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살아보기
한동안 쓸 말이 없는 것 같아 글을 써야겠단 생각을 안 했는데, 사실은 넘쳐서 정리를 못하고 있었던 게 맞다.
할아버지가 떠나시고 난 뒤 더 늘어나 버린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 같은" 생각들을 정리할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우선 지난 몇 달간 일은 더 무거워졌고, 올망졸망 귀여운 부하직원이 4명이 되었으며, 일상에는 달달한 바람이 불어서 행복했다. 행복과 바쁨이 같이 올 때는 꼭 실수를 했던 것 같아서 이번 주말엔 글을 써야지 하고 억지로 앉았다.
할머니는 사주 철학을 보는 걸 좋아하셨는데 그 문화가 자식들까지 내려와 외가는 철학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내게는 태어나자부터 37살이라는 D-age를 많은 철학자분들이 일러주었는데, 나는 늘 그때를 무척 기다렸다.
돌아보면 나는 마음 편히 쉰 적이 없이 늘 뭔가를 했고 이루기에 바빴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늦은 퇴근과 지루한 (몸은 바쁜) 주말을 반복적으로 보내며 '37살이 되면' 하고 내일이 또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행복하지 않은 매일을 보냈다는 게 아니라, 완성된 내가 아니라는 마음에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스스로를 인정하지 않았었다.
어느 날 진심으로 마음 놓고 볼 기회도 없이 매번 져버리는 단풍과 벚꽃 생각을 하다 내 세월도 그냥 살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낭만을 갖고 산다고 자부했지만 실상 나는 결과물을 위해서 사는 굉장히 멋없는 사람이었다. 20대의 나는 얼마나 귀여웠는지, 29살 하고 5달이 지난 나는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괜찮아지고 있는 중인지라고 습관적으로 쓰려다 자제) 인정해주자고 돌아보니 꽤 괜찮은 구석이 있는데 나는 잘 몰랐다. 그래서 남이 해주는 칭찬은 늘 부담스러웠고 진심 어리게 듣지 않았다. 부족하고 가야 할 길이 먼 나를 흐트러트리는 방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순간순간을 진심으로 마주하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그 하루하루가 꽉 찬 일 년을 만들어 줄 거고 쌓인 시간들은 한 세상을 떠날 때 맑은 영혼과 함께 갈 수 있게 해줄 수 있을 거다. 진심으로 사람을 만나고, 순간을 보내고, 깊이 살아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