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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체험이 두려워요

by 삐딱한 나선생 Feb 20. 2025

교육과정을 함께 만드느라 다들 바쁘셨지요?

새로 만난 선생님들과 얼굴 익히기도 정신없는데.

그리고 그런 서먹한 분위기에서 열띤 토론이 시작되었어요.


학년 발표를 하고 교육과정을 논의했어요.

운동회는 1학기, 학예회는 2학기에 매년한대요.

학기별 현장체험학습에 등산에 나가는 것도 많았어요.


여기저기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행사 시기나 횟수를 줄이는 방향으로요.

상담 주간도 1학기만 운영하기로 했어요.


저는 가능한 말을 아끼고 싶었습니다.

처음 온 주제에 뭐라 의견 내기도 조심스러웠고요.

학부모인 선생님께 안 하려는 모습으로 비칠까 염려도 됐어요.

제가 상담 주간에 대해 말하면 상담하기 싫어하는 교사가 될 테니까요.



사고와 판결


그러다 한 선생님이 나와서 비장하게 말했어요.

"어제 현장체험학습 사망사건과 관련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담임교사는 금고 6개월이라 '당연퇴직'에 해당합니다.

당시 상황을 아주 가까이에서 함께 겪었습니다.

적어도 관련 법안이 나오는 6월까지는 현장체험을 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공감했지만 관리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었나 봐요.

'주변의 작은 학교는 다 갈 텐데 학부모들에게 비교가 될 것이다.

(우리 학교는 5학년만 1 학급, 나머지는 2 학급)

학교 공사로 운동장도 쓸 수 없는데, 아이들이 불쌍하다.'

또, '멀리 가지 않아도 괜찮다. 보조 인력도 충분히 마련하겠다.'라고도 말씀하셨어요.


저는 조금 다른 결에서 얘기하고 싶었어요.

"저도 아이들과 걸어서 바닷가로 나들이를 간 적도 있습니다.

그건 학생들이 제 통제에 따르고 안전하게 다녀올 거란 믿음이 있어서입니다.

교실 안에서도 말을 듣지 않고, 싸우고 다친다면 오히려 운동장도 못 나가게 하죠.


학부모님의 태도도 그렇습니다.

아이가 조금 다쳤는데 선생이 뭘 했냐, 다 물어내라 이러면 나가기 힘듭니다.

물론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참을 수 있는 부모는 없겠지요.

사건의 진상도 밝히고 책임도 물어야 합니다.


하지만 교육공동체로서 최소한의 합의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장체험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법적 문제로 교사들이 많이 위축되어 있다는 것.

교실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을 위험이 뻔히 보이는데 데려가긴 어렵다는 것.

학교에서 다양한 체험학습을 계획하지만 우리의 현실에 따라 제한될 수 있다는 것을요."



책임, 그리고 함께


저는 교육과정 설명회에 학부모님께 안내가 되길 요청드렸습니다.

해외고 어디고 무조건 가면 좋다가 아닌 안전에 대한 협의.

(작년에 등산 중 사고가 발생했다고 해요)

심각한 문제 학생의 경우 숙박형 현장체험 학습 제한.

(분리조치처럼 경고 후에도 개선되지 않는다면)


제 이야기가 당장 적용되긴 힘들 것 같기는 합니다.

그래도 학부모는 요구하고 교사는 책임지는 구조는 아니길 바랍니다.

학생, 학부모는 교육 여건을 함께 만들어 가는 중요한 주체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아이가 다치면 교사는 죄인이 돼요.

혼자 넘어졌어도, 친구랑 싸웠어도, 내 탓이 아니래도.

학생을 살피는 것도, 친구 관계도 결국은 담임의 책임이니까요.


제 첫째는 큰 학교에 다니는데도 스키캠프를 다녀왔어요.

정말 즐거워해서 이번 겨울에 따로 또 갔지요.

솔직히 부모의 입장에선 좋았어요.


그러나 제가 그 학교 교사였다면 가자고 못했을 겁니다.

실제 선생님들은 가지 말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해요.

춥고, 장비도 복잡하고, 위험하기까지 하니까요.

(심지어 6학급 인원이 1박 2일로 갔어요)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어요.

줄 세우고, 계속 돌아봐도 순간 일어나요.

동의서를 받고 안전교육을 해도 책임은 무거워요.


저도 학부모로서 아이가 크게 다친다면 참지 못할 거예요.

교사로서도 이런 상황이 될까 걱정이 돼요.

소풍의 설렘보다 두려움이 앞서는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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