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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Ki Sep 08. 2020

장롱은 구멍이 났으며 이내 없어졌다


장롱은 구멍이 났으며 이내 없어졌다


간만에 마음속에 미루던 일을 주말동안 하게 되었다. 물건버리기. 요즘 100L 쓰레기 봉투를 채워버리는게 재밌다. 아 버려도 버려도 끝도 없다.  


과거에  나는 물건을 잘 버리지 못했었는데 그래서 늘 짐이 많았다. 20대까지 무언가 크게 버려본 일이 없었다. 맥시멀리스트라기보다는 그냥 버리지 못하는 성격에 정리정돈을 참 못했다.  


물건 버리는 일에 재미가 들려 이번에도 물건도 한참 버렸다. 그러다가 장롱이 눈에 들어왔다. 이집에 살면서 전에 살던 사람이 남긴 가전과 가구를 쓰게되었는데 시커멓고 커다란 그 가구들이 너무 너무 싫었는데 버리는 것이 일이라 버리지 못했다. 올해 봄 친구들의 도움으로 책상과 서랍장 하나를 버렸다. 얼마나 짜릿하던지 잊지 못한다. 새하얗게 텅빈 공간의 방을 즐기며 가구를 사고싶지 않을 정도였다.  


이제는 장롱의 차례다. 거대한 장롱을 다른방으로 옮기고 싶어 고군분투하다가 눕히는 과정에서 나름 충격을 완화하고 받침대 역할로 의자를 두었다. 지렛대를 지점을 중간지점으로 잘못 지정하고 장롱이란 것이 얼마나 무거운지 몰랐다. 그 결과 장롱이 쓰러지면서 의자가 장롱을 이겨냈다. 장롱에 큰 구멍이 생겼다. 누구 장롱에 빵꾸내 본 사람? 그게 나다. 밤에 너무 놀랍고 이 상황이 절망스러워서 식은땀이 흘렀다.  


못 먹어도 고 라고 하며 일단 옮겨보려 했으나 해체하기 전에는 이 큰 장롱을 옮길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다시 돌려놔야했을 때 내 심정을 서술하시오…(-100점)  


다시 어떻게든 장롱을 돌려놓고 옷을 다시 넣어두었다. 아 비상금 발견했을때까지는 정말 행복했는데 말이다. 자려고 누웠지만 도저히 잠이 안와서 일어나서 짐 정리를 계속 하다가 아침이 밝았을 때 해체해서 버려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단 나사를 다 빼고, 타카는 뺄 줄 모르겠어서 뜯다보니 어떻게든 되었다. 다칠수도 있는 일인데, 장갑도 안끼고 맨발로 다 해치웠다.
 


하룻밤 사이에 그렇게 대형폐기물이 되어 장롱은 사라졌다. 방 한켠에 거대한 장롱이 사라지니까 공간도 생기고 마음도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웃겨서 녀석과 기념 사진도 찍었다. 잊지 못할 사건이다. 아, 그래서 하나하나 장롱의 거대한 피스들을 나를 때 식은땀이 흘렀다. 


장롱이 가고 난 후 나에게는 긁히고 멍든 자국들이 이곳 저곳 다리에 즐비하지만 내 마음은 4년 넘은 묵은 때를 드디어 씻어낸 것 같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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