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것도 차가운 것도 시간이 지나면 주변의 온도에 맞춰진다.
그러니 그 기준이 되는 주변의 온도는 매우 중요하다.
때론 그곳이 남극이나 사막인지도 모른다.
차분함과 차가움
"Say it louder. Be alive~"
원어민 선생님이 특정 반 수업에 자주 하는 말이다.
첫인사로 "How are you?" 물어도 대답은 거의 없고 "So so."가 많다.
확실히 영어는 활발해야 좋다.
말을 배우는데 말을 안 하면 어떻게 하나.
대화를 하고 게임을 해도 적극적으로 꺼내야 한다.
그렇다고 문제가 있는 학급은 아니다.
고학년이지만 전반적으로 작고 순한 느낌이다.
막 적극적이진 않지만 활동이 시작되면 성실히 참여한다.
난 이 반이 마음에 든다.
차분하긴 하지만 차갑지는 않다.
조심스러운 마음이지 나쁜 마음이 아니다.
정말 차가운 반은 서로 적대한다.
같은 모둠이거나 짝이어도 말을 안 한다.
한 둘의 관계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분위기가 공격적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조용함은 나쁘지 않다.
냉랭함으로 얼어붙은 게 아니라면.
그 안에 따듯함이 있다면.
뜨거움과 띠꺼움
반대로 그 옆반은 시끄럽다.
괜한 헛소릴 하거나 필통을 숨긴다.
한 학생이 시작하면 말도 장난도 이어진다.
"Pay attention. Little bit calm down."
주로 남학생들이 이런 얘기를 듣게 된다.
그렇다고 여학생들도 약하지는 않다.
버스킹에 여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춤이고 노래고 끼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그렇게 남녀의 균형이 맞춰진 느낌이다.
"나도 군대에 있었을 땐 거칠어졌던 거 같아.
남자들만 모인 곳에서 얕잡아 보이고 싶진 않았지.
옆에서 욕을 섞어가며 말하니 나도 괜히 세게 말했어.
그런데 너희에게서 그런 분위기를 느껴.
누가 작은 장난을 걸면 지지 않으려 점점 커져.
나도 너희들이 가진 에너지와 개성을 이해해주고 싶어.
자꾸 잔소리를 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긴 어렵다는 걸 알아.
그러니까 서로 불편해지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멈춰주면 좋겠어."
이런 말 한마디에 확 바뀌진 않는다.
그래도 눈치를 주면 슬슬 멈추기는 한다.
서로 끓어오르는 아이들이, 식을 줄 알면 됐다.
뜨거운 아아
사실 가장 힘든 반은 따로 있다.
여기는 적정한 균형점을 찾기가 어렵다.
마치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기분이다.
우선 여자 12명, 남자 7명으로 비율이 맞지 않다.
심지어 그 남자 중에 목소리를 내는 건 3명 정도다.
거의 읽지를 못하고 따라 하는 것도 잘 들리지 않는다.
"Okay. This two rows say this."
원어민 선생님은 일부러 줄을 나누어 다시 시킨다.
여학생들도 차이가 크다.
한 학생은 원어민과 자유롭게 말할 정도다.
또 다른 학생은 보고 쓰라고 해도 반응이 없다.
"야! 선생님이 이거 쓰라잖아~"
그나마 잘 참여하는 남학생이 말했다.
"오~ 범생이인 척!"
"야~ OO이 한테 뭐라 하지 마."
몰아세운 것 같은 남학생이 잘못일 수도 있지만.
여학생들이 서로 감싸주는 좋은 모습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유일한 남학생 발언자를 잃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남녀를 떠나 수업을, 선생님을 지키려는 목소리도 잃어버렸다.
그곳이 어디든
그러다 하루는 여학생 한 명이 이상한 소리를 했다.
"쌤, OO이가 쌤 잘생겼대요~"
"야! 뭔 (멍)소리야~~"
말을 시작한 학생은 이따금 돌발행동을 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대답을 한 학생은 평소 착하고 성실하다 생각한 아이였다.
교실에 다른 아이들이 다 듣는데 그런 말을 하리라 상상도 못 했다.
"얘들아. 나도 너희들하고 잘 지내고 싶어.
가능하면 너희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맞춰가려 했어.
남자가 적고 자신이 없으니까 여자들이 더 주도할 수도 있겠지.
너희들끼리는 어떤 말이든 주고받을 수 있을 거야.
카톡으로 거친 욕을 해도, 선생님 뒷담화를 해도 몰라.
하지만 이 교실까지 가져와서 말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이상한 말을 한 것도 잘못이지만 교실에 '개OO'라는 소리를 울리게 하다니.
평소에 잘 도와주고 착하다 생각했던 사람이 그래서 더 충격이야.
나도 함부로 하는 말을 들으며 상처받고 싶지는 않아."
학기 초 이 반으로 한 여학생이 전학을 왔다.
근처 학교라 원어민 선생님은 이 학생도 가르쳤었다.
"She was never like this before."
원래 있던 곳에서는 엄청 적극적이고 말이 많았더란다.
이 학생도 지금의 반에 적응한 결과일 테지.
교사는 그 어떤 온도에서도 살아내야 한다.
한때는 내가 교실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여러 상황을 겪다 보니 변온동물이 되어버린 것도 같다.
각자의 온도로 나뉘어 잠시 쉬어갈 방학까지 잘 견뎌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