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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ry Feb 18. 2016

누적된 기준


사랑에 대한 기대와 환상이 가득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시절의 사랑은 처음으로 내 마음을 콕콕 찔렀고, 뱃속을 울렁거리게도 만들었다. 십대와 이십대를 지나며 한 남자를 만나던 시절에 나는 자주 내 남자에게 분노했었다. 아마 내 첫사랑의 기억속에 (드디어 등장) 나는 다루기 어렵고 피곤한 여자였을 것 이다. 속 좀 썩이는 여자였던 내 기억속에 그도 그런 남자로 남아있다. 어린 남녀는 넘치는 마음을 감당하지 못했고 왜 너는 내가 아니고 나는 너일 수 없는지에 대해 분노했었다. 어린 나는 엄마에게 연애 상담을 하곤 했는데, 엄만 그런 불 같은 사랑을 하다간 니가 장작이 되고 말거다 하셨다. 근데 그때를 지나고나서 그렇게 내 마음을 따끔거리게하는 남자의 눈물을 본 적이 있었나 싶다. 최근 몇년동안 내 여자친구들 사이에서 사랑 이야기의 끝은 하나같이 "첫사랑 같은 사랑은 다신 못할 것 같아"로 마무리 된다. 발전한 나 만큼, 성숙해진 나 만큼, 더 좋은 모습의 남자를 만나고 있다는 건 우리도 알지만, 그 부담스럽게 넘치던 마음과 구석구석까지 사랑이 닿았던 과거의 순간을 한켠에 간직하게되는 자신을 어쩔 수가 없다. 아줌마가 되면 좀 덜해질까 물었던 적이 있는데 친구가 코웃음을 치면서 "그럼 아줌마들이 나가수 보면서 그렇게 울겠냐?" 했던게 생각난다. 


'나'라는 식물이 지금의 모습으로 자라는데 첫사랑의 그는 결정적인 영양을 공급했다. 그 뒤로 나는 한두번 장마와 가뭄을 번갈아가며 격었던 것 같다. 예쁜 화분에 뿌리를 내려 곱게 피우는게 완전한 사랑인 줄 알았지만, 내게 맞는 적절한 환경을 터득해 적응하며 잎을 키우는게 더 멋진 사랑이었다. 장마와 가뭄을 견디며 나는 나름의 올바른 환경과 규칙을 터득했다. 순수하고 열정가득 했던 사랑은 이젠 내가 다시 가질 수 없는 것 이지만, 대신 소중한 꽃을 피우는데 필수 조건인 침착함과 여유를 얻었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직감적으로 머리속에 떠오른 물음표는 의심의 여지없이 아차를 마무리하는 느낌표로 변하고 만다. 첫 눈에 의심이 가는 모습을 보았다면 재빨리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점인지를 먼저 판단한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모른척 덮고 지나서는 안된다. 사람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정말로 없다. 내 취향을 충족하는 이상형을 기다리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어떤 남자는 나에게 춤을 잘 추는 여자가 좋지만, 클럽가는 여자는 싫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럼 그 잘 추는 춤은 화장실 거울보고 연습한거지?" 물었더니 당황하던 모습이 남는다. 어떤 친구는 남자다운 남자를 좋아하지만, 충분히 섬세하지 못한 그의 배려심에 분노한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줄 규칙들이 무엇인지를 자주 되새겨본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내 남자의 재치는 그의 생각이 빠르게 돌아 생기는 것 이다. 가끔 지나치게 앞서나간 생각에 저지르는 성급한 실수들은 먼산보며 모른척 속으로 귀여워 해주는게 상책이다. 재치있는 남자에게서 진득함을 기대하지 않는다. 여유로움을 장착한 뒤의 나는 그런 단점들을 사랑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중에 느끼는 실망감을 상대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내 기대 수준이 이기적이지 않은지를 먼저 확인한다. 그리고 그를 이해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보고, 필요하다면 도움을 요청한다(꼭 애교를 섞어서). 내 기대의 수준을 파악하기 전 에는 절대 도움 요청을 하지 않는다. 진정한 도움 요청이 불가능 할 뿐만 아니라, 논리가 없는 분노가 되어 찌질한 여자로 하락하기 때문에 레벨을 지키기 위해서는 선 판단이 필수다. 변호사인 내 친구 중 한명은 이럴 때 본인의 기대 수준이 이기적이지 않은 합당한 이유를 백만개는 생각해 내고 좀 강하게 우긴다(오빠 나빠 막 그러고). 옆에서 듣고 있으면 억지긴한데 영 틀린말도 아니고 사랑을 잘 이어가니 그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간 너두 강적을 만나겠지) 



마음 속에 금이 있어도 보여주지 않으면 똥이라고 했다. 행동이 없는 말은 절대 믿지 않는다. 진심이 담긴 말일수 있으니 함부로 진실인지를 판단하지도 않지만, 행동이 없는 말에는 절대 먼저 사랑을 피우지 않는다. 대신 행동을 보여줄 무대는 준비해주고 응원도 잊지 않는다. 막을 내릴 시간은 꼭 정해두고 시간안에 성사시키지 못한 공연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세상에 남자는 많다. 



어릴적에 싫은 일이 있을 때 금방 포기하려는 나에게 엄마가 해주었던 비유가 있는데, 조개는 까끌거림을 참고 이겨내야 예쁜 진주를 만드는 일을 해낸다. "진주는 조개의 상처와 고통으로 만들어진 보석인데 진주를 품을줄 모르는 조개는 진짜 조개가 아니야" 포기하고 싶을 때 마다 나를 붙든 엄마의 교훈이다. 까끌거려 뱉어버리고 싶을 때 마다 두 사람이 다독이며 함께 참고 만들어낸 진주가 정말로 어른스러운 사랑이다. 



실패한 관계와 만남들은 내게 꽃을 피우기 위한 소중한 영양분이다. 진짜 내 반쪽을 만났을 때 건강하게 키워온 마음을 자랑스럽게 들이밀고 "오빠 쪼금만 더하면되 얼마 안남았어 물 쪼금만 더 줘봐 진짜 예쁜 꽃 보여줄게" 살랑살랑 흔들어줘야지. (연하는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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