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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Apr 30. 2024

순환되지 않는 것들의 종말

'recycling'

우리말로 옮기면 재활용이다.

그러나 난 '다시 순환'이라는 말이 더 옳게 들린다.



쌓이는 것


우리 집은 밥만 잘 먹고 나면 간식은 무제한이다.

배탈이 나지 않으면 아이스크림 2개까지.

이가 썩지 않으면 사탕도 알아서.


"주말에 피시스낵 좀 사야겠는데?"

배도 안 부르고 가벼운 안주로도 제격이다.

애들도 좋아해서 대량으로 사도 금방 없어진다.

그 물건의 주기에 맞춰 장을 보면 다른 걸 또 산다.


"야! 집에 초콜릿 하고 사탕은 많잖아."

봉지 과자들이야 눈에 띄니 다 비우면 샀는데.

사탕 같은 건 식탁 바구니, 찬장, 가방 곳곳에 있다.

애들이 자기들 서랍에다 다람쥐마냥 야금야금 모아놨다.


"이거 너네 다 먹을 때까지 캔디류는 못 사!"

베이커리에 빵을 사러 가도 꼭 롤리팝을 잡는다.

봉지과자는 질소라도 들었는데, 사탕은 한 알이 묵직하다.

그의 달콤함은 입에서 녹는 속도보다 빠르게, 더 많이 원하게 한다.


처가에 아이들을 맡기면 할아버지는 편의점을 꼭 데려가신다.

"아이구.. 아버님~ 뭘 또 자꾸 돈을 쓰셔요."

"됐어!~ 난 이게 사는 낙이야~~"


내가 아버님을 말릴 수는 없겠더라.

"얘들아. 2천 원 이내로 먹는 거만 사.

장난감 들어서 비싸기만 한 거 사지 말고~"

편의점은 얼마나 예쁘고 귀여운 아이템으로 유혹하는지.

단순한 사탕도 없어서 자판기에 반지에 플라스틱 부산물을 남긴다.


집 안에 쌓여가는 인형들도 처치곤란이다.

둘째 아이 침대의 절반은 인형이 누웠다.

"이거 너 크면 다 버릴 거야~"

"안돼~ 이 곰곰이는 내가 안고 자야 돼~~"

우리 딸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인형 뽑기는 절대 시켜주지 않는다.


그러니까 난 먹어 없앨 수 있으면 산다.

먹어 없어지는 것일수록 더 많이 산다.

그것은 내가 더 많이 원한다는 것.

더 많이 순환하는 것.



낡는 것


난 물건을 온전히 소모했을 때의 쾌감을 안다.

볼펜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까지 다 썼을 때.

샴푸도 치약도 끝까지 짜내고 새것을 꺼내는 기분.


비누는 생각보다 닳지 않아서 재고가 많다.

각종체험이나 기념품으로 받기도 해서 쌓인다.

컵도 사진인화, 꾸미기 체험, 기념품 등 평생 쓸 만큼 있다.


깨지기라도 하면 바꿀 텐데, 생각보다 튼튼하다.

옷도 좀 낡고 해져야 새로 살 텐데 10년도 더 된 게 있다.

명품이 아닌데도 실밥만 좀 잘라주면 도깨비 빤쮸마냥 질기고 오래간다.


물건에는 대략적인 교체 주기가 있다.

가구, 가전은 10년, 관리를 잘하면 그 이상도 본다.

2013년 신혼에 산 46인치 TV는 지금도 잘 돌아간다.

(요즘에야 작게 느껴지지만 당시엔 최대 사이즈였다.)


물건은 망가지면 살 기회가 온다.

폰이 느려서 앱이 켜지지 않거나, 흰 옷이 아이보리쯤 되면.

그러기도 전에 욕구가 가득 찼다면 그건 유튜브, 광고에 현혹당했을 확률이 높다.


아직 살 날이 많은 물건을 버리긴 아깝다.

유지하는 게 비효율이 되기까진 수리를 한다.

그리고 그건 나란 인간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죽어야 사는 것


내 입엔 금이 일곱 덩이가 있다.

금 값이 가장 많이 오른 내 인생 마지막에 뺐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마저도 조금 앞당겨질지 모른다.


잘 쓰던 금니에 약간 금이 갔다.

'이번 달 지역 카드 적립율도 많은데 이거나 치료하자.'

그냥 가볍게 들른 치과에서 무거운 말을 들었다.


"아.. 환자분, 이건 만약 빼게 되면 장담할 수가 없어요.

뺐는데 괜찮으면 다시 씌울 수도 있지만, 안이 이미 무너져서 씌울 수 없을 수도 있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아예 빼고 임플란트를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냥 최대한 두고 쓰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금니 값 30~40만 원을 아꼈다.

그러나 난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임플란트'라는 단어는 내게도, 아내에게도 충격이었기에.


내 아내는 이른 노안이 2년쯤 되었다.

40살도 안 된 사람이 폰을 멀리 보면 우습다.

우리 몸엔 이제 고쳐 쓰지 못하는 것들이 늘어난다.


단지 몸뚱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나온 삶은 어떤 생각들을 만들었고, 이제 다시 경험할 수는 없으니.

지금까지의 내가 너무 커서, 이미 자리 잡은 생각들을 고치기에는 살아온 시간만큼 필요하려나.


인간이 수명을 늘리고 싶더라도, 왜 영생이 옳지 않은가에 대한 이유.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나와 함께 사라져야 세상이 또 변해갈 테니.

인간의 역사가 발전해 갈 수 있는 것도 불의의 죽음이었음을.


왜 영원히 사는 것은 암 밖에 되지 않는 가에 대한 정의.

순환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며, 순환되지 않는 것도 죽어야 함을.

거의 영원에 가깝게 썩지 않는 플라스틱은 지구의 암세포가 된 것처럼.


그러니까 나도 언제나 순환하는 존재여야 한다.

내가 사는 물건, 가진 생각, 그리고 나의 존재 자체도.

그것이 낡고 사라져 갈 것들이 그나마 좀 더 머물기 위한 최소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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