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이 부러졌다.
병가를 쓰고 수술을 했다.
이런 일이 생기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부러질 운명
왜 그날은 예보에도 없던 비가 왔을까.
왜 비가 그리 쏟아지는데 종합운동장에 굳이 갔을까.
왜 태워준다는 걸 마다하고 걸어오다 신발을 다 적셨을까.
어차피 밤까지 비가 온다니 아쿠아슈즈를 신으면 될 것 같았고.
어차피 난 선수도 아니니 안 뛰면 되겠지 했는데.
어쩌다 마지막에 들어가 이 사달이 났나.
괜찮은 척 넘어가려다 하루를 보냈고.
주변 병원은 수술이 안 돼서 며칠이 지나고.
수업은 하고 가려다 주말이 지나 수술 날짜를 잡았다.
마지막까지도 깁스 치료만 하면 안 되냐 물었다.
수술이 무서운 게 아니라 학교에 민폐가 되는 게 두려웠다.
당장 교장, 교감 선생님께 전화하고 교사 카톡방에 상황을 알리는 것부터.
체육관에 발이 삑삑 걸릴 때 알았어야 했는데.
바로 응급실에 갔으면 잘 붙었을지도 모르는데.
생각은 후회와 억울함에 자꾸 과거로 돌아갔다.
그러다 뭔가 큰 흐름이 나를 휩쓸고 간 느낌을 받았다.
작은 하나를 고친다고 바뀔 것 같지 않았다.
그냥 부러질 운명이었던 게지.
가짜 불안, 진짜 경험
고작 발가락 하나 수술하는데 3일 입원이라니.
납득하긴 어려웠지만 이것저것 준비를 했다.
너무 폰만 볼 것 같아 책도 하나 챙겼다.
그리고 내가 '상태 반추'를 했다는 걸 알았다.
부정적인 결과와 감정을 계속 되새기며 곱씹는 것.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 문득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우선 학교에 대한 생각은 잊기로 했다.
연락은 했고, 당장 할 수 있는 건 없다.
꼭 필요한 건 메모하고 머리에서 지웠다.
그렇다고 걱정이 다 사라진 건 아니다.
수술 시간이 다가올수록 은근히 겁도 났다.
단지 벌써부터 고통받을 필요 없다 떨쳐내려 했을 뿐.
누운 채로 수술실에 실려 가는 기분은 정말 께름칙했다.
수술실은 냉장고만큼 차가웠고 긴장에 더해 덜덜 떨렸다.
하반신 마취를 했지만 뼈를 뚫는 감각, 드릴 소리는 그대로였다.
어쩌면 신체적인 고통은 그리 크지 않았을지 모른다.
마취 주사의 따끔함, 발가락의 불편한 느낌, 추위 정도?
오히려 이 상황을 받아들이는 내 뇌가 훨씬 더 아파하는 것 같다.
몸은 현재만 겪으면 되는데, 머리는 미리 염려하고 나중까지 걱정한다.
뇌의 원래 기능이니 막을 수는 없지만 너무 날 괴롭히진 말자.
그때를 겪어낼 날 위해 준비하고 믿어주자.
읽고 나서야. 잃고 나서야
책에서는 또한 이렇게 말했다.
완벽한 삶을 유지하는 게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삶에서도 행복을 찾는 것.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생겨도 이런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고 안정감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의사 선생님은 6주간 깁스를 하라 했다.
겨우 발가락 하나에 생활의 불편함이 많았다.
그래도 이제 불평보다는 감사한 것을 더 보려 한다.
우선 학교의 배려로 이렇게 치료를 받고 있는 것.
아파서 쉬어도 월급을 받는 직장에 있다는 것.
날 걱정해 주는 가족이 곁에 있다는 것.
일상의 소중함도 더 크게 다가왔다.
걷고 뛰고 했던 때가 얼마나 좋았던 건지.
월요일 새벽에 하던 출근도 할 수만 있길 바랐다.
정말 큰 아픔을 견뎌내고 있는 분도 많을 텐데.
발가락 하나로 유난 떠는 것도 같지만.
이 마음을 잊지 않으려 적어 본다.
모두에게 평온한 하루가 이어지기를.
혹시나 시련이 찾아와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부디 그 속에서도 나를 회복할 작은 여유는 남아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