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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딱한 나선생 May 17. 2024

불혹은 어려워

내가 지금까지 싸우던 방식을 조금은 바꾸려 한다.
내 말이 함부로 나오려 할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당신을 소중히 대할 때 반말을 하고, 당신을 함부로 대할 때 존댓말을 쓰겠다.
나를 위한 편함이 아닌 당신을 위한 불편함으로 살겠다.


겨우 며칠 전에 내가 했던 말이다.

아내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 대해서.

그건 꼭 아내에게만 해당될 말이 아니었다.



나의 열린 마음


올해 동해로 학교를 옮겼다.

남자는 부장을 맡는다고 익히 들었다.

나이로든 성별로든 나도 일하려고 마음먹었다.


15년 가까운 교직생활에서 첫 '부장'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고작 15만 원의 수당을 받지만 그것보다 훨씬 큰 힘을 받는 느낌이다.

뉴스에는 7만 원이던 수당이 2배 이상 올랐다고 아주..

교장, 교감선생님도, 다른 선생님들도 '부장님~ 부장님~' 존중받는 기분이 든다.


중간의 위치에서, 중간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많았다.

신규 선생님을 챙기고, 업무를 확실히 하여 관리자가 믿을 수 있도록 한다.

동생들 술도 사주고, 위로도 싹싹하게 할 말 했더니 작년까지 불편했던 관계들도 풀렸다.


"부장님 오고 나서 분위기가 정말 좋아졌어~"

"형~ 4년 동안 이렇게 술 먹는 거 처음이에요."

친화회장, 남친회장 앞으로도 내가 쭉 하고 싶다.


40이라는 마법의 숫자.

위아래로 웬만하면 형 동생.

나는 언제나 현혹당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불혹이 되어야 하는데 또 마음이 열린 행복한 나.

라고 쓸 뻔.



나에 대한 마음


19년도의 내가 딱 이랬다.

너무 열린 마음으로 다 좋다고.

술자리를 만들고 억지로 형 동생 하려고.

결국 아래의 건방짐에, 위로의 버림을 받고선.


좋을수록 조금은 가라앉혀야 한다.

마음을 열어주니 동생도 발끈해서 말하더라.

나는 그냥 인간으로서 대화했는데 상대방은 아니더라.


"당신이 학생이건, 교장이건, 여자건 그저 사람으로 대하겠습니다.
당신도 나를 성별이나 나이 어떤 조건을 떠나 사람으로 봐주세요.
그러면 우리는 한 단계 높은 사이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이건 단지 나의 바람일 뿐이다.

내가 스스로를 극복해 인간이 되었다고 해도.

상대방이 나를 남자로, 나이 듦으로, 어린 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상대가 날 형으로 원하면 형까지.

괜히 친구가 될 수 있는 척하지 말자.

난 평등주의자이지만 예의 없는 건 또 싫다.


상대가 날 교사로만 원하면 직장동료까지.

괜히 더 가까운 관계가 되겠다고 부담 주지 말자.

결국 원치 않음을 확인하고 나에게 상처가 되더라.


왜 점점 위로가 편하고 아래로가 어려워지는가에 대한 답.

'당신을 소중히 대할 때 반말을 하고, 당신을 함부로 대할 때 존댓말을 쓰겠다.'했던 다짐처럼.

위로는 오히려 편하게 대하고, 아래로는 내 상관을 모시듯 예의를 지켜야 했다.


이제야 내 생각문장을 바꾸려 한다.

내가 마음을 열고 사는 건 좋다.

하지만 상대가 원하는 만큼이다.


화를 내는 행동은 첫 번째 행동이 아니라, 머릿속 생각이 만들어낸 부차적 연상행동이어서, 자신을 바꿔나가려면, 동작행동을 '반성'하기 전에 생각문장을 '성찰'해야 한다.- [글쓰기 공작소 실전편] 중



나의 마음 바다


불과 작년까지 무너진 나영상을 말하던 나다.

마음 둘 곳 없던 작년에 비해 올해 행복한 건 맞다.

새로운 곳에 좋은 사람들을 만난 행운이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이 행복을 그저 행운으로 말하기에는 너무 아쉽다.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 아이유 '아이와 나의 바다' 가사 중


19년의 나영상이 24년의 나영상이 되기까지.

그 아픔을 겪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긴 싫어서.

적어도 무엇하나는 깨닫고 나아진 내가 되어야 하기에.

겨우(고작) 내가 되었지만, 나를 겨우(간신히) 회복했으니까.


숱하게 의심하던 나는 그제야
나에게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아

- 아이유 '아이와 나의 바다'


나의 아이 자아와의 화해.

내가 나를 받아들이고 성장하기까지.

인간도 애벌레와 같지 않을까.


하루하루 살아가지만 결국 무언가를 계기로 한 단계씩 커가는 것은.

쓰린 상처를 겪어야 그 허물을 벗고 더 커지는 것처럼.

딱딱하고 갑갑한 번데기를 거쳐야 나비가 되듯.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은
삶에게 지는 날들도 있겠지
또다시 헤매일지라도 돌아오는 길을 알아

- '아이와 나의 바다'


여전히 마음 열고 상처받을 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조금은 조심하고, 기다리고, 상대방을 볼 줄 알게 된 나에게.

또한 어리석고, 두렵고, 다른 실패를 겪겠지만, 그마저 받아들일 나에게.


'영상아, 넌 잘하고 있어.

다른 누가 뭐라 해도 내가 널 사랑할게.

너의 가장 오랜 벗, 영상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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