붙으면 그것이 나타내는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장이'가 붙게 되면 그것과 관련된 기술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조금 더 직업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비록 나만의 생각이지만 내가 쇠질쟁이라 부르고 싶은 이유에는 모두가 공감했으면 한다. 그리고 꼭 쇠질쟁이가 아니어도 다른 표현들이 자리 잡으면 싶다. 그런 의미로 내일은 꼭 쇠질을 하러 가야겠다. 나는 쇠질쟁이니까.
2021. 0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