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삐딱한 나선생 Nov 07. 2024

너의 부끄러움에 함께 할게

코피는 안쓰럽다.

코딱지는 더럽다.

(그걸 다시 입에 넣으면 더더욱..)


코피는 잘못이 아니다.

코딱지는 의도가 있다.

(자기도 모르게 파고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코피도 코딱지도 교실에 흔한 일이다.

그러나 정도를 지나치면 심각한 일이 된다.

'뿡'은 피식 웃고 말겠지만, '뿌직'은 웃어넘길 일이 아니니까.



위로


우유를 먹다가 한 아이가 토를 했다.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뭘 할 수가 없었다.

하얀 토사물이 가방에 튀고 바닥에 흘렀다.


주변의 친구들은 소리를 지르며 멀리 도망갔다.

교실 중앙은 폭격을 맞은 전쟁터 같았다.

그 자리에 토한 아이 혼자 있었다.


아이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누가 그 냄새와 형태를 반길 수 있겠나.

그러나 이 상황이 옳지는 않다고 느꼈다.


"야! 지금 혼자 남겨진 친구를 봐.

당황스럽고 부끄러워 울고 있어.

더럽다 보지 말고, 아픈 마음을 봐.

누구라도 이럴 수 있어. 함께 치우자."


그제야 휴지를 들고 다가왔다.

친구의 옷을 닦고 보건실로 보냈다.

물티슈로 마무리를 하고 환기를 시켰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학생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잘 따라줬다.

'남의 걸 내가 왜 치워요!' 이러지 않아 다행이다.

그리고 여전히 교실에서는 더럽고 안쓰러운 일이 일어난다.



아래로


전담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돌아왔다.

이제 내 수업을 하려는데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화장실에 있나 다른 학생을 보냈더니 있더란다.


'그래. 배가 아플 수도 있지. 금방 돌아오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올 생각을 안 했다.

'뭔가 일이 생겼구나' 느낌이 왔다.


화장실 입구부터 냄새가 났다.

변기 문을 잠그고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나오라고 했다.


옷에는 그리 많이 묻지 않았다.

그래도 학교에 남아있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아버님이 데리러 오셨고 정리는 됐다.


학생을 보내고 난 변기를 닦았다.

"아으! 냄새! 이게 뭐야!"

같은 화장실을 쓰는 다른 학년 학생들이었다.


나는 말없이 휴지에 물을 적셔 바닥을 닦았다.

몇 명 입을 막는다고 없던 일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화장실은 이미 냄새로 가득 찼고, 사라지기엔 시간이 필요했다.


난 교실로 돌아가 우리 반 아이들에게 말했다.

"OO이 어머님은 이 일이 안 알려졌으면 하셨어.

한 번의 실수로 남들의 놀림감이 되는 건 누구도 원치 않겠지.

그렇지만 숨기려 한다고 이미 알고 있는 게 지워지진 않을 것 같아.


난 너희들이 OO이를 지켜줬으면 좋겠어.

혹시 다른 아이들이 놀리더라도 너희들이 막아줘.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차라리 누가 그랬나 모른다고.


우리 반 전체가 의심받더라도 서로 지켜줘.

누구에게나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지금은 OO이를 지키는 것 같지만 그게 결국 나를 지키는 거니까."


주말이 지나도 별 말은 없다.

작은 해프닝으로 지나간 모양이다.

살다 보면 또 크고 작은 일이 생기겠지만.

우리가 함께라면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