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데 실수를 없앨 방법은 없겠죠?
나는 평소 걱정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애초에 걱정거리를 만들지 않으며 살려고 한다. 하지만, 늘 그렇듯 걱정은 걱정을 불러온다.
요즘엔 재택근무로 일을 한다. 아침에 gps를 통해 출근을 기록하고, 퇴근도 시간 맞춰서 기록해야 한다. 매번 켜고 꺼고를 하면서 근태체크 (근태췍~)를 한다. 벌써 11개월째, 왜 익숙하지 않아 지는 건지.. 벌써 이달만 2번이나 놓쳤다.
3회 이상이면 경위서 대상이라, 문서를 올려야 한다. 어제 급하게 문서를 올리다가 실수를 조했다. 이미 결제가 승인이 나서, 본부장님이 결제를 대기 중이다. 팀장님에게 문서 삭제를 요청드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 나는 이런 사소한 실수 하나하나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언니에게 실수에 대해 이야기했다. 언니는 별것 아니라는 어투로 이야기했다.
"그냥 네가 잘못한 거잖아, 잘못에 대해서는 깔끔하게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시정하겠습니다 한마디면 되는 거야. 그리고 앞으로 너도 더 조심해"
'그렇지.'
내 걱정에 공감해주지 않는 대문자 T 언니가 야속했지만, 언니도 나름의 위로법이었으리. 사실 틀린 말은 없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 짐은 무겁기만 했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게 큰 실수이던, 작은 실수이던 서투르게 살아갈 뿐이다. 나는 좀 강박적으로 완벽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내 실수에 대해서도 남의 실수에 대해서도 관대하지 못하다. 보통 완벽주의, 강박적인 사고를 하는 분들은 엄청 멋있게
"나는 나한테만 그래~ 남들한텐 안 그래~"
라고 하던데....ㅎㅎㅎ 아무래도 난, 그런 성인군자는 못 되는 모양이다.
실수라는 단어는 사람을 참 작아지게 만든다. 잘못에 대해 혼나는 것도 힘들다. 위축되는 그 감정을 느끼기 싫은 것과 거기에, 상대가 '쟤는 왜 기본도 안 돼있어?'라고 말할 것만 같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모든 걸 그만두고, 사라져 버리고 싶다.
실수 앞에 위축되는 감정은 어릴 때부터 그랬다. 나는 잔실수가 많은 애였다. 물을 쏟거나,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자주 넘어지는 그런 아이였다. 부모님은 어릴 때, 물을 쏟는 나에게 꽤 자주 혼을 내셨었다. 그래서 물을 마마 실 때마다 눈치를 봤었다. 컵을 들면서 슬쩍 따르면서 슬쩍, 우유라도 쏟으면 더 혼이 났었다.
아마 엄마는, 내가 실수를 덜 했으면 하는 마음과 그저 눈앞에 놓인 엎어진 물에 대한 한숨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나는 가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환경에 놓이게 되면 그때의 실수와 우유 마실 때 들었던 상황들이 생각난다. 나중엔 우유든 물이든 쏟으면 놀래도 소리 안 내고 몰래 닦기도 했다
(이렇게 적으니, 부모님이 엄청 심하게 혼을 내신 것 같지만 그냥, 한숨이랑 또 엎었어? 정도였다. 아무래도 내가, 좀 민감성이 높은 아이였다 보니 더 상황에 대해 위축된 것 같다. 괜히 읽는 분들이 오해를 할까 봐 덧붙이면, 나는 부모님과 굉장히 가깝게 잘 지낸다. 우리 부모님도 늘 내가 잘 되길 바라주시는 좋은 분들이시다)
나는 이제 성인이다. 물도 우유도, 쏟으면 스스로 닦아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실수를 닦는 일은 어렵다. 남아있는 얼룩이 마음 깊이 스며들어서, 스스로를 깎아내게 만든다. 그렇게 닳고 닳은 마음은, 또 다른 실수를 맞이했을 때 한없이 작아지게 된다.
실수라는 말이 담은 비난보다는, '실수했구나 그럴 수 있지'라는 관대함으로 이어지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라본다.
언젠가 누군가의 유튜브에서 봤던 내용이 생각난다.
"우리가 성인이 되면 이제 스스로의 보호자는 자기 자신이에요.
먼 외국에 홀로 나오니, 더 잘 알겠더라고요. 이곳엔 저를 위하는 사람은 없어요. 그래서 저 스스로라도 자기 자신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에게 늘 좋은 엄마처럼, 내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행동과 말을 해주면서 살아야 해요.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 나를 스스로 보호하는 것, 스스로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것 성인의 삶엔 그런 게 필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