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모았으니, 이젠 하고싶은걸 배워야겠다.
딱히 어느 나이까지 얼마를 모아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그냥 단순히, 많이 모으면 좋은 거라고 생각했다. 어릴 땐 돈은 좀 못 벌어도, 그림으로 먹고살 만큼만 벌고 싶었다. 그리고 30대가 된 나는 '먹고살 만큼'이라는 문장에 얼마나 많은 욕심이 담겨 있는 건지 알게 되었다. 20살~21살엔 1억만 있어도 인생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나이가 들고, 씀씀이도 커지고, 세상 돌아가는 걸 알게 되니 1억이라는 돈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1억으로 할 수 있는 건 사실 많지 않다. 1억으론 서울에 집을 살 수 없다. 물론 얻을 순 있다. 월세나 전세로 작은 집을 얻는 건 가능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얻으면 아마 간당간당하게 잔고를 유지하며 생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억으론 자동차를 살 수 있다. 국산의 평범하고 작은 차 정도면 가능하다. 구매 후 차량을 유지하는 비용은 마찬가지로 월급에서 충당한다고 하면, 1억을 유지하며 생활할 수 있지 않을까?
1억을 모았다는 건, 1억을 쓰기 위해 모았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돈을 왜 모을까?
저축을 시작했을 때부터, 내 고민은 항상 같았다. '사람들은 왜 돈을 모을까?'라는 고민.. 친구들에게도 물어보기 예민한 주제라, 다들 '월에 얼마 정도 저축해'에서만 대화가 맴돌 뿐, '어떤 이유에서 돈을 모으고 있어'로 까지 발전되지는 않았다. 막연하게 생각하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어서 돈을 모으는 것 같다.
그렇다면 1억을 모은 나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을까?
처음으로 내가 모은 자산이 억 단위를 넘긴 걸 봤을 때, 딱히 안정감이 들지는 않았다. 폰에 찍혀있는 숫자의 단위를 볼 때면 참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지금도 글을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고 있는데, 그냥 현실감이 없었다. 눈앞에 현찰로 1억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실제로 만져본 돈도 아니었다. 폰 속에 디지털 숫자로 찍혀 있는 잔고, 약간 '게임머니' 같은 기분이었다. 몬스터를 잡고 보상으로 받게 된 게임머니, 게임머니를 차곡차곡 모아놓은 기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만약, 1억을 주고 20대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면 '나는 시간을 돌릴까?'
내 대답은 무조건 yes이다.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하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대학생 때까지로만 돌아갈 수 있게 사고 싶다. 그리고 내게 하고 싶은걸 위해 투자하며 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하고 싶은 걸 하기 위해 더 도전적으로 투자하라고 말이다.
어릴 땐 하고 싶은 게 참 많았다. 그런데 하고 싶은 걸 하려고 하면 돈이 많이 필요했다. 어떤 걸 하려면, 일단 배워야 했다. 배움에 투자할 돈이 있어야 했다. 어릴 땐 돈이 없기도 했고 아깝기도 했다. 그래서 배움에 투자할 돈이 없었다. 대신 시간으로 몸빵(?)을 했다. 혼자서 무작정 이것저것 해봤다. 누군가의 가르침 없이 독학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뭐가 맞는 건지, 틀린 건지도 알지 못한 상태를 헤매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지치고, '나는 왜 이렇게 발전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배움에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인터넷강의를 보거나, 학원을 다니거나, 주변에 도움만 잘 얻어가며 발전시켰어도, 더 빠르게 많은 걸 이뤄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시간을 돈으로 살 수 있다면, 딱 20대로 돌아가 하고 싶은 일에 투자하며 살라고 말하고 싶다. 돈은 있다가도 없을 수 있고, 없다가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은 그때, 그 시기가 아니면 열정이 사그라들어 없어져버린다. 그리고 그 열정에 다시 불을 지피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이가 드니, 체력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새로운 걸 한다'는 게 어렵다고 느껴진다. -핑계지만-
요즘은 회사를 그만 다니고 싶다. 통장 잔고를 보면, 언제든지 그만두고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카드값을 보면 통장 잔고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회사를 다녀야 한다. 이 달에도 카드값이 200만 원 가까이 나왔다. 뭐 쓴 거라곤 밥 먹고, 카페 가고, 병원 간 게 전부다. 열심히 벌어놓고 부질없이 쓰는 것 같다. 그래도 치킨 한 마리, 맥주 한 캔이 위로가 되닌깐, 오늘도 치킨을 한 마리 시켜 먹었다. (-3만 원) 부질없이 쓰이는 돈에 죄책감을 느꼈던 20대 때는 극단적으로 먹을 거에 돈을 잘 쓰지 않았다.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몇 달에 한번 시켜 먹은 피자가 내 최고의 사치이기도 했다. 어쩌면, 나는 하고싶은걸 배우기위해 투자하는 행위도 '혼자하면 되는데, 부질없이 돈을 쓴다' 라고 생각했던것 같기도 하다.
사실 최근까지도 '부질없이 쓰이는 돈'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잘 소비하지 않았었다. 근래 들어 '1억을 모았다'라는 이 글을 쓰면서, 최소한 1억을 모았으니 자유롭게라도 살아보자 마음먹으면서, 소비에 죄책감을 줄이고 있다. 점점 씀씀이가 커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처음으로 나를 위해 반지를 샀다. 브랜드가 있는 액세서리는 처음이었다. 딱 10만 원인 반지였지만, 소비 앞에서 작아지지 않고 뭔가를 선뜻 구매해 본 건 처음이었다.
반지를 보고 있으니, 은세공을 배우고 싶어졌다. 그러고 보면 유튜브에 종종 검색해 봤던 것 같다. 은을 녹이고, 주물을 만들고 반지를 제작해 가공하는 영상들. 반지를 갑자기 사고 싶었던 건, 어렸을 때 못해봤던 배우고 싶었던 것들 중 하나여서 그랬던 건 아닐까? 내년 초(1월)에는 은세공 수업을 들으러 가야겠다. 요즘엔 주얼리 학원도 따로 있더라.
1억을 모았다고, 자유롭게 살겠다며 시작한 유튜브도 천천히 진행 중에 있다. 벌써 7개의 영상을 올렸다. 채널의 누적 시청시간도 13시간이 넘어가고 있다. 의무감을 가지고 영상을 올리지는 않지만, 이번주엔 영상을 안 올렸더니 '뭘 올려야 하나'를 놓고 고민 중에 있다. 아마, 지금 연재 중인 '1억을 모았다'라는 글을 영상화시키지 않을까 싶다.
1억이 내 삶에 큰 변화를 주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아직까지도 회사에 메여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어릴 때처럼 배우고 싶은 것, 하고싶은 것에 투자를 하지 못하지 않는다. 이제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배울 수 있으며,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작은 변화지만 이게 큰 날갯짓으로 바뀌길 소원하며, 오늘 글은 여기서 마무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