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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를 채울게요

by 삐딱한 나선생

복잡한 도시보다 한적한 시골이 좋다.

유명한 관광지보다 이름 모를 풍경 속을 걷는다.

아무래도 난 조용한 곳에서 작게 살아갈 운명인 것 같다.



열등감


어릴 적, 공만 던져주는 '아나공' 수업이 종종 있었다.

여자는 피구, 남자는 축구를 해야 했다.

다른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잘하는 애들은 항상 공격을 맡았다.

느리고 의욕 없는 허수아비들이 수비에 섰다.

공격하는 아이들은 말도 공격적이라 명령하고 화를 냈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실력으로도, 주먹으로도 이길 수가 없으니.

그렇지만 나도 잘하고 싶은 마음만큼은 컸다.


쟤처럼 공을 가지고 놀 수는 없지만.

죽어라 달려도 그를 쫓아가긴 힘들겠지만.

그냥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할 수 있었다.


애들이 공으로 몰려 갈 때, 난 공이 떨어질 곳을 예상했다.

그러면 한 경기에 몇 번은 걷어낼 수 있었다.

발에 정확히 맞는 쾌감은 짜릿했다.

그리고 덜 무시당할 수 있었다.


이성에 대한 관심도 비슷했던 것 같다.

너무 인기가 많은 여자애는 꺼려졌다.

그런 여자가 날 좋아해 줄 리 없으니.


정말 잘난 누군가는 1등을 노릴 수도 있겠지만.

키 작고 평범한 조건인 나의 현실적 선택.

화려하진 않아도 귀여운 느낌의 그녀.


이것이 내 유전자의 생존전략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핏빛으로 물든 레드오션에선 살아남을 수 없을 테니.

과도한 경쟁 아래에 비어있는 나만의 자리를 찾아서.



채워감


교장선생님께서 따로 전화를 주셨다.

학폭 업무를 맡고 있으면서 왜 점수를 안 받냐고.

저는 승진에 뜻이 없다고 했고, 그래도 받아는 두지 하셨다.


우리 학교는 승진을 하려는 사람이 많다.

내가 받는다고 하면 누구 한 명은 못 받는다.

내겐 쓸모없는 점수 때문에 대결하고 싶지는 않다.


1년을 시작할 때마다 이런 난처한 기분을 느낀다.

누군가는 기피하는 학년, 업무를 맡아야 하니까.

진행이 되지 않아 정적만 흐를 때도 있다.


지금까지 그런 남는 자리를 꽤나 채워왔던 것 같다.

어떨 땐 6학년이 남았고, 어떨 땐 1학년이 남았다.

친화회장도, 업무도 끝까지 남으면 내가 했다.


물론 슈퍼맨도 아니고 다 할 수는 없다.

운 좋게 지나온 것도, 도움을 받은 것도 많다.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지만, 상처받고 힘들기도 했다.


독서고 정보고 전문성을 가졌다면 고집하겠지만.

특출한 무언가가 없는 나는 빈자리를 채우며 살 것이다.

남들이 교감, 교장으로 올라간다면 또 어딘가 남는 곳을 찾아야지.


차라리 다들 싫어하는 학폭 업무를 맡아준다면.

나이가 들어도 그 일의 노하우를 잘 쌓아간다면.

어차피 그 자리는 내가 쭉 이어나갈 수 있을 테니.


너무 큰 민원과 갈등에 포기하게 될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원하고 잘하는 건 그들의 몫으로 두고.

모두를 위해, 또 나를 위해 내가 의미 있게 쓰이길 바라서.



효능감


얼마 전 학예회가 있었다.

나는 전담이라 무대 쪽 업무를 맡았다.

악기나 소품을 나르고, 음향을 조절해야 한다.


공연마다 마이크를 음소거했다가 다시 풀어야 했다.

다음 준비를 하는 동안 다른 소리가 다 들어간다고.

까먹고 켜두거나 아니면 반대로 할까 걱정이 되었다.


교무부장님이 순서별로 필요한 내용을 정리해 주셨다.

수업으로 리허설을 보지 못해 조금 막막했다.

무대팀 셋이 밥을 먹으며 얘기를 했다.


"이번엔 제가 주도해서 하긴 힘들 거 같아요.

형들 하시는 거 보면서 함께 필요한 걸 채울게요.

형이 고기를 잘 구우셔서 집게를 잡으실 때가 있지만.

저는 그러면 소맥을 말든, 반찬을 가져오든 뭘 하고 있겠죠."


실제 공연 때는 큰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스포츠강사님이 앞쪽을 보면, 난 뒤의 마이크부터 점검했다.

형이 의자를 옮기면 나는 보면대를 옮기고 호흡이 맞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잘 되던 릴레이 조명이 먹통이 됐다.

춤추는 공연은 깜빡깜빡 반짝이는 효과가 필요하다.

스포츠강사님은 일일이 눌러가며 조명을 켰다 껐다.


빈자리를 채울게요(사진1).jpg


나 같았으면 그냥 포기했을 거다.

괜히 누르다가 더 문제가 될까도 겁났다.

한동안 하다가 손가락이 아프대서 내가 했다.


학예회에서 가장 고생한 건 담임선생님이겠지만.

빛나지 않는 무대 뒤의 공간에서도 누군가는 움직이고 있다.

무대 막을 열고 닫았던 주무관님들, 볼륨을 맞추려 분주했던 교무부장님.


함께한다는 건 그런 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

혼자서는 할 수 없었던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


나는 나름 채우고 있다 생각했지만.

이미 채워주고 있는 분들이 훨씬 많다.

내가 그 안에 소속되어 있다는 건 다행한 일이다.


부디 누군가를 채워줄 힘을 잃지 않기를.

나를 채워주는 사람들의 감사함을 잊지 않기를.

서로를 채우는 따듯한 사람이 곁에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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