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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바닥 Mar 16. 2024

31살의 어느 시점에 난 19살의 나를 만났다.

전철과 같이 빠르게 지나가버린 시간 속 나는 무엇을 잊었을까.

"어느 역까지 가세요?"


느닷없이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내게 물었다. 덜컹거리는 전철 안, 한적한 오후 텅 빈 전철엔 나와 그녀뿐이었다.

앳된 얼굴에 빨간 로즈마리색 립스틱을 칠한 그녀는, 제법 친근한 어투로 나의 행선지를 물었다.

나는 빤히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당황함이 어린 내 눈빛에 그녀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아는 얼굴이어서요"

그녀는 찰랑거리는 단발머리를 귀뒤로 꽂으며 적당한 눈웃음을 지었다


나는 저 웃음을 알고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앳되어 보이는 저 여자를 내 가본 적이 있던가.'


전철의 창문 사이로 길게 드리우는 햇볕이 그녀의 얼굴을 스칠 때면, 젊음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아는 얼굴'이라는 말에 나 역시도 그녀가 익숙한 기분이 들었다.


"아.. 죄송해요. 제가 기억이 잘 나질 않아서..."

멋쩍게 웃음 짓는 내 모습을 보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아직도 민망할 때 웃는 습관은 그대로이시네요.  괜찮아요 기억나지 않을 수 있죠. 지금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흐릿한 기억 속들을 헤매며 그녀를 찾아봤지만 익숙한 듯 낯선 그녀를 선명하게 발견해 낼 순 없었다. 그럼에도 안부를 묻는 그녀의 말에 차마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똑같죠 뭐.. 회사 다니고.....,

아직 학생이신가요?"


적당히 답을 얼버부리고 질문의 화살을 그녀에게 돌렸다.


"네, 19살이었어요. 하고 싶은 일도 많았고요.

작곡도 하고 음악도 만들고, 나이가 들면 꽤 유명해질걸 꿈꾸면서요.


약간은 어색한 답이었지만 구태여 그 부분을 꼬집어 묻지 않았다. 약간의 침묵이 주위를 감쌀 때 즘,


-다음 종착역은 ㅇㅇ, ㅇㅇ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아 죄송해요 내릴 역이 다되어서요. 꿈 꼭 이루시길 기원할게요"


그녀는 약간 울적한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네 언제고 당신이 날 기억만 해준다면요"



이상한 만남이었다. 나는 내일이 지나고 모레가 지나면 일상 속에서 서서히 그녀를 잊어갈게 분명했다.


 '다만 너무 어렵고 큰 꿈을 꾼 철없는 어린이 정도로 흐릿하게 기억할 테지.'


_


그녀는 나였던 동시에, 나는 그녀였다.


언젠가 꿈을 이뤄내주길 기다려 주는 19살의 나는 31살의 내가 되어 꿈을 선명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꿈은 항상 인생의 한켠에 서서 열정을 담아 자길 이뤄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19살의 싱그러웠던 내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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