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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다캣 Jun 06. 2024

프란츠 카프카 『소송』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은 어느 날 아침 요제프 K가 갑작스럽게 체포되면서 시작합니다. K의 하숙집에 들이닥친 정체 모를 남자들은 ‘누군가 당신을 고소했고, 그래서 법원에서 당신을 기소했다’라는 것 외에는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습니다. 독자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K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누가 K를 고소했는지, 소송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마치 사뮈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고도가 끝까지 등장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죠. 


K는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은행 차장으로 승진한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미혼 남성입니다. 그는 이유 없이 시작된 소송에 의문을 느끼지만 그를 체포한 사람들도 K의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없습니다. 케이는 자신은 죄를 지은 적이 없으며 법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고 항변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법을 잘 모른다면서 죄를 짓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합니다. 


법을 모르니 무엇이 죄인지도 알 수 없다는 것이죠.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에서 K가 마주한 법원은 개인의 삶을 의미합니다. 삶이란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것이지만 무엇에 의해 어떤 체계로 돌아가는지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소설에 의하면 법원의 서열과 진급 체계는 끝이 없어서 제대로 가늠할 수 없고, 재판은 어디서 온 것이지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모르게 계속 진행되고, 법원에 무언가를 제의하거나 관철시키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법원이 기소를 철회하는 일도 절대 없고, 원칙도 없고, 영향력을 가진 관리들은 어린애 같으며, 일단 기소가 되면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고, 소송은 이성으로는 더 이상 납득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최종 판결은 임의의 시간에 돌연히 내려집니다. 


삶의 고통으로 비유할 수 있는 소송에 맞서 K는 계속 저항합니다. 그는 법정에서 열리는 심리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법원’의 정체에 점점 다가갑니다. 


심리가 열리는 법정은 쇼 무대를 방불케 합니다. 관객들이 빼곡하게 모여들고 피고에 대한 호감과 비호감으로 소송의 향배가 달라집니다. 일상과 긴밀하게 연결된 법정은 사방이 막힌 공간입니다. K는 이런 답답한 법원의 공기를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반대로 법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외부 공기를 마실 때 멀미를 느낍니다. 


K의 소송은 널리 소문이 나고 K의 숙부가 그의 직장으로 찾아옵니다. 가족관계가 흔히 그렇듯 K의 가족도 K에게 진정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미명 아래 존중은 없고 의무만 강요하고 있죠. 숙부의 소개로 만난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변호사는 K에게 막연한 희망과 모호한 위협을 안겨주면서 ‘그냥 현실을 직시하고 눈에 띄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충고합니다.


소송에서 벗어나기 위한 K의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갑니다. 만나는 여성들을 통해 얻으려고 했던 위로도 진정한 구원이 되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신의 존재도 더는 의미가 없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K는 프란츠 카프카 본인입니다. 


카프카의 생은 많은 부분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카프카의 원고를 세상에 공개한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원고를 천 여 군데나 훼손했습니다. 막스 브로트가 쓴 카프카 평전 역시 상당 부분 왜곡되었다고 합니다. 


브로트는 카프카의 가장 친했던 친구였지만 죽어가는 카프카의 소원을 간단하게 무시할 정도로 그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부족했던 인물입니다. 비평가 발터 벤야민는 카프카에 대한 가장 큰 수수께끼란 바로 ‘카프카에 대해 어떤 이해도 없는 형편없는 속물이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는 사실’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카프카는 평생 그런 인물들로부터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중에서 그의 아버지가 가장 폭력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프란츠 카프카는 열 명의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관한 독서 에세이 『책방으로 가다』에서 소개한 작가입니다. 『책방으로 가다』에서는 카프카가 남긴 원고를 둘러싼 에바 호페의 소송을 『소송』이라는 소설 제목과 연결해 카프카의 삶에 초점을 맞췄죠. 소설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줄거리나 해석으로 지면을 소비하기엔 너무 유명한 고전문학이기 때문입니다. 


카프카는 소설 속 K처럼 태생적으로 세상의 규격에서 벗어난 인물이었습니다. 삶에 혐오를 느꼈고(자신을 포함해서), 끝내 삶의 의미(구원)를 찾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남은 것은 그의 유산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는 ‘형편없는 속물’과 속물들의 후손 뿐이죠.





매주 목요일 브런치북 '주간 서점 산책'을 연재했는데요, 최근 서점에 나가는 일이 대폭 줄었습니다. 연재하지 못하는 주가 늘어나면서 그대로 완결할까 하다가 제목을 고쳐서 책리뷰를 올리기로 했습니다. 주로 고전문학을 읽고 감상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이런저런 모임을 통해 책을 접하고 있지만, 역시 저의 독서 취향은 이쪽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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