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담교사다.
1~2 놀이 수업, 3~6 영어 수업을 한다.
1~2학년에겐 체육쌤, 3~6학년에겐 영어쌤으로 불린다.
날 부르는
솔직히 놀이 수업이 제일 좋다.
수업 내용을 확인하고 간단한 준비만 하면 된다.
돌발행동을 하거나, 다칠까 걱정될 때도 있지만 영어보다는 마음이 편하다.(지극히 개인적으로)
아이들도 놀러 오는 거니까 얼굴이 밝다.
원래도 마음 열고 다가오는 아가들인데 더 좋아해 준다.
길을 가다 부모님 차를 세워서 굳이 인사하는 경우도 몇 번 있었다.
3~4학년도 크게 나쁘지 않다.
교과서 진도만 나가니 수업 준비의 부담도 없다.
나머지 원어민 선생님과의 놀이 활동에서 충분히 즐긴다.
같이 읽고 노래를 해도 대부분 적극적이다.
수업 태도로 지적을 받아도 잘 따른다.
지나가다 만나도 웃으며 인사한다.
5~6학년은 내가 활동을 준비한다.
교과서 놀이도 변형하고, 패드도 주었다.
다양한 대화를 하도록 했고, 실제 문장을 만들었다.
그러나 개인별 수행의 차이가 컸고, 지루해하는 학생도 보였다.
하루는 어디선가 받은 ppt 게임을 했다.
"쌤, 이런 게임 더 많이 하면 안 돼요?
작년엔 거의 게임만 했단 말이에요!"
고학년은 자신의 감정을 확실히 드러냈다.
나도 이제 학습보다는 흥미위주로 가려고 한다.
'영어는 재미없으면 끝이다'라는 한 선생님의 말도 아프게 다가왔다.
무엇보다 학생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체육쌤' 만큼은 못해도, 욕으로 불리고 싶지는 않으니.
겨우 불러낸
4월 말부터 영어 보충지도를 시작했다.
6학년이지만 거의 읽지 못하는 학생이 보였다.
담임도 아니라 설득이 어려웠지만 어찌어찌 4명을 모았다.
주어진 시간상 주 2회를 운영해야 한다.
수요일은 모두 가능했지만, 월요일은 2명만 됐다.
그리고 2명밖에 없는 날 한 학생이 조퇴를 했다.
난 남은 한 명을 데리러 갔다.
올 때도 억지로 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1:1 과외처럼 차분히 알려주었다.
30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학생이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 지르거나 무섭게 하지도 않았는데 당황스러웠다.
반복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답답했을까, 혼자 남아 억울했을까.
어찌 되었든 더는 진행할 수 없었다.
그나마 친구들과 함께하는 수요일에는 왔다.
기초학력 담당 선생님께 시간을 채우기 어렵다고 얘기했다.
영어가 안 돼서 남은 아이다.
내가 도와주는 게 고통일 수도 있다.
가르치려 하지 말고, 놀아준다 생각하자.
겨우 불러내놓고 미워하게 만들지는 말아야지.
뭐라고 부르든
"쌤~ 쌤~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야~ 선생님이라고 해야지!"
이제 쌤은 교실에 흔하다.
이렇게 예의 갖추는 경우가 드물다.
담임일 땐 쌤쌤 거리는 걸 정말 싫어했다.
그렇게 부르는 아이들은 다른 말들도 가볍게 했다.
언어는 상대를 대하는 기본이고 난 함부로 대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전담이 되어 보니 어쩔 도리가 없다.
11개 반, 전교생의 쌤을 막기는 힘들다.
그리고 이제는 쌤도 감지덕지다.
고학년에서는 속된 말로 쌩을 까기도 한다.
인사를 건네도 뭘 물어도 답이 오지 않았다.
나도 굳이 먼저 말 걸고 상처받고 싶지는 않다.
그러다 체육대회 날 충격적인 장면을 봤다.
담임선생님이 한 학생에게 백허그를 했다.(둘 다 여자다)
언제나 말없이 쌩하던 그 학생이었다.
"아~ OO이가 낯을 많이 가려요."
나중에 따로 물었을 때 들은 대답이었다.
내가 느끼기엔 그런 정도의 문제가 아니었는데.
그래, 어쩌면 나는 아주 작은 부분만 봤을 수도 있다.
이 학생이 왜 이런 태도를 보이는지는 알지 못한다.
혼낼 게 아니라 챙겨줘야 하는 거였는지도 모른다.
(보충지도 때 울었던 학생도 가정환경이 좋지 않다고 후에 들었다)
쌩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쌤도 편하게 다가와주는 게 어딘가.
원어민과는 나이 차이가 얼마든 이름을 부른다.
나를 쌤이라 부르든 이름을 Sam으로 부르든 뭐 큰 문제겠나.
처음 영어 수업을 시작할 땐, 서로 손 흔들며 인사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위아래 없는 영어와 선을 지켜야 하는 선생님 사이에서 계속 고민이다.
아마 이 글을 볼 학생은 없겠지만 부디 내 마음은 전해지길 바란다.
너희들의 쌤이 되기 위해 계속 노력 중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